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부친이 反시진핑 시위 아이콘 되다…이런 아이러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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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아버지로 잘 알려진 시중쉰(習仲勳·1913~2002)은 산시(陝西)성의 자생적 공산주의자였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이끈 홍군이 대장정 끝에 산시성 옌안(延安)에 도달하자 그곳을 국민당군의 손이 미치지 않는 해방구로 만드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후 부총리에까지 올랐지만 문화대혁명 때 권력을 잃고 투옥됐다. 아들 진핑은 시골로 하방(下方)돼 막노동을 해야 했다.

마오가 죽고 권력을 잡은 덩샤오핑(鄧小平)은 복권된 시중쉰을 광둥(廣東)성에 보냈다. 그는 광둥성 성장과 당서기를 맡으며 광둥성을 개혁개방의 본거지로 키우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시중쉰에게 광둥은 제2의 고향이 됐고 광둥성 역사에서 시중쉰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됐다.

 (왼)시중쉰(習仲勳)과 아들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오) 글을 쓰고 있는 시중쉰 [사진 바이두바이커]

(왼)시중쉰(習仲勳)과 아들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오) 글을 쓰고 있는 시중쉰 [사진 바이두바이커]

인민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시중쉰이 생전 했던 이 말처럼 그는 인민의 정치적 자유를 중시했다. 급진적 자유주의 노선을 펴던 후야오방(胡耀邦)이 덩샤오핑 등 원로들에 의해 총서기직에서 물러날 때도 오직 시중쉰만이 그를 옹호하며 덩과 대립했다. 이 때문에 2012년 그의 아들 시진핑이 최고 권좌에 올랐을 때 중국의 정치적 자유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현재의 중국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시진핑은 이례적인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 3연임을 관철시켰다. ‘제로 코로나’를 앞세워 장기적인 봉쇄와 통제 정책을 편 끝에 11월 26~28일 전국 50여 대학이 시위를 벌였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가장 대규모로 일어난 대학생 시위였다.

시위의 아이콘으로 시진핑의 부친 시중쉰과 그의 근거지 광둥성이 등장한 것이 아이러니다. 중국 온라인에서는 시중쉰의 어록이 반복적으로 게재되고 있다. 정확히 자신들이 하려는 말들을 과거 시중쉰이 했다는 것이다.

“실사구시(實事求是)를 견지하고, 모든 것을 실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누가 말했든, 어느 책에서 언급했든 현실에 부합하지 않으면 그대로 답습해서는 안 되며, 잘못했으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인민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고, 인민이 국가 대사에 관심을 갖도록 장려해야 한다.”

“혁명정당은 인민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까 봐 걱정해야 한다. 가장 무서운 것은 (인민이 침묵해) 쥐죽은 듯이 조용한 것이다.”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 것은 신경쇠약 증세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민중 대다수가 자신의 민주적 권리를 소중히 여길 것이라는 점을 믿어야 한다.”

“반드시 인민 내부의 모순을 바르게 처리해야 하며, 인민을 계급의 적으로 취급해서는 절대 안 된다.”

“국가를 오랫동안 안정되게 다스리려면 반드시 민주적 발전과 법 제도의 완비에 의지해야 한다.”

“우리는 절대로 백성들의 머리 위에 서서는 안 된다. 만약 우리 간부들이 사람들에게 ‘관료’나 ‘나으리’로 보이면 큰일이다.”

“당신이 아무리 높은 관직을 맡더라도 근면하고 성실하게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진정으로 백성을 생각해야 하며, 민중과 함께해야 하며,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아무리 많은 말을 해도 소용없다. 인민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민은 ‘발로 하는 투표(외국으로 이민을 의미)’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검열 저항의 의미로 ‘아무런 글 없는 백지’ 들고 집회 중인 중국 시위 참가자들 [AP=연합뉴스]

검열 저항의 의미로 ‘아무런 글 없는 백지’ 들고 집회 중인 중국 시위 참가자들 [AP=연합뉴스]

중국 네티즌들은 최고 권력자의 부친이 한 말이기 때문에 당국이 쉽게 지울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이런 시중쉰의 어록을 퍼나르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게시물도 삭제되고 있다.

광둥성의 네티즌들은 검열을 피하기 위해 광둥어로 정부 비판 글을 작성하고 있다. 이들은 SNS인 웨이보에 “우리는 4월에 이어 이번 달에도 또 봉쇄됐다” “정부는 왜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가? 우리 집세가 공짜인줄 아는가?” 같은 글을 올렸는데 광둥어로 작성돼 정부 검열을 피할 수 있었다. 미국의 독립 미디어 감시 단체 ‘차이나 디지털 타임스(CDT)’ 관계자는 “웨이보의 콘텐츠 검열 시스템이 광둥어 철자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만약 만다린(중국 표준어)으로 적혔다면 즉시 차단·삭제됐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 CNN 방송은 “최근 중국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수단으로 광둥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광둥어는 광둥성과 홍콩, 마카오 등지에서 8000만이 넘는 인구가 사용한다. 표준 중국어인 베이징어와는 전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언어학적으로 다른 언어로 보기도 한다.

시진핑의 아버지와 그 아버지가 터를 닦은 광둥성의 언어가 아들인 자신을 비판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시진핑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안다면 어떤 심정일까.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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