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나비효과…"전셋집 대신 월세, 새차 10명중 3명 취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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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4년 전 결혼한 박모(34)씨는 육아를 고려해 처가가 있는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신혼집을 전세로 장만했다. 당시 5억원이었던 전셋값은 재계약 시점인 2년 후 8억원으로 훌쩍 뛰었고 박씨는 전세대출을 받아 보증금을 올려줬다. 당시 금리는 연 2.5%로, 전세대출금 3억원에 대한 이자는 월 63만원 수준이었다.

전세값이 떨어지고 있지만 전세대출금리가 오르면서 세입자의 주거 비용 부담은 커지고 있다. 뉴스1

전세값이 떨어지고 있지만 전세대출금리가 오르면서 세입자의 주거 비용 부담은 커지고 있다. 뉴스1

그런데 2년이 지나 재계약을 앞둔 지금 전세 대출 금리는 두배인 4.9%로 뛰어 이자 부담은 월 123만원으로 늘었다. 결국 박씨는 전세대출 대신 보증금의 일부를 집주인에게 월세로 지급하는 반전세로 살던 아파트에 계속 거주하기로 했다. 박씨는 “맞벌이라 2세 아이를 장모가 봐주셔서 이사는 꿈도 못 꾼다”며 “전셋값이 떨어지고 있어 전세대출금액을 1억원 줄여보려고 했는데도, 실제 주거비 부담은 더 커졌다”고 말했다.

최근 1년 새 급격히 뛴 고금리 파장이 경제‧산업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개인은 새 차 계약을 포기하고, 인수‧합병(M&A) 시장이 얼어붙는 등 금리와는 연관성이 떨어지는 분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른바 고금리의 '나비효과'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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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내 기준금리는 3.25%로, 2012년 6월 이후 10년 5개월 만에 가장 높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8월 0.5%였던 기준금리를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2.75%포인트 급격히 올렸다. 기준금리가 치솟으면서 대출금리도 급등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연초 2.83%였던 가계대출 금리는 현재(10월 기준) 5.34%로 뛰었다. 신용대출 금리는 3.46%에서 7.22%로,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2.63%에서 4.82%로 올랐다. 지난 24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추가 인상해 앞으로 대출금리는 더 오를 전망이다. 문제는 서민들에게 직격탄인 전세대출 금리도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업계에 따르면 29일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전세자금대출 금리는 연 5.34~7.37%다. 계약 기간에 따라 대출 기간을 조정해야 하는 전세대출은 대개 6개월 변동 금리가 적용돼 금리 변동에 민감하다. 10월 신규 취급액 기준 변동 금리 대출 지표인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는 3.98%로, 한 달 새 0.58%포인트 뛰었다. 이는 2010년 공시가 시작된 후 가장 높은 수치다.

세입자인 박씨는 “집 있는 사람들은 최저 연 3%까지 고정금리로 바꿔주는 지원을 하면서 돈 없는 세입자한테는 비싼 이자를 다 받겠다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실제 은행권 전세대출 증가액은 감소추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월만 해도 한 달 새 전세대출이 3조4000억원 늘었지만, 10월 들어서는 2000억원 증가에 그쳤다. 박씨처럼 전세에서 월세로 갈아타는 세입자가 늘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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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 파장은 자동차 시장까지 번지고 있다. 7년 전 산 소나타를 보유한 한모(46)씨는 6개월 전에 계약한 그랜저 구매 계약을 취소했다. 계약금 10만원을 내고 36개월 할부로 계약한 후 신차 출시만 기다리고 있었지만, 도저히 할부 이자를 낼 수 없을 것 같아서다. 한씨는 A캐피탈을 통해 할부 계약을 했는데 당시만 해도 연 4%를 밑돌았다. 하지만 이달 들어 6%가 넘는다는 소식에 마음을 접었다. 한씨는 “주택담보대출 이자가 늘어서 아내가 낮에 알바할까 고민하는 상황에서 새 차로 인한 이자 부담까지 더할 순 없어서 3년간 벼르던 새 차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자동차 할부 금리가 연 10%대까지 치솟으면서 새 차 계약을 포기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A캐피탈의 한 지점은 이달 들어서만 신차 계약자 10명 중 3명이 계약 취소를 요구했다. 모두 할부로 자동차 매매 계약을 한 계약자들이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29일 기준으로 현대차 그랜저를 할부(현금 30%, 할부기간 36개월)로 사려면 메리츠캐피탈에선 최고 10.9%의 이자(36개월 할부 기준)를 감수해야 한다. 3분기 평균 할부 금리의 두 배 수준이다.  한 달 이자만 30만원이 넘는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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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도 아우성이다. 금리가 치솟으면서 돈줄이 막혀서다. 대개 기업의 자금 마련 방법은 채권 발행과 대출이다. 최근 한국전력(신용등급 AAA)이 회사채를 연 5%대 금리로 발행했다. 이보다 신용이 낮으면 채권 금리 연 10%대는 각오해야 한다.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진 기업들이 은행 대출 창구로 몰려들고 있다. 기업 대출 금리는 연 5.27%로, 한 달 새 0.61%포인트 뛰었다. 경기도 용인시에서 반도체장비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정모(61)씨는 “끊임없는 신규 투자가 필요한 업종인데 이자 부담에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며 “그저 직원 월급 밀리지 않고 공장 가동하는 게 현재 가장 큰 목표”라고 말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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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 시장도 얼어붙었다. 고금리에 돈줄이 마르자 기업들이 몸을 사리면서 진행 중이던 M&A를 포기해서다. 유제품 생산업체인 푸르밀은 M&A가 무산되면서 결국 지난달 말 문을 닫았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서울 여의도 IFC 인수도 결국 무산됐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지난 두 달간 무산된 M&A는 6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고금리로 인해 기업 등의 부담이 상당한 상황인 만큼 내년에는 물가보다는 경기 연착륙에 초점을 두고 통화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며 “경상수지 흑자가 유지되는 한 너무 큰 폭의 금리 인상은 편익보다 비용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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