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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채 ‘금리 역주행’ 일단 정상화…기업 돈 가뭄에 단비 될까

중앙일보

입력

최우량 신용등급 한국전력 채권이 고금리를 내걸어 시중자금을 빨아들이는 '한전채 블랙홀' 현상이 누그러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M87 은하 블랙홀 상상도. 연합뉴스.

최우량 신용등급 한국전력 채권이 고금리를 내걸어 시중자금을 빨아들이는 '한전채 블랙홀' 현상이 누그러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M87 은하 블랙홀 상상도. 연합뉴스.

'한전채 블랙홀' 현상이 완화되고 있다. 한전채(AAA급) 금리가 이보다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채 금리를 앞질렀던 ‘금리 역주행’이 일단 정상화하면서다. '돈맥경화'에 빠진 채권시장에 단비가 내린 모양새지만, 회사채 시장까지 온기가 전해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전채 금리, 이틀째 회사채 금리 밑돌아 

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한전채(AAA·3년) 금리는 연 5.461%를 기록했다. 회사채(AA-·3년) 금리(연 5.468%)를 밑돌았다. 그 다음날에는 금리 하락 폭이 더 컸다. 지난달 30일 회사채 금리는 전일 대비 0.023%포인트 내렸지만, 한전채 금리는 0.047%포인트 하락했다.

한전채 금리가 회사채 금리를 앞지른 역전 현상은 지난 9월28일 이후 두 달 남짓 이어졌다. 불과 한 달 여 전인 지난 10월 21일 한전채 금리가 5.825%를 찍으며 6% 직전까지 다가섰지만, 지난달 중순부터 빠르게 떨어졌다.

그동안 채권시장에서 등급이 높은 한전채의 금리가 더 높아지자 자금이 모두 한전채로 몰려들며, 일반 기업의 자금난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혔다.

국가 보증으로 최우량 신용등급을 보유한 한국전력이 일반 회사채보다 더 많은 이자 수익을 보장하면, 한전채로 시중 자금이 쏠릴 수밖에 없다. 투플러스(1++) 등급 한우가 원플러스(1+) 등급 한우보다 더 싼 값에 나오면 원플러스 한우를 사 먹을 사람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 자산운용사 채권매니저는 “풀릴 기미가 안 보이던 ‘한전채 블랙홀(고금리 한전채가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는 현상)’ 현상이 차츰 완화되고 있다”며 “다만, 아직은 민간 기업 회사채 시장까지 온기가 전해지진 않은 모습”이라고 전했다.

최상급 신용도에도 한전이 그동안 고금리를 내걸고 시중의 자금을 쓸어담은 건 누적된 적자 탓이다. 한전의 올해 영업적자 전망치는 29조원으로 예상된다. 채권을 발행해 빚을 내지 않으면 기업 운영 자금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전이 올해 초부터 지난달까지 발행한 채권은 27조원에 달한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한전채 금리 왜 떨어졌나 ①긴축 속도 조절 기대감 

이런 한전채 금리가 하락 국면을 맞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시장에 부는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속도 조절 기대감이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24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베이비스텝) 인상했다. 기업 자금난과 내년도 경기 둔화 가능성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도 지난달 30일(현지시간) “12월에는 0.5%포인트 금리 인상도 가능하다”며 긴축의 감속을 시사했다. Fed는 지난달까지 4회 연속 기준금리를 0.75%포인트(자이언스트 스텝) 인상했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속도 조절 가능성이 부상하면서 공사채와 은행채, 우량 회사채 순서로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다”고 설명했다.

②한전채 발행 자제, SMP 상한제 등 정책 효과 

두 번째는 정책 효과다. 정부는 기업 자금난 해소를 위해 지난 10월23일 ‘50조원+α’ 규모 유동성 공급 대책을 발표했고, 지난달 28일에도 5조원 규모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투입 방침을 밝혔다. 또 한전 등 공공기관이 은행 대출을 이용하거나 발행 시기를 분산하는 등 채권 발행을 자제하게 했다.

여기에 한전이 발전회사로부터 사오는 전기 도매가격(SMP)을 이달부터 석 달 동안 1㎾h 당 160원으로 묶은 가격 개입 정책도 한전의 채권 발행 부담을 줄였다. 윤원태 SK증권 연구원은 “SMP 가격 제한 정책은 비록 동절기 석 달 동안 한시적으로 시행하지만, 채권시장 경색을 푸는 데는 호재”라고 분석했다.

증권가에선 한국전력의 올해 영업적자가 29조원에 달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연합뉴스.

증권가에선 한국전력의 올해 영업적자가 29조원에 달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전 적자 지속…내년 2분기에나 회사채에 온기” 

전문가들은 한전채 금리 정상화가 이어지며 기업과 가계의 자금난에 숨통을 틔울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전채 금리가 낮아지면, 한전과 채권시장에서 조달 금리 경쟁을 하는 AAA급 시중은행 채권(은행채) 금리도 낮아질 수 있다.

이렇게 은행의 조달 비용이 줄면 기업·가계 대출 금리도 내릴 여지가 생긴다. 또 AAA급 공기업·은행권 채권금리가 떨어지면 그다음으로 신용도가 높은 순서대로 채권금리를 낮춰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다만 회사채 시장으로도 온기가 퍼지려면 내년 2분기까지는 기다려야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경록 신영증권 연구원은 “한전 적자는 소폭의 요금 인상만으로는 해소하기 어려워 내년에도 채권시장의 부담 요인이 될 것”이라며 “금융당국 안정화 조치와 미국의 긴축 우려가 완화하면서 초우량 채권부터 투자 심리가 일부 회복했지만, 회사채 전반이 안정화 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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