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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 사후 처벌→사전 자기규율 예방체제로 전면 전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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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30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30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중대재해를 다루는 방식을 확 바꾸기로 했다. 산업현장에 사망사고가 난 뒤 사후 처벌하는 체제에서 사전에 사업장 단위에서 스스로 규율을 정해 예방하는 방식으로다. 산업안전 선진국이 채택하고 있는 방법이다.

정부는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30일 발표했다. 목표는 임기 내(2026년)에 중대재해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끌어내리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은 사고사망만인율이 0.43‱(퍼밀리아드)다. 10만명당 4.3명이 산업현장에서 사고로 숨진다는 의미다. OECD 평균은 0.29‱이다. 〈중앙일보 10월 24일자 E2면〉

정부는 이를 위해 ▶자기 규율 예방체제 확립 ▶ 중소기업 등 중대재해 취약분야 집중 지원·관리 ▶근로자의 참여와 협력을 통한 안전의식과 문화 확립 ▶산업안전 전문기관 역량 강화 등 거버넌스 재정비 등의 4대 전략을 세우고, 14개 핵심 과제를 선정해 추진하기로 했다.

핵심은 자기 규율 예방체제 확립이다. 사업장에서 스스로 위험요인을 파악해 개선 대책을 수립·이행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규제와 처벌 위주의 현재 방식으로는 처벌을 피하기 위한 면피성 안전대책이 난무하고, 이로 인해 사업장 특성에 맞는 실효성 있는 예방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안전 의식 자체가 '감옥 피하기'로 흘러 실질적인 안전 의식이나 문화가 체화되지 않는 현상도 확산하고 있다. 실제로 중대재해법이 발표(1월 27일)된 뒤 올해 10월까지 중대재해로 인한 사망자는 224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 가까운 17명이나 늘어나는 등 증가 추세다.

정부는 우선 2013년 도입한 위험성 평가제도를 개편하기로 했다.

위험성 평가제도는 노사가 함께 사업장 내 유해·위험 요인을 파악해 개선대책을 수립하고, 이를 이행하는 제도다. 2013년 도입하자 이듬해 사고사망만인율이 0.71‱에서 0.58‱로 확 떨어졌다. 하지만 규제와 처벌 중심의 법령과 감독체제에서 자기 규율 방식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한계를 드러냈다. 법적 조치와 동일한 대접을 받지 못하면서 사문화해 2015년부터 사고사망만인율은 다시 정체했다.

정부는 이런 학습효과를 바탕으로, 자율적으로 벌이는 산업안전 활동을 법적으로 동등한 효력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도입하게 된 것이다. 대기업(300인 이상)은 내년부터 위험성 평가를 의무화한다. 중소기업은 2024년부터 연차적으로 적용을 확대하기로 했다. 위험성 평가에 대한 시정명령과 벌칙도 신설한다. 정부의 지도점검 때는 법 위반 사항보다 위험성 평가의 적정성 등을 주로 체크하는 방향으로 확 바꾼다. 또 안전 투자 촉진과 같은 예방성 효과를 높이기 위해 매출액의 일정 비율을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경제적 제재를 강화할 방침이다. 위험성 평가를 하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중대재해발생 시 자체 노력사항을 수사자료에 적시해 구형이나 양평 판단 때 고려토록 할 방침이다.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핵심 사항을 중심으로 처벌 요건을 단순화하고, 중대재해법과 산업안전법의 적용 단위와 보호 범위의 차이에서 오는 혼란을 막기 위해 이를 일원화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그렇다고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에 대한 형사처벌을 면제하거나 완화하는 것과 같은 '법 무력화' 논란을 부를 수 있는 사항은 건드리지 않는다. 상습·반복, 다수 사망사고 등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엄격하게 집행한다.

중소기업 등 중대재해 취약 분야에 대해서는 역량 향상을 위한 집중 지원에 나설 방침이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기초 진단, 컨설팅, 시설개선 지원에 나선다. 안전보건 인력도 2만명 이상 추가로 양성한다. 한국기술교육대에 관련 학과를 신설하고, 기업이 전담 안건보건 인력을 추가 선임할 경우 재정지원을 하기로 했다. 민간 기술지도도 위험성 평가를 기반으로 실시토록 전환한다. 지금까지는 법 위반 사항 점검에 치중해왔다. 건설·제조업에는 스마트 기술과 장비를 중점 지원하고, 원·하청 상생협력을 통한 안전예방 사업도 확대한다.

근로자의 참여를 확대하는 전략도 구사하기로 했다. 근로자의 안전수칙 준수 의무를 명확하게 하는 방향으로 내년에 법 개정에 나선다. 안전수칙을 반복적으로 준수하지 않는 근로자에 대한 제재 등이 담긴 규칙도 제정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근로자에게 위험 요인이 발생하면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권한(작업중지권)의 사용 등도 독려한다.

산업안전 거버넌스도 재정비한다. 산업안전공단에 중소기업 지원과 위험성 평가 전담 조직 신설할 계획이다. 초동조치·비상대응·응급처치와 진료 등 골든타임 확보를 위한 응급의료 체계를 정비하고, 중대재해를 분석해 플랫폼에서 민간 기업과 공유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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