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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질 위기 몰렸던 일본 감독, '도하의 비극' 29년만에 한풀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죽음의 조'에 속한 일본을 16강으로 이끈 모리야스 감독. AFP=연합뉴스

'죽음의 조'에 속한 일본을 16강으로 이끈 모리야스 감독. AFP=연합뉴스

 불과 1년 전 경질 위기에 몰렸던 모리야스 하지메 일본 축구대표팀 감독이 '도하의 기적'을 썼다.

모리야스 감독이 이끄는 일본은 2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스페인과의 2022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E조 3차전에서 2-1 역전승을 거뒀다. 앞서 1차전에서 독일에 2-1로 역전승해 파란을 일으켰던 일본은 스페인까지, 우승 후보 둘을 꺾고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독일, 스페인, 코스타리카, 일본이 묶인 E조는 이번 대회 '죽음의 조'다. 일본은 6일 알자누브 스타디움에서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준우승팀 크로아티아와 8강행을 다툰다. 일본이 이길 경우 일본 축구 역사상 최초이자, 2002 한일월드컵 한국 이후 처음으로 8강에 진출한 아시아 국가가 된다.

스페인, 독일 등 우승 후보를 연달아 꺾은 일본은 이번 대회 최대 이변을 연출했다. AP=연합뉴스

스페인, 독일 등 우승 후보를 연달아 꺾은 일본은 이번 대회 최대 이변을 연출했다. AP=연합뉴스

모리야스 감독은 이날 일본 축구사의 굴욕적인 순간으로 꼽히는 '도하의 비극' 한풀이도 했다. 이 사건은 한국과 관계 있다. 한국은 1993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1994 미국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북한에 3-0으로 승리한 뒤, 초조한 마음으로 일본의 경기 결과를 기다렸다. 당시 일본은 이라크전에서 2-1로 앞서고 있었는데,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일본이 미국행 티켓을 따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일본은 경기 종료 직전 이라크에 동점골을 내줬다. 덕분에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극적으로 월드컵 티켓을 거머쥐었다. 한국엔 '도하의 기적', 일본 축구엔 '도하의 비극'으로 남은 장면이다. 당시 일본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오열했는데, 그중엔 당시 일본 국가대표 미드필더였던 모리야스 감독도 있었다. 모리야스 감독은 29년 전 일본 축구가 자존심을 구긴 그 장소에서 최고의 장면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모리야스 감독은 1년 전까지만 해도 경질 위기까지 내몰렸다. AFP=연합뉴스

모리야스 감독은 1년 전까지만 해도 경질 위기까지 내몰렸다. AFP=연합뉴스

모리야스 감독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경질설에 시달렸다. 23세 이하 대표팀 감독을 겸임했던 그는 안방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에서 4위에 그쳤다. 일본은 메달은 노렸으나, 모리야스 감독이 일본 특유의 '패스 축구' 대신 '역습 축구'를 펼치면서 패했다.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B조에서도 불안했다. 조 2위까지 본선에 나갈 수 있었지만, 초반 3경기에서 1승 2패에 머물러 조 4위까지 처졌다.

일본축구협회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후임 감독 작업까지 준비했다. 팬 설문 조사에선 무려 85%가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8%가 '모르겠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일본은 최종예선 막판 상승세를 타면서 본선행까지 확정했다. '죽음의 조'에 편성되는 불운도 이겨냈다. 올림픽에서 그가 시도했던 '역습 축구'가 월드컵에서 독일, 스페인 등 강팀으로 빛을 발했다. 모리야스 감독은 두 팀을 상대로 전반에는 잔뜩 웅크린 채 힘을 모은 뒤, 후반전에 강한 전방 압박에 이은 빠른 역습 공격을 펼친 끝에 대승을 거뒀다.

AP통신은 "29년 전 대표팀 미드필더로 비극을 경험했던 모리야스 감독이 이제 감독으로 보상을 받았다"며 모리야스 감독 스토리를 집중 조명했다. 모리야스 감독은 "종료 1분 전쯤 도하의 비극이 떠올랐다"며 초조했던 속마음을 털어놨다. 하지만 일본은 당시와 달랐다. 수비적으로 물러서기보단 더욱 공격적으로 상대를 압박해 승리를 확정했다. 모리야스 감독은 "시대가 바뀌었다는 걸 실감했다. 선수들은 새로운 모습의 축구를 했다. 그렇게 느껴졌다"고 선수들을 칭찬했다. 그러면서 "선수들은 세계 무대에서 싸울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며 "8강, 또는 그 이상으로 새로운 기록을 세우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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