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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죽였을까? 중국 예능 접수한 ‘쥐번샤(劇本殺)’가 뭐길래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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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예능계 접수한 ‘쥐번샤(劇本殺)’

[사진 유쿠]

[사진 유쿠]

"누구 죽이러 왔어요?"

올해 5월, 중국 OTT 플랫폼 유쿠(優酷)에서 선보인 연애 예능 ‘일기탐연애(一起探戀愛)’의 한 장면이다. 연애 예능에서 좀처럼 듣기 힘든 ‘범인’, ‘단서’ 같은 단어가 들어간 대화가 한참을 오간다. 해당 프로그램은 최근 몇 년간 중국 MZ 세대에게 가장 인기 있는 놀이 중 하나인 ‘쥐번샤(劇本殺)’*를 접목한 연애 예능이다.

*쥐번샤: 주어진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플레이어들이 롤플레잉을 하면서 사건의 범인을 추리하는 게임이다. 쥐번샤 카페는 우리나라 방탈출 카페처럼 중국의 젊은 세대가 가장 많이 찾는 놀이 공간 중 하나다.

‘일기탐연애’ 속 8명의 솔로 남녀는 15일 동안 한 집에서 생활하며 일상 데이트를 하는 동시에 세 번의 쥐번샤 게임에 참여한다. 연애와 롤플레잉 추리 게임, 즉 현실과 가상세계를 결합해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최대로 높였다.

쥐번샤와 XR 기술을 접목한 예능 ‘최후영가(最後贏傢)' [사진 후야즈보]

쥐번샤와 XR 기술을 접목한 예능 ‘최후영가(最後贏傢)' [사진 후야즈보]

작년에는 중국 최초로 확장 현실(XR) 기술을 접목한 쥐번샤 예능이 등장하기도 했다. 게임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 후야즈보(虎牙直播)가 영상 플랫폼 유쿠, 쥐번샤 시나리오 플랫폼 샤오헤이탄(小黑探)과 손을 잡고 선보인 라이브 예능 ‘최후영가(最後贏傢)’의 이야기다.

'최후영가' 촬영 스튜디오 [사진 후야즈보]

'최후영가' 촬영 스튜디오 [사진 후야즈보]

해당 프로그램은 대형 LED 스크린으로 둘러싸인 XR 스테이지 스튜디오에서 촬영했고, 실시간 그래픽으로 네모난 화면 밖까지 추리 공간을 확장했다. ‘최후영가’의 과감한 기술 접목은 기존 쥐번샤 예능이 시청자를 관찰자에 머무르게 한다는 단점을 보완했다. 예능 콘텐츠가 기존 시청의 영역에서 체험의 영역으로 나아갈 방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최근 중국 OTT 플랫폼이 앞다투어 젊은 세대를 타게팅 한 웹예능을 선보이고 있는 가운데, 쥐번샤는 중국 MZ 세대의 생활 및 소셜 방식을 반영하는 소재로 인기를 끌고 있다. 앞으로도 다양한 장르 및 기술을 접목한 쥐번샤 예능이 꾸준히 제작될 예정이다.

한국 추리 예능 열풍과 뭐가 다를까?

추리 예능 '크라임씬' [사진 JTBC] / 방탈출을 소재로 한 예능 '대탈출' [사진 tvN]

추리 예능 '크라임씬' [사진 JTBC] / 방탈출을 소재로 한 예능 '대탈출' [사진 tvN]

우리나라에서도 ‘크라임씬’, ‘대탈출’, ‘여고추리반’ 등 추리 예능 콘텐츠가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추리 콘텐츠는 주로 미디어에 집중되어 있고, 대중이 온·오프라인에서 일상적으로 즐기는 놀이는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 대중들 사이에서의 쥐번샤 열풍이 미디어 콘텐츠로 확장된 것에 가깝다. 중국 시장조사기관 아이미디어리서치(艾媒咨詢)에 따르면, 이용자들이 쥐번샤를 알게 된 경로는 ‘쥐번샤 앱(쥐번샤를 온라인으로 즐길 수 있는 게임 앱)을 통해서가 26.7%로, TV 프로그램을 통해서라고 답한 25.9%를 앞섰다. 또한, 낯선 사람들과 함께 게임을 하는 것이 좋다는 응답이 64%로 나타나면서 게임 과정 중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과 의견을 나누고 소통하는 쥐번샤의 특징이 인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걸 알 수 있다.

쥐번샤 앱 '워스미(我是謎)' [사진 워스미]

쥐번샤 앱 '워스미(我是謎)' [사진 워스미]

‘워스미(我是謎)’, ‘바이볜다탄(百變大探)’ 등 쥐번샤 앱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참여형 추리 게임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온라인 특성상 소통에 제한이 있었고, 직접 플레이어들을 만나 원활한 소통과 몰입도 높은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오프라인 쥐번샤 카페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

중국 관영 매체 CCTV 재경(央視財經)의 보도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동안 중국 전역에서 쥐번샤 카페 매장 수는 2400곳에서 1만 2000곳으로 급증했으며 이용자 다수가 이때 처음으로 쥐번샤를 체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말에는 매장 수가 3만 곳으로 늘어났고, 2021년 중국 오프라인 쥐번샤 시장의 규모는 120억 위안(한화 약 2조 2322억 원)을 넘어섰다. 작년 중국 소비자 오프라인 엔터테인먼트 선호도 조사 결과, 쥐번샤는 영화와 헬스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쥐번샤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고, 작년에는 ‘맹탐탐탐안(萌探探探案)’, ‘최후적영가(最後的贏傢)’*, ‘기이극본사(奇異劇本鯊)’ 등 쥐번샤를 소재로 한 예능이 쏟아져 나왔다.

