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변양균 남기고 싶은 이야기

종부세 낼 사람, 131만명이라니…盧는 이런 걸 원치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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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변양균 남기고 싶은 이야기] 진영을 넘어 미래를 그리다 〈9〉 이념에서 못 벗어난 종부세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

20년 가까이 논란이 끊이지 않는 세금이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시작한 종합부동산세다. 뉴스를 보니 올해 종부세 고지서를 받은 사람은 131만 명이나 된다. 전국 주택 보유자의 8% 이상이 종부세 대상이라고 한다. 어느새 너무 많은 사람이 종부세 대상이 됐다. 당초 종부세를 만들었던 취지는 이런 게 아니었다.

2004~2005년 노무현 정부가 종부세 도입을 추진할 때다. 나는 기획예산처에서 차관(2004년)과 장관(2005년)을 차례로 맡았다. 당시 종부세는 재정경제부 소관이었다. 나는 관계 부처 회의에서 종부세 논의에 참여했지만 주도적 입장은 아니었다. 현재 기획재정부가 예산과 세제를 함께 담당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비싼 주택 가진 사람 벌주는 세금
당초 도입한 취지와 한참 멀어져
부가세 올려 복지재원 마련 건의
“정치적 부담 너무 크다”며 반려

노무현 정부 임기 말인 2008년 1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아파트 단지에 종합부동산세 반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올해 종부세 납세자는 131만 명으로 2007년보다 82만 명이나 늘었다. [중앙포토]

노무현 정부 임기 말인 2008년 1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아파트 단지에 종합부동산세 반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올해 종부세 납세자는 131만 명으로 2007년보다 82만 명이나 늘었다. [중앙포토]

나는 기본적으로 종부세 도입에 찬성이었다. 이유가 있었다. 종부세는 다른 세금과 다르게 부유세와 목적세의 성격이 있다고 봤다. 명시적으로 법에 담은 건 아니지만 당시 종부세를 설계한 취지가 그랬다.

부유세는 말 그대로 부자에게만 매기는 세금이다. 종부세 초기에는 최상위 0.5% 수준이었다. 나중에 확대하더라도 상위 1%를 넘지 않을 것으로 봤다. 종부세를 거둬 사회적 약자를 돕는다는 목적세 성격도 중요했다. 이런 식으로 바꿔 말할 수 있었다. ‘당신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이 아니냐.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 쓸 테니 세금을 좀 내라.’

어느 순간 이런 취지가 다 사라졌다. 비싼 부동산을 가진 사람에게 ‘징벌적 세금’을 매기는 것으로 변질했다. 상위 1%라는 건 옛말이 됐다. 서울 강남에 살면 수십만 명이 종부세 대상이라고 한다. 부유세도, 목적세도 아닌 게 돼 버렸다. 재산세를 무겁게 매기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국세(종부세)냐, 지방세(재산세)냐 구분은 있지만 납세자에겐 전혀 중요하지 않은 얘기다.

전 정부 시절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할 기회가 있었다. 부동산 얘기가 나왔다. 문 대통령은 주택 공급을 언급했다. “이제부터 공급 대책도 착실히 할 겁니다.” 나는 이렇게 말해줬다. “공급보다 더 큰 문제는 부동산 정책이 이념화된 겁니다. 이념화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내가 조언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였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종부세 대상자 축소에 반대한다. 아직도 부동산 정책의 이념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저소득층 영어교육에 종부세 활용

나는 2006년 7월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들어갔다. 이미 종부세를 할 거냐, 말 거냐 하는 논의는 끝난 시점이었다. 대신 종부세로 거둔 돈을 어디에 쓸 것이냐에 집중했다. 2007년 기준으로 약 2조원이란 계산이 나왔다. 교육인적자원부와 상의했다. 방과후학교를 중심으로 어린이 영어교육에 이 돈의 일부를 쓰기로 했다.

당시 어린이 영어교육은 부모의 소득수준에 따라 격차가 심했다. 고소득층 자녀들은 영어유치원이니 뭐니 하면서 아주 어릴 때부터 원어민에게 영어를 배웠다. 반면 저소득층에선 원어민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한 애들이 대부분이었다. 종부세 수입을 저소득층 교육지원에 쓰는 건 목적세 성격에도 잘 맞았다.

그런데 걸림돌이 있었다. 진보를 표방하는 교육단체들이 조기 영어교육에 강력히 반대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노 대통령이 주재하는 교육 관련 회의였다. 교육단체들은 한글 교육이 우선이라고 주장하며 초등 저학년 영어교육을 비판했다.

보다 못해 내가 나섰다. “조선시대에 어땠는지 아십니까. 한문을 아느냐, 모르느냐로 양반과 상놈의 계급이 나뉘었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대학 졸업자냐, 아니냐로 사회 계급이 갈라졌습니다. 앞으로는 영어를 잘하느냐, 못 하느냐로 계급이 나눠질 겁니다.”

그러면서 진보가 초등생 영어교육에 반대하는 게 얼마나 모순적인지 꼬집었다. “교육으로 계층이동 사다리를 제공하는 게 진보의 핵심 주장이 아닙니까. 저소득층 교육지원에 앞장서지는 않을망정 가로막아서야 되겠습니까.”

