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은 검찰의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이하 서해 사건) 수사에 대해 1일 “깊은 우려를 표한다. 부디 도를 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날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대독한 입장문에서 이같이 전했다. 서해 사건과 관련해 문 전 대통령이 공식 입장을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서훈 영장실질심사 하루 앞두고…文 “내가 최종 승인한 것”
입장문은 서해 사건으로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에 대해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지난달 29일)한 지 이틀 만에 나왔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2일로 예정돼있다. 서 전 실장은 2020년 9월 22일 오후 9시 40분 해양수산부 공무원이던 고(故) 이대준씨가 북한군에 피살되자, 이튿날인 23일 오전 1시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자진 월북’으로 사건을 정리하며 배치되는 기밀 첩보를 삭제하도록 관계부처에 지시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를 받고 있다.
검찰은 구속 영장을 청구하면서 월북조작 의혹에 문 전 대통령은 관여하지 않았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문 전 대통령은 이날 입장문에서 “서해 사건은 당시 대통령이 국방부ㆍ해경ㆍ국정원 등의 보고를 직접 듣고 그 보고를 최종 승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특수정보까지 직접 살펴본 후 안보부처의 판단을 수용했다”고 재차 강조했다.
문 전 대통령은 또 “정권이 바뀌자 대통령에게 보고되고 언론에 공포되었던 부처의 판단이 번복되었다”며 “판단의 근거가 된 정보와 정황은 달라진 것이 전혀 없는데 결론만 정반대가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려면 피해자가 북한해역으로 가게 된 다른 가능성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어야 한다”며 “다른 가능성은 제시하지 못하면서 그저 당시의 발표가 조작되었다는 비난만 할 뿐”이라고 말했다.
또 “이처럼 안보 사안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고, 오랜 세월 국가안보에 헌신해온 공직자들의 자부심을 짓밟으며, 안보체계를 무력화하는 분별없는 처사”라고도 했다.
입장문을 대독한 윤건영 의원은 “서욱 전 국방부 장관,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에 대한 구속적부심 결과로 인해 구속 필요성 없다는 게 입증됐고, 국정감사 등 여러 과정을 통해 서해 사건에 대한 정치보복 수사 부당하다는 게 이미 드러났다”며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 검찰은 계속 정치 보복성 수사를 하고 있다”고 입장 발표 배경을 설명했다. 윤 의원은 이어 “오늘 문 전 대통령이 전화로 이런 생각이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文의 정면돌파…‘나와 붙자’는 선언”…대통령실은 침묵
문 전 대통령이 서해 사건의 ‘최종 승인자’를 본인으로 지목하면서 신ㆍ구 권력 정면충돌은 불가피해졌다. 윤건영 의원은 문 전 대통령이 “도를 넘지 않기를 바란다”고 수위 높은 발언을 한 데 대해 “서욱 전 장관, 서훈 전 실장을 정치보복에 이용한단 사실에 굉장히 자괴감이 들고 지금도 대한민국 지키는 많은 전문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되는 부분 속에 나오지 않았을까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에선 이날 문 전 대통령의 입장문을 두고 “정면돌파를 선택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의 재선 의원은 “문 전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현 정부 검찰 수사가 도를 넘었다고 판단했지만, 정면으로 부딪치는 모습에 대해선 고민이 있었다”며 “그런데 이제 직접 입장을 냈다는 건, 결국 정면돌파를 하겠단 뜻”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청와대 출신 초선 의원도 “문 전 대통령은 이번 사건에 매우 당당하다”며 “검찰이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니 ‘너희가 그렇게 한다면 나하고 한 번 붙자’고 선언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정면 반박했다. 양금희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검찰은 당시 수집한 정보를 기반으로 ‘정책적 판단’을 내린 그 결과물에 대해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판단을 내리는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없었는지를 살피고 있다”며 “난데없이 월북이 아니라는 증거를 내놓으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잘못됐다”고 말했다.
김미애 원내대변인도 “문 전 대통령이 이 사건 최종 승인권자는 자신이라고 밝혔다”며 “국민이 북한으로 넘어갔는데 명확한 증거 없이 자진 월북으로 판단했다는 문 전 대통령의 자백처럼 보인다”고 논평했다. “문 전 대통령은 진실을 감추기 위해 법원이 명령한 정보공개마저 거부하고 모든 자료를 대통령기록관에 꽁꽁 감췄다”(하태경 의원), “문 전 대통령이 ‘내가 승인했다’ 인정했으니, 지금이라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봉인한 당시 사건 내용을 공개하라”(태영호 의원)이란 주장도 이어졌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이날 “서훈 전 실장은 당시 안보실 업무수행에 있어서 최종결정권자이자 최종 책임자”라고 재차 못 박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다만 ‘문 전 대통령의 비판에 대한 입장’을 묻는 취재진에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대통령실이 언급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