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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지원금 지급 후 선거 출마한 후보, 선거법 위반?…경찰 "무혐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선거 직전 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정하고 출마한 현직 구청장 출신 후보, 공직선거법상 기부행위 위반에 저촉될까.

 1일 경찰에 따르면 관악·금천경찰서는 6ㆍ1지방선거 직전 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정해 공직선거법상 기부행위금지 위반 의혹으로 고발된 박준희 관악구청장과 유성훈 금천구청장에 대해 최근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지방자치단체가 조례에 근거해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은 공직선거법에서 금지하는 기부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불기소 결정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지자체장의 재난지원금 남발을 조장할 수 있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선거 기간 중 재난지원금 지급…“조례 근거하면 적법”

2022년 재난지원금 지급 주요 기초지자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각 지자체·지방재정36]

2022년 재난지원금 지급 주요 기초지자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각 지자체·지방재정36]

 국민의힘 소속 관악·금천구 시·구의원 등은 지난 9월 19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유 구청장과 박 구청장이 선거 전 전 구민을 상대로 5만원씩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것을 두고 공직선거법상 기부행위 금지 의혹으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공직선거법 114조에 따르면 지자체장은 선거구민과 연고가 있는 자나 기관·단체·시설 등에 이익 제공과 이익제공의 의사 표시를 할 수 없다. 관악구는 구민 40만2865명에게 각 5만원씩, 201억4400만원을 ‘전 구민 긴급재난지원금’ 명목으로 지급했다. 금천구는 구민 23만6682명에게 각 5만원씩, 120억660만원을 ‘건강 돌봄 재난지원금’ 명목으로 지급했다.

 사건을 수사한 관악경찰서는 지난달 14일, 금천경찰서는 지난달 21일 박 구청장과 유 구청장에 대한 고발 건에 대해 각각 불기소 결론을 내렸다. 경찰은 관악구와 금천구의 재난지원금 지급은 기부행위금지의 예외인 직무상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국가기관 또는 지자체가 사업계획과 법령·조례 등으로 구체적으로 정한 금품제공행위는 기부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금천구는 지난 1월 27일 ‘금천구 전구민건강돌봄 긴급재난지원금 지원 기본 계획’을 수립, 금천구의회의 추가경정예산안 심사를 거쳐 지난 2월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관악구는 이보다 늦은 지난 3월 23일 관악구의회에서 의결된 ‘관악구 긴급재난지원금 지원 조례안’에 기초해 지난 4월 6일 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정했다.

두 지자체 모두 조례→계획 수립→예산 확보→구의회 의결의 과정을 거쳐 재난지원금 지급이 결정됐다.
금천구는 당초 지난 5월 6일까지 재난지원금 지급을 마치려고 했지만, 행정처리가 늦어지면서 6·1 지방선거가 끝나고 2달이 지난 8월까지 재난지원금을 순차적으로 지급했다. 관악구도 당초 예정된 기간 동안(5월 9일~6월 24일)까지 재난지원금 지급이 지연되자 8월까지 지급 기간을 연장했다. 박준희·유성훈 구청장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6·1 지방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재선 임기를 시작했다.

법원, “선거 전 지급, 금권 선거 아냐”…선거법 개정 의견도

지난 5월 29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인근 지하상가의 한 매장에 재난지원금 사용가능 문구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29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인근 지하상가의 한 매장에 재난지원금 사용가능 문구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선거를 앞두고 정부와 지자체의 재난지원금 지급을 둘러싼 논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 촉발됐다. 대법원은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지급된 정부의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이 ‘금권·관권 선거’에 해당한다며 당시 야당이던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소속 후보들이 제기한 선거무효 소송에 대해, 법령에 따른 재난지원금 기부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난해 8월 판단했다.

김세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은 지난해 11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정부 예산이 특정 후보의 당선에 영향을 미치면 금권선거가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에 대해 “원칙적으로 법령에 근거해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은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다만 "선거가 임박한 시기에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기관이 최대한 자제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헌법재판소의 판시가 있다"며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며, 바로 답변을 드릴 수 있는 사항은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서울구청장협의회는 지난 3월 금천구의 재난지원금 지급 결정에 대해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현금 살포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며 집행을 하지 않거나 지방선거 이후로 재난지원금 지급을 미뤄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박준희·유성훈 구청장 고발사건을 대리한 양윤섭 변호사는 "지난 4월 코로나19의 위험성을 나타내는 감염병 등급이 1급에서 2급으로 하향 조정됐다. 코로나19의 심각성도 낮아진 상황이라 관악구와 금천구의 재난지원금 지급 사유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선거가 아니면 납득하기 어렵다"고 경찰 결정에 이의제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황정근 변호사는 “법령과 조례에 따른 재난지원금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써 없다”며 “선거일로부터 30일, 60일 전에는 현금성 지원금을 정부와 지자체가 지급하지 못하도록 규정하는 식의 공직선거법 개정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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