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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사라진 국제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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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혜란 기자 중앙일보 국제부장
강혜란 국제부장

강혜란 국제부장

2일 열리는 제주포럼 측 의뢰에 따라 올해 주요 국제뉴스와 뉴스인물을 추려봤다. 마지막 한장 남은 달력이 비로소 실감 난다. 국제부장이라서가 아니라 올해 국제뉴스는 어느 해보다 우리 가까이 다가온 느낌이다. 예컨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그 자체가 세계사적 사건이지만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이젠 국내 문제와 얽힌다. 한국 방산업체가 납품하는 포탄이 미국을 거쳐 우크라이나로 지원되니 마니 하는 식이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은 대만이라는 이웃 나라의 지정학이 한국 경제안보와 직결돼 있음을 깨닫게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주먹 인사’를 하며 화해를 시도할 땐 국제뉴스려니 했지만, 지난달 20시간 방한을 통해 40조원 규모 계약·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국내 포털이 실시간 그의 뉴스로 요동쳤다.

미국 유력지 워싱턴포스트가 10·29 이태원 참사 관련 해 특집 심층기사를 내고, 자체 입수한 사진·영상을 분석하며 사고 원인을 탐사했다. [워싱턴포스트 캡처]

미국 유력지 워싱턴포스트가 10·29 이태원 참사 관련 해 특집 심층기사를 내고, 자체 입수한 사진·영상을 분석하며 사고 원인을 탐사했다. [워싱턴포스트 캡처]

국제뉴스만 국내뉴스화하는 게 아니다. 지난 5월 바이든 대통령 방한 당시 한·미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외신 기자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남성 편중 내각’을 지적했다. 윤 대통령의 지난 9월 뉴욕 순방 당시 이른바 비속어 논란은, 이후 문제의 보도매체(MBC)와 대통령실의 갈등까지 외신의 관심사가 됐다.

무엇보다 ‘이태원 참사’가 있다. 북핵 관련 뉴스를 빼고 이렇게 일시에 전 세계 언론이 톱뉴스로 올린 한국 이슈는 손꼽을 정도다. 사망자 158명 중에 외국인 26명이 포함돼서만은 아니다. 세계 경제순위 10위권의 ‘선진국’이 압축성장 속에 가려온 위험사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 데 세계인들도 경악했다. 사우디의 성지순례나 인도·인도네시아의 비극을 전할 때 썼던 ‘군중 압사’가 국제뉴스 전용어가 아니었다.

실은 직업적 위기도 느꼈다. 워싱턴포스트(WP)가 11월 16일(현지시간) 발행한 디지털 심층보도 ‘이태원 참사:반복된 실수와 지연된 구조’를 접했을 때다. “단독 입수한 영상과 사진을 포함해 350개 이상의 자료를 분석하고 대조”하고 전문가 자문을 통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주요인을 분석한 기사는 영어 원문부터 폭발적인 조회 수를 불렀다. 급기야 WP는 이틀 뒤 한글로도 서비스를 시작했다. 뒤이어 뉴욕타임스도 이태원 특집 보도를 냈다. 이들 기사가 국내 언론의 선제적 보도 없이 가능하진 않았을 거라 위안하면서도 BBC코리아를 ‘민족정론지’라고 추켜세우는 사람들의 반농담이 뜨끔하다. 한국 경제·외교 위상이 강화될수록 더욱 섞이고 얽힐 국제·국내 뉴스에서 한국 언론은 얼마나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는가. 내년 이맘때 더 나은 답을 얻게 될까 자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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