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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룸' '24시 대기' 하루 2만장 뿌려진다…강남 불법 전단 비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30일 역삼역 주변에 뿌려져 있던 선정적 불법 전단. 사진 채혜선 기자

지난달 30일 역삼역 주변에 뿌려져 있던 선정적 불법 전단. 사진 채혜선 기자

 최저 기온이 영하 7도까지 내려간 지난달 30일 오후 7시쯤 서울 강남구의 한 뒷골목. 강남구청 직원과 경찰 등 20여명이 4~5m 간격으로 떨어져 자리를 잡고 골목을 주시하고 있었다. 골목을 어지럽히는 불법 전단 살포자 합동 단속을 위해서다. 주로 오토바이를 탄 살포자는 인도와 차도를 가리지 않고 전단을 무차별적으로 뿌려댄다고 한다.

단속 땐 행인의 눈에 띄지 않도록 잠복은 필수다. 살포자가 나타나면 띄엄띄엄 서 있던 단속반 20여명이 호루라기를 울린다. 이는 예상 도주로에서 대기하던 직원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거나, 차량을 준비하는 등 살포자의 도피를 막기 위한 대비를 하라는 일종의 신호다. 이날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단속에선 그 어떤 살포범도 해당 골목 안으로 진입하지 않았다. 한 단속반 직원은 “단속 정보가 공유되기도 하고 1명 잡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강남서 선정적 불법 전단 끊이지 않는 까닭?

경찰 등이 단속 때 바리케이드를 준비했다. 오토바이가 순간적으로 멈출 수 있게 한다. 사진 채혜선 기자

경찰 등이 단속 때 바리케이드를 준비했다. 오토바이가 순간적으로 멈출 수 있게 한다. 사진 채혜선 기자

구청에 따르면 강남구 내 7개 구역이 선정적 불법 전단이 자주 뿌려지는 곳으로 분류된다. 구청 추산 하루 2만장이 살포된다. 그만큼 민원도 많다. 이날도 ‘24시 셔츠룸 1인 제일 환영’ ‘란제리 셔츠룸’ ‘50개 룸 150명 출근’ 등과 같은 문구가 적힌 전단이 역삼역 주변 곳곳에 흩뿌려져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1차 회식을 마치고 나오는 직장인들이 접할 수 있는 장소와 시간대에 전단이 많이 뿌려진다”고 말했다.

강남구청과 강남경찰서 등이 주 2~3회 합동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근절은 쉽지 않다. 살포자를 잡는 첫 단추부터 난관에 봉착해서다. 구청 관계자는 “무등록이나 무보험 오토바이가 대부분인 데다 불법체류자를 주로 고용하기 때문에 이들은 목숨 걸고 도망간다”고 전했다. 빠르게 달리는 오토바이 특성상 사고 우려도 있고, 단속 때 마찰이라도 있으면 과잉 진압이라고 역 고발이 들어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지난달 9일에는 도망가는 오토바이에 받혀 구청 직원이 전치 4주의 부상을 당했다. 경찰 관계자는 “거칠게 도망가다 사고라도 나면 단속반이 책임져야 하므로 위축 심리가 분명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20~30명이 투입되는 단속에서 살포범 1명 잡기는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운 좋게 이들을 잡는다고 해도 업소와 같은 고용주에게 닿기는 어렵다. 아르바이트 구인 공고 등을 통해 연결된 이들은 텔레그램 등으로만 소통한다고 한다. 전단도 지하철 사물함과 같은 특정 장소에서 받기 때문에 서로 정보를 모른다. 전단에 적힌 전화번호도 유흥주점 등과 직통으로 연결되는 게 아닌 일종의 중개업소로 파악됐다. 전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면 또 다른 번호로 연락이 오는 식으로 그들만의 네트워크가 형성돼있는데, 번호는 수시로 바뀐다. 구청 관계자는 “정보조회를 이동통신사에 요청해도 대포폰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법 비웃는 전단…“고시 필요” 

청소년보호법 제59조(벌칙) 일부

제59조(벌칙)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4. 제19조제1항을 위반하여 청소년유해매체물로서 제2조제2호차목에에 해당하는 매체물 중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른 옥외광고물을 청소년 출입ㆍ고용금지업소 외의 업소나 일반인들이 통행하는 장소에 공공연하게 설치ㆍ부착 또는 배포한 자 또는 상업적 광고선전물을 청소년의 접근을 제한하는 기능이 없는 컴퓨터 통신을 통하여 설치ㆍ부착 또는 배포한 자

관계자들은 법의 허점을 지적한다. 선정적 전단은 법을 피하려는 꼼수로 성매매를 드러내는 문구나 여성 나체 등을 담지 않는다. 이에 따라 청소년보호법이 규제하는 청소년 유해 매체물을 비껴간다. 살포자를 잡으면 옥외광고물법(구청)이나 경범죄처벌법(경찰)으로 처벌하는데, 경범죄처벌법은 처벌 수위가 10만원 이하 벌금 또는 구류·과료 등에 해당해 그리 높지 않다. 전단 살포 일이 일당 15만~20만원을 받는 고수익 아르바이트임을 고려했을 때 ‘안 잡히면 그만’이라는 의식이 퍼져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여성가족부 고시 등을 통해 청소년보호법에 걸리는 전단이라는 유권해석만 있어도 설치·부착·배포까지 모두 처벌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당 법에 따르면 청소년 유해 매체물을 일반인들이 통행하는 장소에 설치·부착 또는 배포한 자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린다. 이 관계자는 “일단 뿌리는 사람이라도 강하게 처벌하면 살포 빈도가 확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달 30일 역삼역 일대에서 주운 전단들. 성매매 암시 단어나 장소 , 여성 나체 등이 없어 청소년보호법 처벌 대상이 아니다. 사진 채혜선 기자

지난달 30일 역삼역 일대에서 주운 전단들. 성매매 암시 단어나 장소 , 여성 나체 등이 없어 청소년보호법 처벌 대상이 아니다. 사진 채혜선 기자

시대를 타고 유흥업소의 호객행위도 변해왔다는 게 단속반 설명이다. “과거엔 이른바 ‘삐끼(호객꾼)’가 손님을 붙잡았다면 이제는 1000장 뿌려 손님 1명만 받아도 남는 장사인 시대”(경찰 관계자)란 것이다. 불법 전단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다만 지난 10~11월 두 달 동안 강남서가 붙잡은 살포범 5명 가운데 4명은 구류 5일로 처벌됐다. 경찰 관계자는 “즉결심판으로 법원에 넘겼을 때 벌금이 아니라 구류가 나온다는 것은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 법원이 강한 처벌 의사를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구청은 오는 1월부터는 매일 단속에 나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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