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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도 극적인…구십평생의 회고록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16호 21면

시대인, 소명에 따르다

시대인, 소명에 따르다

시대인, 소명에 따르다
정수일 지음
북이십일 아르테

저자는 한국 현대사, 아니 동북아 현대사에서 누구 못지않게 극적인 삶을 살아왔다. 1996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기 전까지, 한국에서 10여년간 ‘무함마드 깐수’란 이름의 외국인으로 알려진 건 실마리 일 뿐. 그는 일제강점기 간도에서 ‘조선인’으로 태어나 일본의 패망과 함께 ‘조선족’이 됐고, 명문 베이징대학을 나온 뒤 중국 정부에 선발돼 1950년대 이집트 카이로대학에 유학했다. 더구나 중국에서 소수민족 출신 엘리트의 이력을 이어가는 대신 중국 당국을 설득하며 1963년 “환국”을, 즉 북한행을 실행했다. 스스로 꼽는, 인생의 첫 변곡점이다.

이 두툼한 회고록의 전반부는 이런 시기의 얘기가 상세하다. 가족사도 자세한데,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성씨 얘기다. 함경북도 명천 출신인 그의 집안은 ‘연일 정씨’. 한데 남한에는 이런 성씨가 없더란다. 포항의 옛 지명인 ‘영일’ 정씨와 같은 성씨란 걸 수감 생활 중 우연히 알게 되고, 나중에 종친회까지 찾아간 과정이 인상적이다. 젊어서부터 ‘세계인’의 면모를 익힌 저자의 내면에, 이처럼 강렬하게 자리한 뿌리 찾기의 열망은 어쩌면 북한행의 이유와도 통할지 모른다.

그는 북한에서 대학교수로 재직하다가 “통일 성업의 광야에 솔선하겠다는 포부”로 다시 남한행에 나섰다. 두 번째 변곡점이다. 한데 이후의 회고록은 전반부와 좀 다르다. 구체적 행적을 상세히 전하지 않는다. 한국 입국 전 10년간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닌 과정에 대해서도 개략적 언급에 그친다. 사법적 판단을 통해 자초지종이 밝혀진 내용을 반복·부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회고록 서두에 밝히긴 했지만, 전기적 완결성 면에서는 아무래도 아쉬운 지점이다.

대신 민족주의·문명교류·실크로드학에 대한 견해, 『이븐 바투타 여행기』의 완역을 비롯해 5년간의 수감 생활에서도 쉬지 않은 연구·저술 활동, 그리고 고마운 사람들에 대한 얘기가 많이 담겼다. 또 남한행의 이유와 관련해 북한에서 푸대접을 받았다는 식으로 나도는 내용에 대해서는 강력한 비판과 함께 사실이 아니란 입장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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