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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순천만 흑두루미 사상 첫 AI 집단폐사에…먹이주기 논쟁 불붙어

중앙일보

입력

 겨울이면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 지역을 찾는 멸종위기 조류 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2호)와 재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3호), 독수리(천연기념물 제243-1호).

이들 겨울 철새에게 먹이를 줘야 하는지 아닌지를 놓고 때아닌 논쟁이 벌어졌다. 최근 흑두루미의 세계 최대 월동지인 일본 이즈미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확산하고 전남 순천만 흑두루미(천연기념물 제228호) 월동지에서도 흑두루미 폐사체가 잇따라 발견되면서다. 전염병 연쇄 발병을 막기 위해서 먹이 주기를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희귀조류의 종(種) 보존을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먹이 주기를 지속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지난 2020년 1월 1일경기도 연천군 중면 민통선 내 임진강 빙애여울 두루미 월동지 모습. 사진 이석우씨

지난 2020년 1월 1일경기도 연천군 중면 민통선 내 임진강 빙애여울 두루미 월동지 모습. 사진 이석우씨

순천서 흑두루미 40여 마리 폐사

 2일 순천시에 따르면 지난달 13일부터 현재까지 총 40여 마리의 흑두루미가 폐사했다. 이 가운데 현재 8마리가 H5 고병원성 AI로 확진됐다. 순천시 관계자는 “지난달 1일부터 최근까지 이즈미 월동지에서 990여 마리의 흑두루미가 고병원성 AI 감염으로 폐사했다”며 “이 과정에서 이를 피해 순천만으로 옮겨온 흑두루미 중 일부가 폐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순천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엔 순천만 습지에서 3000여 마리의 흑두루미가 월동했는데, 올겨울에는 지난달 21일 기준 3배가 넘는 9800여 마리의 월동이 확인됐다. 순천시가 일본 이즈미의 흑두루미가 순천만으로 옮겨온 것으로 추정하는 이유다.

순천만을 찾은 흑두루미의 군무. 사진 순천시

순천만을 찾은 흑두루미의 군무. 사진 순천시

종 보존 목적 같지만…“먹이 줘야” vs “중단해야”  

 불똥은 겨울 철새 월동지로 주목받는 민통선 지역으로 튀었다. 경기도 연천군 민통선 내 임진강 일대에는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700∼1000여 마리의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시베리아에서 날아와 월동한다. 올해도 지난달 초부터 2일까지 500여 마리가 날아와 월동을 시작했다. 주로 빙애여울과 장군여울 및 인근 율무밭, 먹이터 등지에서 겨울을 난다. 경기도 파주시 민통선 내 장단반도는 세계 최대 독수리 월동지다. 군사분계선과 3㎞ 떨어진 장단반도는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독수리 700∼1000마리가 몽골에서 날아와 겨울을 보낸다.

임진강 두루미 월동지 장군여울, 빙애여울 위치도. 중앙포토

임진강 두루미 월동지 장군여울, 빙애여울 위치도. 중앙포토

이석우 연천임진강시민네트워크 대표는 2일 “먹이 주기를 통해 월동지 내 한정된 장소에서 흑두루미가 밀집한 결과 고병원성 AI 발생으로 흑두루미가 집단 폐사하는 등 멸종 위기종 보호에 허점이 노출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먹이가 고갈되는 시기와 폭설기 등 외에는 먹이 주기를 중단해야 두루미가 월동지 일대 여러 곳으로 분산돼 전염병 확산 시 전파를 줄여 희귀 조류의 종 보존이 가능하다”며 “긴급히 먹이 주기가 필요할 경우라도 먼 거리를 두고 여러 곳으로 나누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론도 만만찮다. 백운기(동물학 박사) 전 조류학회 회장은 “두루미, 독수리 등 희귀 겨울 철새에 대한 월동지에서의 먹이 주기를 당장 중단하게 되면 전염병 창궐로 약해진 개체 중 상당수가 굶어 죽는 사례가 집단으로 발생할 우려가 높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일본 이즈미, 순천만 흑두루미 월동지에서 우려했던 밀집된 월동지 내에서의 전염병 확산으로 인한 집단폐사가 발생한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먹이 주기를 전국의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행해 월동지를 분산시키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지난 2018년 2월 13일 경기도 파주시 민통선 내 장단반도 독수리 월동지. 사진 한국조류보호협회

지난 2018년 2월 13일 경기도 파주시 민통선 내 장단반도 독수리 월동지. 사진 한국조류보호협회

 관련 기관들의 대처도 엇갈리고 있다. 연천 민통선 내 임진강변에 대체 서식지 3곳을 조성해 매년 지역 환경단체를 지원해 먹이 주기 활동을 벌이는 군남댐을 관리하는 케이워터 측은 사태 추이를 지켜보며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케이워터 관계자는 “이번 겨울 율무, 벼 등 먹이 주기 예산으로 1000만원을 편성해 놓은 상태”라며 “순천만 일대의 흑두루미 고병원성 AI 확산 추이를 지켜보면서 먹이 주기 축소 및 중단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파주 장단반도 내 독수리 월동지 위치도. 중앙포토

파주 장단반도 내 독수리 월동지 위치도. 중앙포토

순천시는 먹이 주기를 지속할 방침이다. 순천시 관계자는 “일본에서 유입된 두루미 중에 몸이 약해져 면역력 저하로 폐사할 가능성이 있는 흑두루미가 추가로 발생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순천시는 세계적인 멸종위기 조류인 흑두루미의 종 보존을 위해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 월동지의 먹이 주기 활동을 지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장단반도 독수리 보호 활동을 해온 문화재청도 일단 먹이 주기를 계속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민통선 월동지에서의 먹이 주기를 중단하면 독수리가 먹이를 찾아 민통선 바깥 축산농가 등지로 날아들고 먹이 부족으로 굶어 죽을 가능성이 있어 일단 먹이 주기를 계속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다만 현재 순천만 흑두루미가 고병원성 AI로 인해 연이어 폐사하고 있는 만큼 면밀하게 추이를 지켜보며 대응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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