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네옴 시티, 마스다르 시티 실패서 배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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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함인선 전 한양대 교수·광주광역시 총괄건축가

함인선 전 한양대 교수·광주광역시 총괄건축가

사우디아라비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방한을 계기로 한국 산업계는 ‘제2의 중동 붐’ 희망으로 한껏 부풀어 있다. 사업비만 1조 달러(약 1338조원)라는 ‘네옴 시티’ 프로젝트 참여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이 신도시 조감도에서도 ‘더 라인’이라는 주거지구는 압도적인 광경을 보인다. 높이 500m, 길이 170㎞, 인구 900만 명을 수용한다는 선형도시 구상은 웬만한 SF영화도 울고 갈 정도다. 더욱이 세계 최고 부자가 추진한다는 사실과 맞물렸으니 가장 ‘비현실적인 현실’, 즉 이 시대의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다.

가히 전례 없는 규모이지만 새삼스럽지는 않다. 주체 못 할 오일머니와 석유 시대의 종말에 대한 묵시론적 공포가 어우러져 중동에서 벌어지는 메가 프로젝트 중 하나다. 두바이는 바다에 야자수 모양의 인공섬을 만들고, 사막에 160층 마천루를 세웠다. 아부다비는 루브르와 구겐하임을 유치하고 프리츠커상 수상 건축가 5명을 불러 ‘예술섬’을 건설했다. 카타르는 찬 공기를 채운 경기장으로 월드컵을 개최하고 있다.

‘제2의 중동붐’ 기대감 넘치지만
기업과 사람 유치하기 만만찮아
도시건설도 문화와 신뢰가 중요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초지속가능성을 지향하는 중동 신도시 프로젝트 또한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8년 시작한 아부다비 ‘마스다르 시티’는 아직 미완성이다. 가로세로 2.5㎞ 정방형 신도시는 일체의 굴뚝 산업을 배제하고 탄소 이력 제로를 위해 심지어 건설용 철근조차 철거 폐자재를 수입해 사용했다. 그러나 15년 지난 지금은 거대한 유령도시다. 계획한 기업 1500개, 인구 5만 명 유치는 무산됐다. 거주민은 학비가 무료인 과학기술대학 학생이 전부다. 220억 달러를 쏟아붓고도 탄소 제로정책은 포기했다.

필자는 2011년 마스다르 시티 KCTC 사업에 총괄계획가로 참여한 경험이 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아부다비 원전 수주와 함께 약속한 1만8500㎡의 ‘한국 클린 기술 클러스터’ 프로젝트였다. 한국산업은행과 컨소시엄으로 1년여를 노력했으나 결국 입주 희망 기업을 찾지 못했다. 네옴 시티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는 한국 기업들은 규모가 4000분의 1도 되지 않는 데도 실패한 마스다르 시티의 교훈을 새길 필요가 있다.

첫째, 도시의 성패는 물리적 요소보다 구성원들의 문화에 달렸다는 교훈이다. 1980~90년대 미국 실리콘밸리의 성공을 보고 세계 각국은 ‘○○밸리’라는 이름의 첨단산업지구를 경쟁하듯 세웠으나 거의 모두 실패했다. 왜일까. 실리콘밸리의 시작 지점은 1970년대 반전운동이었다. 스탠퍼드대학 등에 모여든 사람들은 저녁이면 강당에 모여 아이디어와 기술을 거저 나눴다. 이들이 나중 실리콘밸리에 모여 창업자가 되고 신속한 투자가 무엇보다 결정적인 첨단기술 산업의 엔젤 투자자가 된다.

요컨대 오랜 공동체 문화가 새 산업 생태계의 ‘신뢰 자본’이 된 것이다. 반면 내적인 문화를 간과한 채 실리콘밸리의 물리적 집적에만 주목한 대부분의 밸리는 사라졌다. 마스다르는 많은 혜택에도 기업과 인재 유치에 실패했다. 아직은 절대 종교 국가인 사우디가 이를 극복할 문화 인프라를 제공할 수 있는지가 네옴 시티의 가장 큰 과제다.

둘째, 교조적 지속가능성이 갖는 이중성에 관한 교훈이다. 네옴 시티도 신재생 에너지, 식량 자급자족, 탈자동차를 표방한다. 그러나 마스다르 시티는 선한 의도와 현실은 별개임을 보여줬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딜레마에 빠진 독일이나 태양광 패널로 뒤덮인 한국의 숲도 같은 맥락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구촌과 유리된 ‘그들만의 생태주의’다. 이는 인간은 지구의 바이러스이며 온난화는 행성 ‘가이아’의 열병이라 보는 근본 생태론(radical ecology)의 입장과 별 차이가 없다.

최근 영화 ‘돈룩업(Don’t Look Up)’에서 혜성 충돌로 파괴된 지구를 부자들만 탈출한다. 더워지는 지구를 살릴 노력 대신 머스크는 화성으로 이주하려 하고, 빈 살만은 외진 사막에 건설 과정 탄소 발자국이 영국 1년 치의 4배나 된다는 유리 도시를 꿈꾸고 있다. 역량을 인정받아 세기적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기쁜 일이다. 동시에 지구 공동체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진정한 지속가능성’에 대한 성찰 또한 우리 몫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함인선 전 한양대 교수·광주광역시 총괄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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