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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사자 배우자, 재혼했다면 현충원 합장 불가?…헌재도 5:4로 치열 [그법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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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법알 사건번호 118] 유공자 남편 떠나보내고 재혼했다면 현충원 합장 안 된다?…5:4로 나뉜 헌재 결론은

지난 6월 국립대전현충원 장병묘역을 찾은 장병들이 참배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 6월 국립대전현충원 장병묘역을 찾은 장병들이 참배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국가유공자 아버지를 둔 조모씨는 돌아가신 어머니도 국립묘지에 나란히 안장되길 바라며 국립서울현충원에 합장을 신청했다가 거부당했습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떠나보낸 뒤 재혼을 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조씨의 아버지는 한국전쟁에 학도병으로 참전해 1951년 전사했습니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는 약 11년 뒤 재혼했고, 2004년 숨졌습니다. 아버지는 현충원에, 어머니는 다른 곳에 각각 안장했던 조씨는 지난 2019년 합장을 신청했습니다.

현충원이 합장을 거부하자 조씨는 거부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행정소송을 냈습니다. 1심 결론은 패소, 국립묘지법 규정상 재혼한 배우자는 합장이 안 된다는 이유였습니다. 항소한 조씨는 법 조항에 문제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도 냈습니다.

관련 법령은?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5조 제3항에는 “국립묘지에 안장된 사람의 배우자는 본인이나 유족의 희망에 따라 합장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다만 ‘안장 대상자의 사망 당시의 배우자’라는 단서가 달렸는데요. 이때 유공자가 재혼한 경우에는 전 배우자도 합장 대상이 되는데, 유공자의 배우자가 재혼했다면 제외됩니다. 조씨 측은 “헌법상 평등원칙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자유로운 결혼을 막는 위헌적 조항”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헌재 판단은?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 자리하고 있다.   뉴스1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 자리하고 있다. 뉴스1

 재판관들은 5:4로 치열하게 의견이 갈렸는데, 다수의견은 합헌이었습니다. 지난달 24일 헌재는 조씨가 청구한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다수의견은 ‘안장 대상자 예우’라는 관점에서 사건을 살폈습니다. 유공자의 배우자가 숨질 때까지 유공자의 배우자로 실체를 유지한 경우에만 합장을 허용하는 것이 충의와 위훈의 정신을 기리는 국립묘지 안장 취지에 맞다는 겁니다.

배우자를 떠나보낸 유공자가 재혼한 경우는 전·현 배우자가 모두 유공자의 배우자로서의 실체를 유지했기 때문에 모두 합장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반면 유공자의 배우자가 재혼한 경우는 인척 관계가 종료됐기 때문에 배우자로서의 실체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평등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취지입니다.

 반면 4명의 재판관(이은애, 이종석, 이영진, 김기영)은 반대의견을 내 헌법불합치로 판단했습니다. 반대의견은 ‘안장 대상자 유족 예우’의 관점에서 사건을 살폈습니다.

이들은 배우자가 재혼했더라도, 유공자 생전에 그를 도운 노력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평가했습니다. “생활공동체를 형성하면서 필연적으로 국가와 사회에 대한 희생과 공헌, 그로 인한 어려움을 함께 공유할 수밖에 없다”며 “배우자도 국가와 사회에 대한 공헌과 희생에 기여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겁니다. “국가가 배우자의 기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재혼했다는 이유만으로 합장 대상에서 일률적으로 제외한 것은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반대의견은 한국전쟁 유공자의 배우자가 갖는 특수성도 고려했습니다. “당시 국가 재정이 미약해 전사자 배우자에 대한 지원이 미약했고, 미망인과 자녀에 대한 차별이 심했던 상황에서 자녀 양육을 위해 재혼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하게 된 배우자 유족이 많았다”는 겁니다. 유공자 자녀들을 예우할 필요성도 강조했습니다. “부모를 합장할 수 없게 하는 것은 자녀에 대한 예우와 지원의 측면에서 합리적이지 않다”고 했습니다.

다만 반대의견은 단순 위헌이 아닌 헌법불합치 의견을 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느 범위에서 재혼 배우자의 합장을 허용할지는 입법부가 결정할 사항이라는 이유입니다.

조씨가 낸 행정소송 항소심 사건은 헌재 결정을 기다리기 위해 지난 2020년 11월부터 멈춘 상태였습니다. 다수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받아든 조씨는 지난달 25일 소를 취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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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법률 세상을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 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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