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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기현의 살아내다

몸 아픈 부모 죽음에 해방감 느낄까...간병청년 옥죄는 죄책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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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가족 돌봄 청년’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아픈 가족을 돌보는 청소년·청년을 일컫는 용어인데, 정부가 올해 2월 이들에 대한 지원 대책을 발표하면서 이 말을 세상에 내놓았다. 앞서 지난해 11월, 22세 청년이 병간호 부담 때문에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 주목을 받으면서 정부는 빠르게 대책을 마련했다.

‘가족 돌봄 청년’이라는 말은 그동안 우리 주변에 늘 있었지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던 이들을 보이고 들리게 한다. 당사자 입장에서 말하자면 또래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쉽게 설명할 수 있고, 더는 어른들에게 효녀·효자라고 불리지 않을 수 있는 말이다. 아픈 가족을 돌보는 일은 어린 친구들 사이에선 낯선 일이고, 그래서 또래들 사이에서 고립된다. 거꾸로 어른들이 효녀·효자라고 칭찬을 하는 건 당사자들이 더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한다. 가족이기에 당연히 책임지라는 강요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제 '가족 돌봄 청년'이라는 말이 생겼으니 아픈 가족을 돌보는 청년이 자신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가족 돌봄 청년'은 영 케어러(young carer), 즉 어린 돌봄자를 번역한 말이다. 가족 돌봄 휴가, 가족 돌봄 휴직 같은 기존 용어를 참조해 만들었기에 원어에 없는 ‘가족’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 돌봄이 이제 막 ‘가족’을 넘어 ‘사회’의 책임이라는 합의를 이뤄가고 있는데, 이 용어가 오히려 돌봄에 대한 가족 책임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지 우려된다. 고령화와 저출생이 계속 진행되고 가족 규모가 지속해서 축소되면, 혈연이나 혼인으로 맺어지지 않은 이들끼리 돌보는 경우도 지금보다 훨씬 많아질 수 있다. 그래서 ‘가족’을 붙이지 않고 ‘돌봄 청년’이라 부르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어쨌든 공식 용어가 생겼다는 것 자체는 환영한다. 이 사회가 아픈 이들을 돌보는 청소년·청년의 존재를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어서다.

돌봄 청년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 돌봄 청년은 아픈 이를 돌보는 일뿐 아니라, 학업이나 취업 준비 등 진로 이행을 병행해야 한다. 거기에 생계까지 담당하는 경우도 많다. 돌봄, 진로, 생계라는 삼중의 역할을 혼자 해내야 한다. 아픈 이의 병세가 악화하거나 막대한 병원비를 마련해야 할 때, 돌봄과 진로와 생계는 서로 꼬이고 엉킨다. 그런 ‘위기’를 해결하려고 고군분투하다 보면 삶의 의욕이 떨어진다.

영국 작가 애프터 앨프레드 랭클리의 작품 'Old Schoolfellows'의 한 부분.

영국 작가 애프터 앨프레드 랭클리의 작품 'Old Schoolfellows'의 한 부분.

많은 돌봄 청년들은 어릴 적부터 가사나 돌봄을 해야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스스로 부딪히며 배워야 했다. 형제가 없는 외동이거나 형제가 너무 어린 탓에 함께 협력하기도 마땅치 않았다. 주변에 도움을 청할 어른이 없었고, 어른이 있더라도 나이 어린 보호자의 말에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할머니가 널 키워줬으니 네가 어른스럽게 책임져야 한다’며 돌봄 역할을 떠넘기거나, 심지어 아픈 부모의 재산에 손을 대는 친척들도 있었다. 나를 포함한 돌봄 청년들이 겪었던 일이다.

지난해 중순, 나는 돌봄 청년들이 서로를 지지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이제까지 각자 혼자서 삼키고 삭혔던 돌봄 경험을 비로소 말하기 시작했다. 울화가 치미는 일부터 돌봄에 필요한 지식까지 차근차근 공유했다. 무엇이 힘든지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이 모임에서 조금만 말해도 비슷한 경험들이 줄을 이었다. 서로의 말에 서로의 경험이 포개지며 서로의 경험을 더 넓게 해석할 수 있게 됐다. 이 경험이 함께 연결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변화였다. 자연스레 나 혼자만 불행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됐다.