*최후적영가: 앞서 소개한 ‘최후영가’와는 다른 프로그램으로, 중국 OTT 플랫폼 아이치이(愛奇藝)에서 방영되었으며 이억봉(李易峰), 관효동(關曉彤) 등 스타들이 대거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중국 쥐번샤 예능의 원조 '명성대정탐(明星大偵探)' [사진 망고TV]

중국 쥐번샤 예능의 원조 '명성대정탐(明星大偵探)' [사진 망고TV]

흥미로운 사실은 2016년 중국에서 쥐번샤 예능의 시작을 알린 ‘명성대정탐(明星大偵探)’이 JTBC ‘크라임씬’의 판권을 구매해 리메이크한 프로그램이라는 점이다. ‘명성대정탐’의 인기 덕분에 추리 게임이 중국 주류 문화로 들어오게 된다. 입때까지만 해도 중국 내 오프라인 쥐번샤 매장 수는 극히 적었고, 쥐번샤 앱 역시 2018년 무렵 대중화됐다. 그러나 우리나라 콘텐츠가 중국 문화에 꾸준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中 쥐번샤 산업 발전 적극 지원

[사진 시나닷컴]

[사진 시나닷컴]

중국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 역시 쥐번샤 열풍에 힘을 실었다. 중국은 시나리오 기반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관리 및 규범화 정책을 계속해서 발표하고 있다.

작년 3월 중국 문화엔터테인먼트산업협회가 쥐번샤 관련 공식 조직인 ‘몰입형 대본 엔터테인먼트 전문 위원회’를 설립했고, 쥐번샤 산업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6월 중국 문화여유부(文化和旅遊部)는 중국 전역을 대상으로 쥐번샤 및 방 탈출 게임 등의 시나리오 기반 엔터테인먼트 운영시설을 새로운 관리 범위에 포함하기도 했다.

 중국 쥐번샤 산업 시장규모와 전망(2018-2025) [사진 아이미디어리서치]

중국 쥐번샤 산업 시장규모와 전망(2018-2025) [사진 아이미디어리서치]

중국 정부는 쥐번샤 관련 산업 간의 융합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작년 6월, 문화여유부는 14 차 5개년 기간 동안 문화유산 관련 기관, 관광지, 산업 단지 등에서의 문화 자원을 활용한 몰입형 콘텐츠 100개 이상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이러한 노력이 빛을 발해 2021년 중국 쥐번샤 산업의 시장 규모는 170억 2000만 위안(한화 약 3조 1661억 원)에 달했으며, 2025년까지 448억 1000만 위안(한화 약 8조 3356억 원)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쥐번샤의 무한 확장

[사진 소후]

[사진 소후]

쥐번샤의 대중화로 기존 드라마 영화의 IP가 쥐번샤로 재탄생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 2019년, 샤오헤이탄이 유명 드라마 ‘보보경심(步步驚心)', ‘랑야방2: 풍기장림(瑯琊榜之風起長林)’의 IP를 활용한 쥐번샤 게임 개발을 시작했다. 이후 중국 역대 박스오피스 6위를 차지한 영화 ‘당인가탐안3(唐人街探案3)'는 물론, ‘췌서: 데릴사위(贅婿)’, ‘척살소설가(刺殺小說傢)’ 등 인기 영화, 드라마 IP의 쥐번샤 라이선싱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제휴를 통해 IP 소유자는 IP의 확장과 더불어 2 차적인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반대로 쥐번샤 업계는 기존 드라마, 영화 콘텐츠의 인지도로 인한 신규 이용자 유입 및 영향력 확대의 효과를 얻는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몰입형 엔터테인먼트, 실감형 콘텐츠의 개발이 주목받고 있다. 나아가 오프라인 엔터테인먼트와 이용자 경험 극대화에 대한 관심도 역시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안정적으로 발전한 오프라인 엔터테인먼트 시장인 쥐번샤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쥐번샤는 인터넷 등 매체에서 스포일러 방지가 어렵고, 체험형 콘텐츠인 만큼 콘텐츠의 생명주기가 짧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다양한 장르와 플랫폼과 결합하면 확장과 재생산을 통해 장기적 수익 창출이 충분히 가능하다. 중국 엔터테인먼트 시장 진출을 노리는 우리나라 기업들도 쥐번샤 열풍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해 볼 때다.

쥐번샤(劇本殺)란?

쥐번샤는 참가자들이 각자 시나리오 속 한 캐릭터를 맡아 연기를 수행하며 사건의 범인을 추리하는 게임이다. 범인을 추리하는 ‘마피아 게임’과 소품과 장소를 활용하는 ‘방탈출 게임’을 결합한 형태다. 중국 젊은 층 사이에서 수년째 인기를 끌고 있으며, 기원은 영국의 롤플레잉 게임 ‘Murder Mystery Game’이다.

쥐번샤의 모든 과정은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진행되며, 게임의 진행자는 ‘게임 마스터’라는 호칭으로 불린다. 보통 한 명의 참가자가 다른 참가자들 모르게 범인을 연기하며, 참가자들은 증거 수집, 토론, 추리를 여러 번 거쳐 최종 투표로 범인을 선정한다. 마지막으로 게임 마스터가 사건의 진상을 발표하면서 게임을 종료한다.

차이나랩 박고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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