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고속열차의 경쟁입찰을 둘러싼 논란에서 감사원이 코레일의 손을 들어줬다. 코레일이 추진하는 경쟁입찰방식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감사원이 확인해 준 것이다.
이에 따라 조만간 코레일과 수서고속철도(SR)가 종전처럼 국제경쟁입찰방식으로 고속열차 구매공고를 내게 되면, 현대로템과 우진산전·탈고 컨소시엄 간 2파전이 벌어질 전망이다.
1일 코레일과 철도업계에 따르면 감사원은 전날 오후 코레일이 지난 9월 요청한 고속열차 입찰방식의 타당성에 대한 사전컨설팅 답변서를 보내왔다. 감사원은 공공기관이 사업 추진에 앞서 필요한 경우 사전컨설팅을 해주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감사원은 이 답변서에 “코레일의 입찰방식인 일반경쟁 및 평가 기준(안)이 국가계약법령 등에 비추어 문제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적은 것으로 확인됐다. 코레일이 정해놓은 입찰방식과 평가 기준이 타당하다는 의미다.
감사원 "코레일 입찰방식 문제 無"
앞서 코레일은 동력분산식 고속열차인 EMU-320 17편성(136량)의 발주를 앞두고 입찰참가자격과 평가 기준을 지난해와 동일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구매 예정가는 7000억원대다.
동력분산식은 맨 앞의 동력차가 뒤에 연결된 객차를 끌고 달리는 동력집중식(KTX, KTX-산천)과 달리 별도의 동력차 없이 객차 밑에 모터를 분산 배치해 주행하며 가·감속이 뛰어나다.
코레일은 입찰자격에서 ‘시속 300㎞ 이상의 고속차량 제작 및 공급사업 경험’이란 항목을 뺐고, 국내외 업체 간 컨소시엄 구성을 통한 공동입찰도 허용했다. 협정체결국 간에 차별을 금지한 세계무역기구의 정부조달협정(WTO-GPA)에 따른 것이란 설명이다.
또 평가 기준 중 납품실적도 작년과 같이 ▶영업 최고속도 시속 320㎞ 이상의 동력분산식 철도차량 제작 납품(동등 이상 물품) ▶영업 최고속도 시속 320㎞ 이상의 동력집중식 철도차량 또는 동력분산식 고속전기철도차량 제작 납품(유사 물품)으로 정했다.
이런 기준으로 기술 평가에서 일정 점수를 넘어선 업체를 대상으로 가격을 가장 낮게 쓴 곳을 납품업체로 정하는 방식이다. 그러자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로템이 문제를 제기했다.
입찰자격에 ‘시속 300㎞ 이상의 고속차량 제작 및 공급사업 경험’을 추가하고, 납품실적에서도 동력분산식 철도차량 제작·납품만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또 기술·가격 평가 대신 협상에 의한 종합심사제로 바꾸라고도 했다.
전년도와 같은 기준인데도 현대로템이 반발한 건 중소 철도차량 제작사인 우진산전이 스페인의 고속열차 제작사인 탈고와 손잡고 입찰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사실상 현대로템 독점이던 국내 고속열차 시장에 경쟁자가 나타난 것이다.
우진·탈고 컨소시엄과 현대로템 경쟁
철도업계에선 이 같은 현대로템의 요구가 우진산전이 고속열차 제작경험이 없는 점과 탈고가 동력분산식 고속열차를 만든 실적이 없는 점을 겨냥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로템과 밀접한 국내 부품업체들도 철도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경쟁제한을 요구했다.
하지만 철도운영기관과 교통 전문가들은 “현대로템이 그동안 독점적 지위를 누리면서 기술개발 투자를 소홀히 하고 납품가만 올려온 게 사실”이라며 경쟁이 필요하다고 맞섰다.
국토부도 국회 국정감사 질의에 대한 답변서에서 “국내산업 보호를 위해 해외제작사의 참여를 제한할 경우 상호주의에 따라 국내기업의 해외진출이 어려워질 우려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적은 바 있다.
이처럼 논란이 커지자 코레일이 감사원에 사전컨설팅을 요청했고, 마침내 "별문제 없다"는 답변이 오면서 종전과 같은 경쟁 입찰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철도업계 관계자는 “감사원이 코레일의 손을 들어준 만큼 이제 고속열차 입찰을 둘러싼 논란은 사실상 해소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에 따라 코레일은 곧 고속열차 발주를 위한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며, SR도 고속열차 14편성(112량)에 대한 입찰에 나설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