모두 각자의 방법으로 목소리를 냈다. 누군가는 돌봄 경험에 대한 글을 썼고, 다른 누군가는 방송에 나가서 인터뷰했다. 정부 간담회에 참가해 복지 사각지대를 알렸고, 여러 연구에 인터뷰이로 어려움을 증언했다.

하지만 우리가 겪는 문제를 ‘증언’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직접 해결하면 어떻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제안한 사람은 모임에 함께 하는 형민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건설 현장에서 다쳐 돌봄자가 됐다. 아버지는 인지가 저하됐고 거동도 쉽지 않았다. 요양병원에서 지내던 중 낙상으로 골반이 부러졌다. 치료는 잘 받았지만, 주변에서는 “고령자의 경우 골반 골절로 인공관절 수술을 하면 3년을 넘지 못하고 죽더라”는 말을 들었다. 덜컥 죽음이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아픈 이를 돌보는 과정에서 죽음은 순간순간 어른거렸다.

돌보는 이는 가까운 죽음을 혼자서만 두려워해야 하는 걸까? 돌봄이 끝나면 나는 아버지를 잘 애도할 수 있을까? 형민의 질문에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아버지를 여읠 수 있으며, 그것을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내게도 때때로 묵직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징글징글하게 얽히고설킨 돌봄 과정을 되돌아보면 혹여나 내가 아버지의 죽음에 해방감을 느끼지는 않을지 두려웠다. 한 존재가 마치 짐짝 내려놓듯이 사라지는 건 아닐까? 마음속 깊이 죄책감이 뿌리내릴 것만 같았다. 돌봄과 애도가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을 같이 고민하고 싶었다.

지난 3년간 돌봄 청년들을 만나면서 상실과 애도가 큰 문제임을 확인하기도 했다. 돌보는 순간만큼이나 돌봄이 끝난 뒤에도 힘들어하는 모습을 자주 봤다. 돌봄을 하는 순간에 최선을 다했음에도 결국 마음속에 남는 건 내가 ‘해낸 것’이 아니라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잘 떠나보내는 일도 어려운 일이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직장을 그만두거나 은둔하는 이들의 슬픔의 무게를 덜어줄 방법을 알지 못했다.

함께 모임을 하는 경훈(가명)은 전적으로 돌보았던 외할머니를 떠나보냈다. 2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다. 그는 최대한 지난 순간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경훈의 어머니도 아직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건 매한가지인 것 같다. 어머니는 늘 할머니에 대해 언급하며 가족들이 할머니를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경훈은 그게 어머니가 풀지 못하고 마음 속에 간진하고 있는 죄책감을 경훈과 아버지에게 전가하는 것 같다고 느낀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경훈은 어머니와 어떻게 대화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만약 가족 사이에도 애도에 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어떨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부터 고민이었다.

‘돌봄 청년의 애도 연습’, 우리가 진행할 프로젝트의 이름이다. 떠나보내기 전에도, 떠나보낸 이후에도, 애도는 연습이 필요할지 모른다. 돌봄 과정에서 순간순간 떠올리는 죽음을 혼자서만 감당하는 것을 넘어,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이들끼리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보고자 한다. 장례와 애도, 상실을 주제로 한 강연 시리즈를 기획하고, 돌봄 경험자들이 모여서 죽음에 얽힌 감정들 나눌 수 있는 라운드 테이블 모임을 진행하려고 한다. 마지막에는 각자의 마음에 맞는 장례 형식도 고민해 본다. 그렇게 돌봄 청년들은 돌봄과 애도를 잘 연결해 보려고 한다.

흔히 늙음·질병·죽음은 젊은이의 관심사가 아니라고 여긴다. 하지만 늙음도, 질병도, 죽음도 결국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삶이다. 죽음이 삶의 필연이라면, 곁에 있던 이를 잃는 상실도 필연이다. 모두가 생애 어느 순간에 겪게 되는 일이다. 왜 이제까지 혼자서만 감당해야 했을까? 애도가 결국 스스로 해내야 하는 마음의 문제라도, 그 마음을 회복하는 과정은 충분히 함께할 수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