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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보다 늦게 안 장관…중대본 운영 매뉴얼이 없었다 [안전 국가, 길을 찾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덕수 국무총리가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이태원 사고 및 코로나 19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뉴스1

한덕수 국무총리가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이태원 사고 및 코로나 19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뉴스1

대통령→시장→장관 
지난 10월 29일 오후 10시 15분 이태원 참사 발생 사실을 처음 접한 시점 순서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날 오후 11시 1분 보고를 받았고, 네덜란드 출장 중이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같은 날 11시 13분 이를 알고 현지서 대책을 논의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같은 날 오후 11시 20분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이 발송한 문자메시지(크로샷)를 보고 상황을 인지했다.

이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본부장인 장관이 158명이 변을 당한 참사 사실을 대통령이나 서울시장보다 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중대본은 재난 발생 시 범국가적으로 대응하는 컨트롤 타워다.

재난 컨트롤 타워 수장, 대통령보다 늦게 알아

국가 재난 안전 관리 기구와 조직의 지휘, 협조, 지원 체계. 그래픽 김경진 기자

국가 재난 안전 관리 기구와 조직의 지휘, 협조, 지원 체계. 그래픽 김경진 기자

이태원 참사와 같은 재난이 발생하면 우선 관할 시·군·구 긴급구조통제단(소방)이 출동한다. 이태원 참사는 용산소방서가 해당한다.

동시에 시·군·구 지자체 재난안전대책본부가 폐쇄회로 TV(CCTV) 통제 시스템 등으로 상황을 접하면, 긴급구조통제단에 인력·물자를 증원한다. 군대·경찰·병원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

현장 대응을 하면서 자치구·소방서는 상급 기관(서울시·중앙긴급구조통제단)에 상황을 전파하고 협조를 요청한다. 소방으로부터 재난 상황을 전파받거나 상황실에서 재난을 인지하면, 행정안전부는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를 꾸리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도 만든다. 중수본은 해당 재난을 수습하는 업무를 총괄하고, 중대본은 범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고 대응·복구를 총괄한다. 중대본은 24시간 가동하지만, 별도 상황실은 두지 않는다.

중앙안전관리위원회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도 지휘 체계상 중대본 상급 기관인데 사후 안전 관리를 심의·총괄하는 업무를 할 뿐, 재난 현장 컨트롤 타워는 중대본이다.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은 지휘 체계상 중대본 상급 기관이다. 하지만 현장 사고를 시시콜콜 보고할 의무는 없다.

“중대본, 대규모 재난 대응 어려운 구조”

최근 5년간 연도별 중대본 운영기간. 그래픽 박경민 기자

최근 5년간 연도별 중대본 운영기간. 그래픽 박경민 기자

문제는 중대본 역할이 다소 모호하다는 점이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14조는 중대본 구성원 임무·운영·근무체제·통합지원체계 등만 규정한다.

심지어 정확히 언제 중대본을 구성·해산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필요한 조처를 하기 위해 상시 운영할 수 있다’는 규정이 전부다. 이에 대해 강성기 행정안전부 재난대응정책과장은 “중대본은 비상설기구라서 대규모 재난 대응·복구에 관한 사항을 총괄 조정할 필요성이 있을 때 설치한다”고 설명했다.

중대본은 대규모 재난이 발생하면 꾸리는 비상설 조직이다 보니 운영 매뉴얼이 없다. 조성환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중대본은 운영 매뉴얼이 없어 중앙부처에서 작성한 위기관리표준매뉴얼에 의존한다”며 “대규모 사회재난에 대응하기 어려울 수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때그때 다른 중대본 회의 주재자. 그래픽 김주원 기자

그때그때 다른 중대본 회의 주재자. 그래픽 김주원 기자

중대본 본부장이 그때그때 달라지는 점도 문제다. 일단 행정안전부 장관이 본부장을 맡지만, 필요에 따라 국무총리가 맡기도 한다. 그래서 중대본 회의가 열리면 국무총리나 행정안전부 장관, 보건복지부 장관은 물론 본부장·국장·정책관급이 회의를 주재할 때도 잦다. 이에 대해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누가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는지 별도 규정이 없다”며 “부처별로 순번을 정해서 주재하고, 순번인 장관이 부재중이면 부처 관계자가 대행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엔 인명피해가 없었는데 눈이 많이 내릴 수 있다는 일기예보만 내리면 무턱대고 중대본 1단계를 가동하기도 했다. 현재는 코로나19 중대본과 이태원 참사 중대본,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중대본이 동시에 가동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폭설이나 자연재난까지 겹치면 중대본이 더 늘어날 수 있다.

이런 구조가 지휘 체계를 더 모호하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재난 대응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강호권 한국ESG융합원장은 “대규모 재난은 행정안전부 장관이, 범정부적인 대응은 국무총리가 본부장 역할을 수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책임과 권한을 불명확하게 규정했다”며 “국정 전반 조정 역할을 맡은 국무총리로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도 정부는 손발이 안 맞았다. 이태원 참사를 112 신고를 통해 가장 먼저 접수한 경찰이 중대본에 신고 내용을 보고하지 않았다. 육상 사고는 119 신고만 상황실에 보고토록 한 규정 때문이다.

“중대본 구성·운영·역할 재정립 필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이태원 사고 및 코로나19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이태원 사고 및 코로나19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중대본이 꾸려진 뒤에도 전파 시스템은 구멍이 있었다. 소방 대응 1단계 전파 대상에 장관이 빠지면서, 중대본 본부장이 대통령보다 이태원 참사를 늦게 알았다.

중대본이 조율해야 할 재난대응 기관인 지자체·경찰·소방 간 공조체계도 원활하지 않았다. 중대본 구조·구급 분야에 경찰이 빠지면서 생긴 일이다. 재난안전법 14조의2에 따르면 신속한 구조·구급을 위해 대규모 재난 현장에 투입하는 특수기동구조대는 행안부·소방청·해양경찰청 인력으로 구성한다. 또 재난 상황에서 경찰·소방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구축한 재난안전통신망도 무용지물이었다.

한편 정부는 ‘국가안전관리시스템 개편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지난달 20일 발족하고 국가안전시스템 개편에 나섰다. 위와 같은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국가 재난 대응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TF 단장을 겸직하고 있다. 다만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정부가 2014년 12월 재난안전법을 대대적으로 손봤지만 이번 참사에 큰 효과가 없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원광대 양기근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현행법상 중대본은 법적인 위치가 모호하고 구체적 내용이 없어 실효적 가동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중대본이 재난 총괄 조정 역량을 확보하려면 중대본 구성·운영·역할부터 재정립하고 재난 대응 기능과 함께 준비·점검 기능도 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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