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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으로 저항하기…비판적 작가의 재발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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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6호 21면

오웰의 장미

오웰의 장미

오웰의 장미
리베카 솔닛 지음
최애리 옮김
반비

디스토피아 소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1984』, 러시아혁명이 스탈린주의로 변질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우화 『동물농장』 등을 쓴 조지 오웰은 20세기 영미 문학의 독보적인 작가다. 오웰은 프로파간다와 전체주의가 어떻게 상생하며 인권과 자유를 위협하는가에 대한 드문 통찰력을 가진 작가이며 건조한 산문체와 굴하지 않는 정치적 글쓰기로 유명한 실천적 지식인이다.

그런 오웰에게 ‘장미’는 가장 어울릴 법하지 않은 것 중 하나다. 『오웰의 장미(원제 Orwell’s Roses)』 의 첫 문장은 “1936년 봄, 한 작가가 장미를 심었다”로 시작한다. 여기서 ‘한 작가’는 오웰이다. 이 책을 쓴 리베카 솔닛은 예술평론가, 문화비평가로 ‘오웰바라기’를 자처한다. 그는 “나는 (오웰이 장미를 심었다는) 그 사실을 안 지 30년 이상 지났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장미라니, 오웰에 대해 내가 오래전부터 받아들이고 있었던 전통적인 시각을 접고 그를 더 깊이 알아보라는 초대와도 같았다”고 회고하는 솔닛이 쓴 이 책은 오웰의 초상을 새로운 각도에서 비춰 본 고백서다.

입양한 아들 리처드를 안고 있는 조지 오웰. 1945년 버논 리처즈가 찍은 사진이다. [사진 반비]

입양한 아들 리처드를 안고 있는 조지 오웰. 1945년 버논 리처즈가 찍은 사진이다. [사진 반비]

오웰이 런던 북부 월링턴의 정원에 장미를 심었던 1936년은 그가 33세 때였다. 46세의 나이로 요절한 오웰이 전성기에 들어서기 전이었다. 오웰에 대한 전기나 책들은 그를 대체로 근엄하고 우울하게 묘사했다. 하지만 솔닛은 ‘월링턴 전원생활’로 엄청난 변화를 겪은 오웰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했다. 솔닛은 일반적인 편견과는 달리 오웰이 장미와 정원 가꾸기를 좋아했으며 풍자, 전체주의 비판, 권력과 억압에 대한 저항 등 사회의 부정성을 고발하는 것 못지않게 지상의 아름다움과 즐거움, 기쁨을 추구하는 작가였음을 밝혀냈다.

오웰의 삶은 전쟁으로 점철됐다. 1차 대전 때 사춘기를 보냈고 러시아혁명과 아일랜드 독립전쟁을 거쳐 1937년 스페인내전 때는 군인으로 참전했다.  2차 대전 독일군 공습 당시에는 런던에 살았는데 집이 폭격을 당해 길거리에 나앉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는 언제나 자연에 관심을 가지고 일상적인 즐거움과 지금 여기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을 향유했다. 이런 ‘낯선 오웰’은 인간에겐 빵과 함께 장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전쟁과 정반대되는 것이 있다면 정원일 것이다. 오웰의 작품에는 꽃과 즐거움과 자연에 대한 수많은 문장이 나온다. 2차 대전이 한창일 때 자신이 심은 장미를 칭찬하면서 “폭격 맞은 자리에 풍성하게 피어나는, 분홍꽃이 피는 잡초의 이름을 아느냐”고 묻기도 했다. 오웰의 글에는 흉측한 것과 아름다운 것이 공존한다. “죽은 독일 병사 한 명이 계단 발치에 드러누워 있었다. 얼굴은 밀랍처럼 노랬다. 가슴에는 누군가가 놓아둔 라일락 한 다발이 있었다. 사방에서 라일락이 피어나던 무렵이었다.”(‘복수는 괴로운 것’, 트리뷴, 1945년 11월 9일)

오웰의 장미 옹호는 전원으로 후퇴하는 신호는 결코 아니었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정치적 논평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두꺼비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는 사회주의 정통 노선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졌다.

솔닛이라는 필터를 거쳐 재생된 오웰의 삶과 작품들은 여전히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해서는 치열하게 사고하지만,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에 대한 사랑, 삶의 즐거움과 기쁨을 함께할 줄 아는 놀라운 균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오웰과 솔닛은 기후위기와 전쟁, 불평등 심화와 극우화의 시대, 코로나 팬데믹기를 살아가는 2020년대의 우리에게 기쁨으로 저항하기야말로 지속가능한 방식임을 잘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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