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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가죽으로 '위장' 만든다…해외서 더 열광한 K-공예가

중앙일보

입력

푸른재단과 함께 의술과 미술의 만남을 주제로 전시회를 진행한 이재익(왼쪽), 최윤정 작가.장진영 기자

푸른재단과 함께 의술과 미술의 만남을 주제로 전시회를 진행한 이재익(왼쪽), 최윤정 작가.장진영 기자

버려진 가죽으로 인간의 장기를 만들고, 플라스틱과 3D 프린터로 숨결을 가둬낸 작가들이 있다. 공예 미술가인 이재익, 최윤정 작가다. 이들은 지난달 말 ‘아르스 롱가(Ars Longa)’라는 전시에 참여해 각각 위장(胃腸)과 허파 등을 공예, 그중에서도 착용할 수 있는 일명 ‘아트 주얼리’로 만들어냈다. ‘아르스 롱가’는 ‘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스가 했다는 말, “아르스 롱가, 비타 브레비스(Arts longa, vita brevis)”에서 가져왔다. 흔히 우리가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오역(誤譯)으로 잘 알려진 말이다. 원래 히포크라테스의 말은 “의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였다고 한다.

왜 하필 지금 ‘의술은 길다’는 의미의 전시를 했을까. 답은 팬데믹에 있다. 이재익 작가는 지난달 30일 본지와 만나 “팬데믹으로 전 인류에 위로가 필요한 상황을 반영했고 특히 의료진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 작가와 최 작가를 포함해 모두 25명의 공예 작가들이 각 의학 분야를 맡아 공예품을 내놨는데, 이 작가는 소화기 내과로 위와 장을, 최 작가는 호흡기 내과로 허파를 형상화한 반지와 목걸이ㆍ브로치 등을 출품했다. 전시는 젊은 의사들의 단체인 청년의사도 함께 했다.

최윤정 작가와 그가 작업한 작품들. 허파를 형상화했다. 장진영 기자

최윤정 작가와 그가 작업한 작품들. 허파를 형상화했다. 장진영 기자

최윤정 작가 역시 팬데믹이 터널을 지나며 작가로서, 엄마로서, 교수로서의 정체성을 재차 고심했으며, 그런 고민을 작품에 담았다고 했다. 그가 이번에 출품한 작품들은 대개 데칼코마니처럼 좌우 대칭인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최 작가는 “팬데믹을 지나며 삶에서의 밸런스, 즉 균형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꼈다”며 “좌와 우의 적절한 균형을 이뤄가는 것의 중요한 의미를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두 작가가 사용한 재료와 작업 방식은 특별하다. 이 작가는 가죽 중에서도 자투리로 버려지는 가죽을 모아 압축한 재료를 주로 사용했다. 가치가 없다고 버려진 것에 다시 가치를 부여해 존재감을 높인 ‘업사이클링’이다. 최 작가는 플라스틱을 이용해 그 안에 공기, 즉 인간의 숨결을 가두고 싶은 생각으로 임했다고 한다. 미술 중에서도 착용이 가능한 공예로 이런 구상이 물성을 갖췄다는 점 역시 주목할만하다. 전시를 기획한 푸른문화재단의 구혜원 이사장은 ”공예품은 완성도를 보면 하나의 작은 조각과 같다“며 ”나의 일상 생활에서 의미와 아름다움을 함께 더할 수 있다는 점에 의미를 담고 싶다“고 말했다.

이재익 작가가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버려진 가죽으로 만들어낸 인간의 위장이 주제다. 장진영 기자

이재익 작가가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버려진 가죽으로 만들어낸 인간의 위장이 주제다. 장진영 기자

이 작가와 최 작가 등 한국 공예 미술가들의 작품은 해외에서 정작 더 주목을 받는 상황이라는 점은 구 이사장이 특히 안타까워하는 부분이다. 그는 “한국 미술계 중에서도 공예가 특히 마이너처럼 여겨지는 부분은 안타깝다”며 “해외에서 수상도 많이 하고 뛰어남을 인정하는데 정작 우리가 우리 공예와 ‘아트 주얼리’의 가치를 몰라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푸른문화재단은 공예의 우수성을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매년 전시회를 해왔다. 올해는 팬데믹을 돌아보는 의미에서 의학과 예술의 만남을 주선했다면, 내년은 장르 간의 장벽을 뛰어넘는 발상의 전환이 중심이 될 전망이다. 구 이사장은 “우리는 다르면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서로 다른 개성을 인정해야 용기 있고 멋진 삶을 살 수 있다고 본다”며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 ‘입을 수 있는 공예’, 즉 ‘웨어러블 공예’인 아트 주얼리라고 생각한다”며 관심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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