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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위험사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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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6호 31면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보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하던 카타르 월드컵이 어느새 16강전으로 접어들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기다리던 사람들이 있으니 꽤나 즐겁게 각 나라에서 월드컵을 관전하느라 열기가 뜨겁다. 어쩌면 월드컵을 비롯해서 국가 대항 스포츠 경기란 평화로운 전쟁에 해당하는가 싶을 정도로 국가적 자존심을 건 싸움이지 싶다.

아무래도 월드컵에 있어서 한국인들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은 2002년의 한국-일본 월드컵일 것이다. 보다 선진국이던 일본과 같이 월드컵을 개최하게 된 데다가 누구도 예상도 기대도 하지 않았던 4강 진출의 쾌거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너무 어려서 당시를 기억하지 못하는 나이가 아니라면 전 국민이 골 하나에 울고 웃었던 기억이 생생할 것이다. 가장 짜릿했던 것은 함께하던 거리응원이다. 자발적으로 빨간 티셔츠를 입고 얼굴에 태극 문양을 그리기도 했다. 또한 태극기를 이리저리 두르거나 심지어 옷으로 만들어 입고 나서기도 했다. 네 박자의 박수를 곁들여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어디서든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하던 기억은 매우 새로운 것이었고 잊기 어려운 일이다.

2002월드컵 거리응원 대단했지만
돌이켜보니 곳곳에 위험 도사려
이태원 참사 겪고 나서도 불안 여전
명동 공사장엔 사람과 차 섞여 다녀

선데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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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제 와서 당시의 광경들을 보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장면들이 많이 보인다. 들뜬 사람들이 지나치게 빽빽하게 인도를 메웠고 그 인파가 흘러넘쳐 차도를 점거했다. 달리는 차의 열린 창문으로 몸을 내놓고 격렬히 응원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손에 태극기를 들고 핸들을 놓은 채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기도 한다. 보호자가 축구에 정신이 팔린 가운데 응원의 열기로 들뜬 밤거리를 아이들이 돌아다니고 있기도 하다. 흥겹고 낭만적이고 즐거운 축제의 기억이지만, 자칫하면 큰 사고가 터졌을 수 있는 며칠간이었다.

따지고 보면 아슬아슬했던 것은 촛불시위 역시 마찬가지다. 각자 지지하는 진영에 따라 평가가 다를 촛불시위 자체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매우 많은 사람이 모여서 몹시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대강 큰 사고 없이 무사했던 경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심지어 불이 켜진 초를 들고 행진하기도 하고 손을 휘저으며 구호를 외치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고 하지 않았나. 그러면서도 대형사고가 없었던 것은 매우 다행이다.

한국 사회는 어떤 상태가 위험한 것이라는 인식이 약하다. 사람이 거리에 많이 나서는 거로는 대형사고가 없었던 경험들이 어쩌면 핼러윈 참사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당시 운이 좋았을 뿐 위험했다는 것을 여전히 잘 모르는 듯이 보인다. 출연자들이 사진이나 영상을 보며 신나게 2002년 거리응원의 기억을 교환하는 한국 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면 인제 보니 저런 장면은 안전하지 않다거나 저런 위험한 짓을 하다니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거나 하는 등의 언급은 없다. 어쩌면 그런 소리를 하면 산통을 깬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전조치란 잘해서 아무 일이 없다면 본전치기일 뿐이고 분위기를 억누르는 일이기도 하다.  흥분한 인파가 신이 나서 밀려다니는 이벤트가 있을 때, 해당 공간에 적절한 인원수를 고려해서 들어가지 못하게 하거나 줄을 치는 등으로 직접 통행을 막거나 버스를 우회하도록 하고 지하철을 정차하지 못하게 하는 등의 안전조치를 취하면 아무래도 불편하다. 즐겁자고 나섰는데 아무래도 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태 별일이 없지 않았냐며 막연히 괜찮다는 생각이 강하다면 이런 조치에 대해 쓸데없는 잔소리를 한다거나 비용 및 인력 낭비를 한다며 불평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관련 기관들이 항의나 욕먹을 부담을 감수하고 미리 안전조치를 취할 정도로 안전에 민감하지도 않아 보인다.

얼마 전 지나간 서울 한복판 명동의 공사장에선 자재가 어지러이 쌓여 있는 와중에 사람과 차가 섞여 지나가고, 한켠에선 포크레인이 굴러가고 공사를 진행하는 모습을 여전히 볼 수 있었다. 그토록 심각한 안전사고가 벌어진 지 오래되지 않았다. 안전이 중요하다고 그렇게나 강조하는데 사실 그런 사회라면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해당 구역의 통행을 막고 공사 관련자 이외의 출입을 막아야 한다. 왜 길을 막지 않고 이토록 위험하게 다니느냐고 어이없어했더니, 그랬다가는 이 골목을 지나가야 하는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불평하며 민원을 제기할 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아무런 안전조치가 없이 통행이 허가된 그 길을 무심히 지나가다가 사고를 당하는 것이 본인이라면, 또는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라면.

사고의 발생을 막기 위해서는 결국 위험에 대한 사회적 민감도를 높이는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이나 상황은 위험하다는 걸 여러 사람이 알고 지적해야 한다. 비단 많은 사람이 죽고 상하는 사고를 겪어야만 아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은 안전하지 못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억누르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편리함이, 또는 수익이, 다른 어떤 핑계가 안전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회가 안전할 수는 없다. 사람이 다치고 죽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태원에서 벌어진 사고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져야 하는 위치의 사람들이 분명히 있지만, 그들이 그리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은 한국 사회이기도 하다.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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