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 ‘컴공’ 전쟁 중인데, 교수 없어 강좌도 못 열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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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6호 02면

IT 전공 늘어도 기업은 인력난 왜  

“수강 신청부터가 전쟁입니다. 이중전공하는 고학년에게 주전공 저학년이 밀려서 전공과목을 들을 수가 없어요. 등록금을 냈는데 전공 수업도 못 듣는다니 기가 차죠. 가까스로 수강 신청에 성공한다고 해도 강의실에 가면 현타(현실을 자각하는 순간)가 와요. 150명이 넘는 학생들이 앉아 있는데, 이게 교양 수업인지 전공 수업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좋은 학교에 힘들게 노력해서 들어왔는데 이게 맞는 건가요?” (고려대학교 컴퓨터학과 3학년 김모(24)씨)

취업률 깡패였던 ‘전화기’(전기전자·화학·기계공학과)의 시대는 갔다. 숨은 강자였던 ‘컴공(컴퓨터공학과)’이 개발자 붐을 맞아 대학 내 최선호 전공으로 우뚝 섰다. 그러나, 과도한 인기는 화를 부른다. 인기 때문에 대학가에서는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진다. 계열을 불문하고 모든 대학생의 희망전공이 컴퓨터공학과로 쏠리면서 대학은 그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중앙SUNDAY는 지난달 28일부터 4일간 서울권 10개 대학 컴퓨터공학계열 학생 232명을 대상으로 이들이 겪는 ‘전쟁’에 관해 물었다. 응답자 중 75%가 ‘우리 학과 수업을 들으려는 학생들이 많아 수강 신청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고, 50%는 ‘전공 수업을 듣지 못해 휴학이나 졸업 유예를 고려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학생 수가 많아 수강 신청이 어려운 건 비단 컴퓨터공학과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컴퓨터공학과의 경우 타 학과와 다르게 기초 전공과목을 커리큘럼 순서대로 이수하지 않으면 심화 과목으로 나갈 수 없는 것이 문제다. 세종대 컴퓨터공학과 4학년인 고모(28)씨는 “기초과목 수강 신청에 실패하면 커리큘럼이 모두 꼬여 휴학하거나 계절학기를 다니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전했다.

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수강 신청만이 문제가 아니다. 복수전공·이중전공생 숫자가 대폭 늘어나면서 강의 내용도 크게 달라졌다. 응답자 중 28%는 비전공생 때문에 수업의 질이 떨어진다고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숙명여대 소프트웨어학부 3학년 이모(22)씨는 “한 수업에서는 ‘수업 평가에서 복수전공생들이 수업 내용이 너무 어렵다고 항의가 들어왔다’며 과제를 아예 없앤 적이 있다”며 “학점이 아니라 실력을 쌓으려 대학에 온 건데, 비전공생들 때문에 하향 평준화되는 것 같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부 2학년 김모(22)씨는 “전공생들 사이에서 ‘학점 잘 받고 싶으면 복수전공생 많은 강의를 들으면 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라며 “전공생 비중에 따라 수업 범위가 줄어들거나 과제 난이도가 달라진다는 것이 체감된다”고 전했다.

팀 프로젝트 등 과제 수행에 어려움을 겪은 응답자도 31%에 달했다. 고려대 컴퓨터학과 2학년 장모(22)씨는 “C언어, 파이선 수업에서는 언어를 배움과 동시에 구현하는 과제를 해야 하는데, 이중전공생 중 일부는 기본적인 컴퓨터 지식이 전혀 없어 주전공생들이 모든 걸 떠안는 경우가 잦다”며 “학생 수준별로 분반을 개설하는 등 해결책이 있을 텐데 학교 측은 묵묵부답”이라고 말했다.

누릴 수 있는 인프라는 한정된 상황에서 학생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조사에 참여한 대학생 38%는 학과에 마련된 전공 수업 커리큘럼에는 만족한다고 답했지만, 부족한 교원 수와 실습실 등 교육 인프라에 만족하지 못하는 학생은 각각 41%, 31%였다. 동국대 컴퓨터공학전공 2학년 임모(22)씨는 “컴퓨터공학과는 수업시간에 노트북 사용이 필수인데 강의실에 콘센트조차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라며 “서울권 공과대학 중에서도 등록금이 비싼 편인데, 등록금은 어디에 쓰는지 의문이 든다”고답했다.

45.7%의 학생들은 강의당 학생 수가 너무 많아 불만족스럽다고 답했다. 고려대 컴퓨터학과 4학년 곽모(28)씨는 “수강생이 너무 많아 과제를 채점하기 어려워 과제를 내지 않겠다는 교수님도 계신다”며 “학생이 많아 발표할 시간이 없다며 발표자료만 제출하는 등 해를 거듭할수록 수업의 질이 하락하고 있다”고 답했다. 서강대 컴퓨터공학전공 3학년 박모(24)씨도 “우리 과는 실습과목을 교수가 아닌 조교가 진행해 수업의 질이 최악”이라며 “학생들의 불만이 극에 달해 항의도 했지만 변하는 게 없다”고 한탄했다.

