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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점 불꽃이 광야를 불태운다” 92년 만에 소환된 마오 어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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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6호 03면

중국 반정부 시위 확산

지난달 27일 밤 중국 베이징에서 시민들이 정부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백지를 들어보이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27일 밤 중국 베이징에서 시민들이 정부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백지를 들어보이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한 점의 불꽃이 광야를 불태운다.”

1930년 1월 5일 마오쩌둥이 부하 린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 말이다. 마오의 예언처럼 소수의 혁명가들이 지핀 한 점의 불꽃이 끝내 중국 대륙을 공산당 천하로 붉게 물들였다. 중국인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이 표현이 최근 상하이의 반정부 시위에서 등장했다. 놀랍게도 그 시위에서는 시진핑 하야와 반공산당 구호까지 등장했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초유의 일이다.

제로 코로나 정책의 극단적 억압에 대한 작은 반발에서 시작된 ‘백지 시위’는 삽시간에 주요 대도시로 번지며 동시다발적 반정부 시위 사태로 확산됐다. 한 점 불꽃의 힘을 모를 리 없는 중국 당국이 원천 봉쇄 작전에 나서면서 시위는 일단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한편으로 중국 정부는 방역 완화 기조를 내비치며 민심 수습에 나섰다. 예상하던 대로의 움직임이다.

하지만 아직 불꽃이 완전히 사그러들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번 시위로 일단을 드러낸 중국인들의 누적된 불만과 분노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백지 시위는 코로나 방역뿐 아니라 최근 수년간 지속돼 온 통제와 검열에 대한 정면 반발이었다는 점에서 언제든 재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지난 10월 20차 당대회를 통해 3연임에 성공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대 난관에 봉착한 모양새다.

시위는 자연 발생적이었다. 지난달 26일 밤 상하이 우루무치중로 도로 표지판 위에 손글씨가 적힌 작은 백지 하나가 나붙었다. “우루무치 친구들, 저희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제 가족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 표지판 아래 사람들이 촛불을 놓기 시작했다. 흰 국화꽃도 쌓여갔다. 지나는 사람이 모여들며 좁은 사거리를 메웠다. 그 사이로 하나둘 백지를 들기 시작했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시민들의 목소리는 점차 높아졌다. 누군가 선창을 하면 사람들이 따라 외쳤다. “해방 신장!” “중국 해방!” “자유를 원한다!” “언론 자유!” 등. 구호는 수십 차례 반복됐다. 늘어난 시위대 행렬을 공안이 4열로 둘러쌌다. 시 주석 퇴진 구호가 나온 건 이때였다. “공!산!당!” “물!러!나!라!” “시!진!핑” “물!러!나!라!” 중국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경찰이 강제 해산에 나서면서 충돌이 시작됐다. 항의하던 시민들이 양팔을 붙잡힌 채 끌려나가자 성난 시위대가 경찰 바리케이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날 시위는 시민들이 찍은 휴대전화 영상으로 해외로 퍼져나가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시위는 다음날 베이징으로 번졌다. 시 주석 모교인 칭화대 광장에 대학생 수백 명이 모였다. 무대에 오른 여학생이 백지를 들고 외쳤다. “봉쇄에 반대한다. 지금부터 우리는 공권력에 순응하지 않겠다.” 학생들은 “옳소”라며 박수를 보낸 뒤 “민주 법치” “표현 자유” 등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이어갔다. 칭화대 기숙사 지붕에는 ‘SB 시진핑’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내걸렸다. SB는 중국어로 ‘어리석은 바보’라는 속어의 약자다.

지난달 27일 하루에만 베이징·상하이·청두·우한·광저우·칭다오 등 10여 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위가 벌어졌다. 쓰촨성 청두에선 백지를 든 시위 참가자들이 시 주석을 빗대 “우리는 황제를 원치 않는다”고 외쳤고 우한에서는 수백 명이 거리로 뛰쳐나와 바리케이드를 부수고 유전자 증폭(PCR) 검사장을 뒤엎었다. 호주전략정책연구소는 지난달 27~30일 나흘간 중국 24개 도시에서 총 51차례 시위가 벌어진 것으로 파악했다.

시위의 일차적 원인은 고강도 방역 정책에 대한 불만이다. 현재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은 확진자가 다녀간 모든 장소를 봉쇄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 밀접 접촉자까지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다 보니 격리자 수와 폐쇄 반경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아도 동선이 겹쳐 격리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렇게 3년간 수시로 일상 활동이 중단되자 생계가 위협받는 사람들의 분노와 원성이 임계치를 넘어섰다는 분석이다.

건강을 위해서라던 방역이 오히려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현실은 중국인들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지난달 2일 코로나로 전면 봉쇄 중이던 란저우시에서 가스에 중독된 세 살 아이가 코로나 음성 증명서가 없다는 이유로 이송이 지체돼 결국 숨지자 SNS에선 “제로 코로나가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죽이고 있다”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우루무치 아파트 화재 역시 봉쇄로 소방차가 진입하지 못해 주민 10명이 숨진 인재였다.

여론은 시시각각 악화되고 있다. 일상화된 통제 위주의 방역 정책에 정부 핵심 지지층인 20~30대 반발도 커지고 있다. 이들은 우루무치 사고 추모마저 막는 당국에 분노해 “정보의 자유” 등을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정부의 과도한 감시와 통제에 대한 불만이 백지 시위를 통해 수면 위로 표출되기 시작한 셈이다.

민심 이반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중국 정부는 빠르게 태세 전환에 들어갔다. 방역 사령탑인 쑨춘란 부총리는 지난달 30일 “중국의 전염병 퇴치가 새로운 국면에 직면하고 있다”며 제로 코로나 완화 방침을 시사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쑨 부총리의 발언은 중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더는 심각하지 않다는 첫 공식 인정”이라며 “중국이 자국 경제를 옥죄던 제로 코로나 정책에서 벗어나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광저우·충칭 등 대도시들도 속속 방역 완화 조치에 나섰다. 광저우는 지난 1일부터 도심 9개 구의 방역을 전면 완화했고 충칭도 도심 곳곳에 설치했던 방역 가림막을 대부분 철거했다. 두 도시는 최근 가장 많은 신규 감염자가 발생한 곳이란 점에서 이 같은 조치는 전국적인 방역 완화의 상징적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동시에 추가 시위를 막기 위한 통제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장쩌민 전 국가주석 사망과 맞물려 여론의 향배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중국 당국은 반정부 움직임의 사전 차단에 총력을 쏟고 있다. 베이징에선 대학가 주변과 시위가 벌어졌던 량마차오 일대에 순찰차가 진을 치고 있다. 불심검문도 잦아져 상하이에선 지하철 안까지 공안이 들어와 무작위로 휴대전화를 검열하고 반정부 영상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백지 시위는 국제사회에서의 중국 입지도 좁히고 있다. 미국·영국과 유엔까지 나서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을 비판하고 나섰고 세계 각국의 시민들도 백지 시위에 속속 동참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중국에서 제로 코로나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나면서 ‘이의 제기의 전통(tradition of dissent)’이 다시 깨어나고 있으며, 그 영향은 거리 시위에 따른 충돌 후에도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제로 코로나 정책이 의도치 않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 이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도 있다”(야셍후앙 매사추세츠공대 교수)라는 평가도 나온다.

중국 내 시위는 지속될 수 있을까. 겉으로는 소강상태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중국 대륙에는 통제와 억압에 대한 분노라는 수많은 불꽃이 잠재해 있다. ‘당을 향한 충성’이자 ‘혁명’의 상징이었던 불꽃이 92년 만에 소환돼 거꾸로 당을 겨누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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