나중에는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2007년 4월 EBS 영어교육 채널 개국행사였다. 나도 대통령을 수행해 행사에 참석했다. 노 대통령은 영어교육에서 기회의 평등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역설했다. “세계와 함께 호흡하기 위해서는 영어가 꼭 필요합니다. 교육기회의 불균등이 계층이동을 가로막고 사회적 통합을 어렵게 하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세금은 잘 걷는 것 못지않게 잘 쓰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납세자를 설득할 수 있다. 올해 국세청이 부과한 종부세 총액은 7조5000억원이라고 한다. 예전보다 세수는 크게 늘었는데 교육격차 해소같이 좋은 일에 썼다는 말은 별로 들리지 않는다. 종부세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장관직 걸고 부가세 인상 공론화”

종부세를 둘러싼 논란은 ‘비전 2030’의 좌절에도 영향을 줬다. 2006년 8월에 내놓은 비전 2030은 정부가 어떻게 돈을 써서, 나라를 어떤 모습으로 바꾸겠다고 설명한 장기 계획서다. 여기에는 2030년까지 1100조원(물가상승을 반영한 경상가격)을 투입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런데 종부세와 마찬가지로 ‘세금폭탄’ 프레임에 걸려들었다.

비전 2030 발표 몇 달 전이다. 기획예산처 장관이던 나는 노 대통령에게 초안을 보고했다.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옆에 조그마한 골방이 있었다. 노 대통령이 숨어서 담배를 피울 때 쓰던 곳이다. 권양숙 여사가 하도 담배를 못 피우게 하니까 그랬다.

그 방에서 이렇게 건의했다. “기본적으로 세금을 올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정면으로 치고 나가는 게 좋겠습니다. 제가 발표한 다음에 너무 시끄러워지면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습니다.” 노 대통령은 딱 부러지게 반대했다. “그걸 왜 장관이 책임집니까. 대통령이 책임져야죠.”

다음에 또 기회가 생겨서 이렇게 말했다. “세금을 올리려면 부가가치세를 올려야 합니다. 북유럽 선진국에선 부가세로 평균 20%를 걷습니다. 그 나라 사람들이 바보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10%인데 5%포인트만 올려도 됩니다.”

내가 계속 고집을 부리니까 노 대통령도 고민스러웠던 모양이다. 청와대 안에서 의논해 보겠다고 했다. 얼마 뒤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정치적으로 너무 부담이 큽니다. 세금 올리는 건 없던 일로 하시죠.” 나로선 더 어떻게 해보기가 어려웠다.

할 수 없이 비전 2030에선 재원조달 방안 세 가지를 나열하는 것으로 그쳤다. 첫째는 국가채무로 충당, 즉 국채를 찍는다. 둘째는 조세로 충당, 즉 세금을 올린다. 셋째는 국가채무와 조세로 나눠서 충당한다. 무엇을 선택할지는 국민의 몫으로 남겼다. 돌이켜 생각하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직접세보다 간접세가 공평한 세금”

세금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직접세와 간접세가 대표적인 구분이다. 예전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는 이렇게 가르쳤다. 직접세는 가난한 사람에겐 낮은 세율, 부자에겐 높은 세율을 매긴다. 간접세는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같은 세율을 적용한다. 그러니 간접세는 저소득층에 실질적으로 더 많은 세금을 부담시키는 역진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순진한 얘기다. 못 살고 물건이 귀하던 시절에는 이게 맞을 수도 있다.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다. 핸드백을 예로 들어보자. 어떤 사람은 20만원짜리 핸드백을 사고, 어떤 사람은 2000만원짜리를 산다. 부가세율은 똑같이 10%다. 그럼 20만원짜리 구매자는 2만원, 2000만원짜리 구매자는 200만원을 세금으로 낸다. 이렇게 계산하면 간접세에서도 100배의 차이가 난다.

나는 노 대통령에게 거듭 건의했다. “사실 부가세가 더 공평한 겁니다. 그러니 부가세를 올리는 게 좋겠습니다.” 처음에는 노 대통령도 교과서 수준으로 직접세와 간접세를 이해하고 있었다. 대신 죄악세에 관심이 많았다. 아마도 담배를 자주 피우기 때문인 듯했다. 죄악세는 술·담배·도박 등 사회적으로 좋지 않은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부과하는 세금이다. 하지만 죄악세로는 막대한 복지재원을 충당할 수 없다. 담배에 매긴 세금을 금연사업에 쓰는 식이어서 다른 데 쓸 돈도 많지 않다.

비전 2030을 발표한 다음에도 틈만 나면 노 대통령과 재원 마련 방법을 의논했다. 노 대통령은 임기 말인 2007년 10월 부산의 한 행사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세금 올리자는 이야기를 아무도 안 한 데 대해 아주 심각한 유감을 갖고 있습니다. 저도 못 올리고, 올려 보지도 못하고 ‘돈이 이만큼 필요할 것이다’라고 계산서 내놓았다가 박살 나게 맞고 물러갑니다.”

어느 정권이든 증세 얘기를 꺼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977년 부가세를 도입했던 박정희 대통령은 그것 때문에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는 분석도 있다. 어쨌든 한국은 부가세 덕분에 안정적인 세입을 확보하고 재정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박 대통령의 중요한 업적이라고 볼 수 있다.

얼마 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부가세와 소득세 실효세율 인상을 제안했다는 신문기사를 봤다. 국가채무 비율이 지나치게 높아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정도로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정부는 국민의 기본수요를 책임지면서 그들이 적어도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게 도와야 한다. 비전 2030이 추구한 국가의 역할이다. 그러려면 적극적으로 세금 부담을 늘려야 한다. 이제라도 미래 비전을 함께 제시하면서 과감한 부가세 인상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정리·대담=주정완 논설위원, 이정재 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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