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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참사 골목 앞 30분 대화만? CCTV 찍힌 소방서장 모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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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이 이태원 참사 당일인 10월 29일 사고가 발생한 골목 앞쪽에서 30여분 간 머무르는 장면이 담긴 CC(폐쇄회로)TV를 경찰청 특별수사본부가 확보했다. CCTV 영상에 따르면 최 서장은 골목 3m 앞까지 진입하지만 현장지휘팀장과 서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만 확인된다. 최 서장이 골목 후면부로 넘어가 지휘권을 선언한 건 사고 발생 53분만인 오후 11시 8분이다. 특수본은 사고 발생 초기 최 서장의 구조 지휘 활동이 적절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지난달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한복판에서 심정지 환자가 대규모로 발생했다. 3년 만에 첫 '야외 노마스크' 핼러윈을 맞아 인파가 몰리면서 대규모 압사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뉴스1

지난달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한복판에서 심정지 환자가 대규모로 발생했다. 3년 만에 첫 '야외 노마스크' 핼러윈을 맞아 인파가 몰리면서 대규모 압사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뉴스1

골목 앞쪽에 서서 구조 활동엔 참여 안해 

 최 서장이 사고 발생 현장에 도착한 건 지난달 29일 오후 10시 30분. 이날 용산소방서 안전근무 책임관이었던 최 서장은 이태원 119안전센터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는 오후 10시 15분 사고 발생 소식을 듣고 200m 떨어진 현장으로 이동했다. 최 서장이 도착했을 당시엔 이미 사고 골목길 앞쪽에 사람들이 여러 겹으로 포개져 구조 요청을 하고 있었다. 의식을 잃은 사람도 일부 눈에 띈다. 하지만 이 CCTV에는 최 서장이 골목에서 3m 떨어진 선상에서 현장지휘팀장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만 담겼을 뿐 본격적인 구조 활동에 돌입한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소방 측은 앞서 국회에 “최 서장이 오후 10시 51분쯤 골목 뒤편에 진입해 구조 활동에 참여했다”고 보고했다. 특수본은 CCTV 상으로 최 서장이 30여분 넘게 골목 앞쪽에 머무른 사실이 확인되는 만큼 위 답변도 허위라고 판단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서 대규모 압사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30일 새벽 최성범 용산소방서 서장이 취재진 앞에서 현장브리핑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지난달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서 대규모 압사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30일 새벽 최성범 용산소방서 서장이 취재진 앞에서 현장브리핑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팔짱끼고 구경했겠나. 이동지휘 하고 있었다”

 특수본의 판단에 대해 최 서장은 30일 본지 통화에서 “대응 1단계 발령을 전면부에서 했다. 그리고 해밀톤호텔 반대방향 골목으로 들어가서 후면부 도착이 오후 11시 7분이다. 후면부에서 지휘권 선언을 하고 거기서 계속 구조 구급 활동을 지휘하고, 후면부에 계속 있었다”고 말했다. 오후 10시 43분 소방 대응 1단계 발령 이후 오후 11시 8분 지휘권을 선언하기 전까지 골목 앞쪽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때도 구조 지휘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취지다. 최 서장은 “팔짱끼고 구경하고 있었겠느냐”며 “제가 심폐소생술(CPR)을 해서 사람을 살린 게 아니라 이동 지휘를 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특수본은 최 서장을 상대로 이미 수십 명이 심정지 상태로 심폐소생술(CPR)을 받고 있는데도 신속하게 대응 2단계를 발령하지 않은 이유도 따져보고 있다. 10명 이상 인명피해가 발생할 때 발령하는 대응 2단계는 자치구 긴급구조통제단장, 즉 용산소방서장도 발령할 수 있다. 참사 당일 현장지휘팀장이 오후 10시 43분 1단계를 발령하고 2단계와 3단계는 서울소방재난본부장이 각각 오후 11시 13분과 오후 11시 48분 발령했다. 최 서장은 “골목 후면은 아비규환이었다. 전부 눕혀놓고 CPR을 하는 바람에 제가 2단계 발령을 못 하고 있으니까 본부장이 2단계 발령을 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특수본은 신속히 골목 후면부에서부터 구조 활동이 이뤄졌다면 사망자와 부상자 숫자를 줄일 수 있었다고 보고 있다. 이미 최 서장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하고 있는 특수본은 참사 당시 최 서장의 상황 판단이 적절했는지, 지휘 책임을 다했는지 등을 따져보고 있다.

지난달 30일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사고현장에서 소방구급 대원들이 현장을 수습하고 있는 모습. 우상조 기자

지난달 30일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사고현장에서 소방구급 대원들이 현장을 수습하고 있는 모습. 우상조 기자

“대응 2단계 버금가는 59대 차량 동원”

 특수본 관계자는 지난 23일 이번 사고의 골든타임과 관련 “사고 발생 후 적절한 구호 조치가 이뤄졌다면 사망까지 이르지 않았을 시간”이라며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오후 11시 정도”라고 밝힌 바 있다. 30일 특수본 브리핑에 따르면 오후 10시 42분과 오후 11시 1분, 119에 구조를 요청했던 신고자 중 2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 발생 46분여 지난 시점에도 생존자가 있었지만 살리지 못했다는 뜻이다. 골든타임 논란과 관련해 최 서장은 “대응 1단계를 발령하나 대응 2단계를 발령하나 결국에는 골든타임을 넘어선다”며 “대응 1단계를 발령하면서도 대응 2단계에 버금가는 59대의 차량을 동원했다”고 말했다.

최 서장이 당일 안전근무 책임관으로 명기가 돼 있으면서도 이태원119안전센터 내에 머물러 있던 점도 사고 예방과 관련해 논란거리다. 최 서장과 함께 안전근무 담당자로 지정된 용산소방서 직원 2명도 지정 근무장소인 해밀톤호텔 앞이 아닌 이태원 엔틱거리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최 서장은 “소방 순찰도 해야 하고 주변을 왔다 갔다 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라며 “해밀톤호텔 앞에서 (사고 현장 인근) T자 골목은 빡빡한 인파 속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 서장은 본지에“경찰은 어떻게든 간에 관할 소방서장과 현장지휘팀장을 입건시킨 상태에서 구속 수사를 하려고 하는 것 같다”며 “제가 한 곳에서 고정 지휘를 안 했기 때문에 경찰 발표와 저희가 느끼는 게 상당히 온도 차이가 많이 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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