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보이스피싱 총책 속이고 '먹튀'…"나 경찰인데" 서로 사기쳤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호삼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합동수사단 단장이 1일 오전 송파구 서울동부지방검찰청에서 조직폭력배와 마약사범이 연루된 보이스피싱 조직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범죄에 사용된 압수품을 공개하고 있다. 뉴스1

김호삼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합동수사단 단장이 1일 오전 송파구 서울동부지방검찰청에서 조직폭력배와 마약사범이 연루된 보이스피싱 조직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범죄에 사용된 압수품을 공개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9~11월 서울 등에서 활동했던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34)의 조직 내 직함은 ‘2차 현금수거책’이었다. 돈을 전달하는 현금 수거책은 보통 조직 사정을 잘 모르는 일개 ‘꼬리’로 통한다. 그런데 1차 수거책에게 돈을 넘겨받는 과정에서 검거된 A씨는 특이하게도 다른 수거책의 동선 등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오더집’(현금수거책에게 피해금 수수 등을 지시하는 조직)과 직접 연락이 닿는다는 뜻이었다. 검찰 등은 A씨의 통신·접견 내역 등을 분석해 A씨 상선을 쫓기 시작했다. 수사 결과 A씨는 조직폭력배(조폭)나 마약사범이 연루된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 밝혀졌다.

조폭·마약사범 낀 보이스피싱 일당 검거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합동수사단이 1일 오전 송파구 서울동부지방검찰청에서 조직폭력배와 마약사범이 연루된 보이스피싱 조직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범죄에 사용된 압수품을 공개하고 있다. 뉴스1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합동수사단이 1일 오전 송파구 서울동부지방검찰청에서 조직폭력배와 마약사범이 연루된 보이스피싱 조직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범죄에 사용된 압수품을 공개하고 있다. 뉴스1

서울동부지검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합동수사단(합수단)은 사기,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A씨 등 총 30명을 입건해 이들 중 8명을 구속하고 12명을 불구속기소 했다고 1일 밝혔다. 합수단에 따르면 A씨와 같은 단순 현금수거책만 불구속 송치된 사건을 전면 재수사하면서 밝혀낸 결과다. A씨는 1차 수거책을 상대로 자신을 단속 나온 경찰관이라고 속여 피해금 4억원을 중간에서 뜯어낸 것으로도 조사됐다.

꼬리를 타고 올라가는 수사 과정에서 가장 윗선인 총책들도 덜미를 잡혔다. 중국 오더집 총책인 중국인 2명(기소 중지)과 국내 총책 B씨(39·구속 기소)는 보이스피싱 수법으로 국내 피해자 23명에게서 9억 5000만원을 뜯어낸 혐의(사기)를 받는다. B씨는 중국 총책에게 “수거책이 돈을 경찰에 뺏겼다”고 말한 뒤 피해금 3억원을 가로채기도 했다. 합수단 관계자는 “아무리 같은 조직이어도 돈을 목적으로 모였기에 서로를 속고 속이는 복마전 양상을 띤다”고 했다. B씨는 환전책 등 일부 조직원과 필로폰을 투약하는 등 마약 범죄도 함께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조폭도 범행에 가담했다. 부산 조폭인 동방파 두목(54)과 한 칠성파 행동대원(41)은 각각 대포통장을 알선해 수수료 1억 7000만원을 챙기거나 B씨에게 ‘대포폰’에 필요한 유심칩을 제공했다.

지급정지 자료로 전 계좌 추적 

은행 지급정지를 활용한 새로운 수사 기법. 사진 합수단

은행 지급정지를 활용한 새로운 수사 기법. 사진 합수단

이번 수사에서는 여러 차례 세탁을 거쳐 특정이 어려운 피해금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추적하는 새로운 수사 기법이 활용됐다. 합수단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피해금이 피해자 계좌를 타고 인출 계좌로 빠져나가는 데에는 최소 5~6개의 대포통장이 쓰인다.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세탁에 세탁’을 거듭하는 셈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대포통장이 200여개씩 쓰이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피해 사실을 특정하려면 건건이 계좌추적 영장이 필요해 수사가 길어진다는 건 오랜 고충이었다”고 말했다.

합수단은 ‘지급정지 자료’에 주목했다. 이는 피해자들이 사기 사실을 은행에 알리면 해당 은행 측이 돈이 이체된 은행 쪽에 지급 정지를 의뢰하는 것을 말한다. 김호삼(사법연수원 31기) 합수단 단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최종적으로 피해금이 입금된 은행이 직전 이체내역을 모두 가지고 있는 점에 착안했다”고 말했다. 지급정지 자료를 역추적하면 범죄에 연관된 통장들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합수단은 계좌추적 영장 1회 발부만으로 지급정지 자료 등을 활용해 최종 인출계좌를 포함해 피해금 은닉과 세탁에 관여된 전 계좌를 특정했다.

이번 수사에서는 지난해 8월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했으나 수회에 걸친 피해금 세탁으로 피의자조차 특정하지 못해 수사가 멈췄던 사건의 피해금 6200만원이 드러나기도 했다. 합수단 소속 전수진 동부지검 부부장 검사는 “대포통장 양도나 거래 행위도 결국엔 검거될 수 있다는 것으로 범죄자들에게 위축 효과를 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 밖에 가상화폐 거래소를 통해 피해금 2000만원이 가상화폐(코인)로 환전되는 신종 피해금 세탁 방식도 확인됐다.

합수단은 아직 검거되지 않은 중국 총책 2명은 기소 중지한 뒤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에 적색수배를 요청한 상태다. 김 단장은 “조폭이나 마약사범들까지 단기간에 돈을 벌 수 있는 보이스피싱 민생범죄에 조직적으로 깊숙하게 가담하고 있는 실태가 확인됐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합동수사단

합수단은 지난 7월 사이버 범죄 중점 검찰청인 서울동부지검에서 공식 출범했다. 검찰과 경찰·국세청·관세청·금융감독원·방송통신위원회 등 범정부 인력 50여명으로 구성된 조직이다. 합수단은 출범 이래 넉 달 동안 93명을 입건하고 20명을 구속했다고 1일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