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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글로벌 아이

중국 ‘방역 20조’ 묵시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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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지난 일요일 자전거 퇴근길, 파리 센강에 비유되는 베이징 량마허(亮馬河)를 지났다. 낯선 풍경과 마주했다. 하얀 A4 용지를 든 집회가 보였다. 바닥에 촛불도 있었다.

이날 시위는 많은 채증 영상으로 재구성됐다. 압권은 반중(反華) 해외세력 언쟁이다. 검은 마스크와 모자를 쓴 남성이 확성기를 들었다. “방금 들어온 소식이다. 군중 사이에 해외 반중 세력이 있다.” 시민이 반박했다. “우린 모두 중국인이다. 당신이 말하는 해외세력은 마르크스와 엥겔스다.” 시민들의 고함이 이어졌다. “스탈린·레닌이다.” “신장(新疆) 화재는 해외세력이 저질렀나. 구이저우(貴州) 버스는 해외세력이 전복했나.” “인터넷조차 해외로 못 나간다. 우리가 해외세력인가. 해외세력과 어떻게 소통하나. 지금 해외로 나갈 수는 있나. 모두 못한다.”

지난달 27일 밤 베이징 량마허 수변 광장에서 11·24 우루무치 화재 희생자를 추모하는 백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신경진 특파원

지난달 27일 밤 베이징 량마허 수변 광장에서 11·24 우루무치 화재 희생자를 추모하는 백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신경진 특파원

이 영상은 10억5100만 중국 네티즌의 눈·귀·입을 재단하는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의 검열에도 알음알음 퍼진다. 백지는 대자보보다 강렬하다. 홍콩 무협소설의 대가 김용(金庸)은 일찍이 『신조협려(神鳥俠侶)』에서 칼 없이 칼 쥔 자를 이긴다는 무검승유검(無劍勝有劍)의 경지를 상상했다.

이번 백지시위는 누가 촉발했을까. 우루무치 화재, 카타르 월드컵의 노마스크 관중석이 도화선이라면, 뇌관은 지난달 11일 발표한 방역 개선 20개 조치로 볼 수 있다. 제로코로나도 위드코로나도 아닌 이상적인 균형을 담은 정책이다. 중간과 기층 관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조치로 읽혔다. 발표 보름도 지나지 않아 확진자는 늘고, 봉쇄는 계속됐다. 애꿎은 화재 희생자가 발생했다. 전 중국인, 특히 젊은 청년이 분노했다.

20개 조치 발표 일주일 전쯤 만난 경제 전문가가 유사한 정책 기조를 전망했다. 무오류의 정치는 “완화하며 긴축하라” 식의 모순된 정책만 내놓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달 중순 예정된 경제공작회의도 같은 범주로 예상했다. 제로코로나의 중국식 명칭 ‘다이내믹 제로’도 마찬가지다. ‘제로’를 강조하면 봉쇄할 수 있다. 봉쇄를 풀 때는 ‘다이내믹’을 강조하면 된다. 무오류 정치의 전형이다.

중국이 재난빈발사회가 될 것이란 묵시론적 전망도 나왔다. 우궈광(吳國光) 미국 스탠퍼드대 중국경제·제도 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10월 말 ‘미국의 소리(VOA)’ 인터뷰에서 “관료를 강하게 통제하면 거버넌스 능력이 약해진다. 상부의 나쁜 정책이 없어도 하급 관원의 무능·독단·무지만으로 백성에게 재난”이라고 우려했다. 20개 조치가 방역을 넘어 중국 경제·사회·문화 어느 분야에서도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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