대학본부도 이런 상황을 모르는 건 아니다. 성균관대는 지난 2020학년 2학기부터 소프트웨어학과 복수전공 신청자 수를 제한했고, 고려대는 한 학기 100명가량 승인하던 컴퓨터학과 이중전공생 규모를 올해 대폭 축소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인 교원 수 부족이 해결되지 않아 학생과 학교 간의 갈등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건국대 관계자는 “지난 학기부터 컴퓨터공학과 교수 채용공고를 내고 있지만, 자격에 걸맞은 지원자조차 없는 상황”이라며 “실력이 좋은 연구자들은 모두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기업으로 진출하다 보니 대학에서 가르칠 교수 찾는 게 하늘의 별 따기”라고 설명했다. 양효식 세종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매 학기마다 최대한의 수업을 개설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학생의 요구를 수용하긴 어려운 상태”라고 전했다.

지난 6월 서울 한국외국어대 도서관 열람실에서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월 서울 한국외국어대 도서관 열람실에서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양질의 수업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은 본인 실력에 확신을 갖지 못해 사설 학원이나 대외활동을 찾아다니며 ‘자습’에 나선다. 동국대 컴퓨터공학전공 3학년 이모(22)씨는 “학교 수업의 질이 낮고, 더 이상 실무에서 활용되지 않는 수년 전 내용만 배우니 주변 친구들도 모두 사설 코딩학원에 다니거나 대외활동으로 실력을 메우는 상황”이라며 “졸업까지 두 학기가 남았는데, 학교에서 배운 것만으로는 취업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백엔드 개발자 취업을 준비하는 이씨는 “실무에서 사용하는 Spring 등 프레임워크 언어는 모두 독학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게임소프트웨어 기업 N사 인사팀 관계자는 “컴퓨터공학 전공자라고 해서 코딩 테스트를 해보면 가장 기본인 C언어도 못 하는 경우가 많아 당황스럽다”며 “적어도 대학 4년간 쌓는 전공지식을 활용할 수는 있어야 하지 않나”라고 쓴소리를 쏟아냈다.

대학 구성원들은 교육부가 대학 주도권을 쥐고 있는 현 상황에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진단한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권 여대에 재직 중인 한 교수는 “공학 계열 학과를 신설하면 정부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으니 일단 학과를 신설하곤 교수들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이라며 “부실한 커리큘럼으로 이론 위주의 대형강의를 진행하는 것이 학생들에게도 부끄럽다”고 토로했다. 위정현 콘텐트미래융합포럼 의장(중앙대 경영학과 교수)은 “대학이 워낙 보수적이어서 과목 하나를 신설하는 데 길게는 3년까지 걸리는데, 이런 상황에선 결코 시대가 원하는 정보기술(IT) 인재를 양성할 수 없다”며 “산업적인 수요에 따라 커리큘럼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희갑 포스텍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정원 규제를 해결한다고 공학 전문가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라며 “대학 커리큘럼을 전면 수정해 단순 지식 암기성 교육보다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삼성은 2015년부터 전 사원 알고리즘 교육을 실시해 고급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고, 그 결과 기술력이 상당히 향상됐다”며 “대학들 역시 이런 시대적 변화에 발맞춰 학생들이 수준 높은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낡은 대학 규제 과감히 풀고, 기업과 함께 트렌드에 맞는 인재 교육 필요”

서정연 LG 인공지능연구원 인재육성위원장

서정연 LG 인공지능연구원 인재육성위원장

대학가에선 컴공 열풍이 부는 반면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여전히 인력난에 시달린다. 관련 학위를 보유한 전공자 숫자는 늘어나고 있지만, 고차원의 인공지능(AI), 딥러닝 등을 다루는 인력 규모는 제자리여서다. 서정연 LG 인공지능연구원 인재육성위원장(서강대 컴퓨터공학과 석학교수·사진)은 “지금의 대학교육은 공학 인재를 길러내는 데 한계가 있다”며 “낡은 규제를 과감하게 없애고, 산업계와 협력하며 트렌드에 맞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나.
“컴퓨터공학 전공 수요는 넘쳐나는데 이를 감당할 교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등록금이 14년째 동결된 상황에서 적은 임금을 받고 교수직을 하려는 사람이 없다. 미국에서 학위를 취득한 연구자들은 실리콘밸리에 남고, 국내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에는 기업에 가는 게 당연시되고 있다.”
교원 구인난을 해결하면 나아질까.
“교원을 확보한다고 해도 현장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교육을 해내긴 쉽지 않다. 컴퓨터공학은 시시각각 트렌드가 변한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대에 학위를 취득한 교수가 트렌드에 맞는 교육을 할 수 있을까. 컴퓨터공학만큼은 이론을 기반으로 내실을 쌓는 현재 대학교육 방식을 적용해선 안 된다.”
결국 답은 산학협력인가.
“트렌드를 가장 잘 아는 곳이 산업계다. 시대에 맞는 인재를 양성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산업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학문을 다루는 대학에 기업이 들어온다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데, 컴퓨터공학 분야의 특성을 이해하고 수용해야 한다. 지금처럼 일부 대학만 계약학과 등의 방식으로 운영할 것이 아니라 모든 관련 학과들이 산업계와 협력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지난 9월 IT 분야 인력난 해결을 위해 민관이 공동으로 참여한 ‘디지털 인재 얼라이언스’가 출범했는데, 민간이 가진 역량을 각 교육기관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논의 중이다.”
대학 내 체질 개선도 시급하다.
“지금 대학들은 공학교육에 투자하고 싶어도 재원이 없어서 시도조차 못 하고 있다. 연구인력이 줄어들고, 우수인력은 해외로 유출되니 이대로 방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대학이 자발적으로 길을 모색할 수 있도록 교육부의 낡은 규제들을 하루빨리 없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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