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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 일당 받았다고…'221시간 기적' 봉화광부도 연금 깎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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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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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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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의 탄광에 매몰됐다가 221시간 만에 구조돼 국민에게 큰 희망을 준 박정하(62)씨가 광부 일을 한 수입 때문에 국민연금이 삭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소득이 있으면 연금을 깎는 규정 때문이다. 박씨의 아들 근형(42)씨는 최근 중앙일보 통화에서 “아버지가 11월 말 만 62세가 돼 12월부터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하는데, 다 받지 못하고 1만8000원가량 삭감된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현행 국민연금법은 연금 수급자의 월평균소득이 전체 가입자의 3년 평균소득월액(A값, 268만1724원)을 초과하면 연금을 최대 50% 깎게 돼 있다. 평균소득이란 사업소득(부동산 임대소득 포함)과 근로소득을 합한 것이다. 이자·배당 소득은 포함하지 않는다.

국민연금 수급자 된 박정하씨
1만8000원 깎여 내달 첫 수령
삭감자 10만여명 근로의욕 꺾여
“초고령화 시대에 역행, 개선해야”

 광산에 매몰됐던 광부 박정하씨가 지난 8일 병실에서 커피를 타고 있다. 12월 국민연금이 처음 나오는데, 광부 수입 때문에 깎인다고 한다. 연합뉴스

광산에 매몰됐던 광부 박정하씨가 지난 8일 병실에서 커피를 타고 있다. 12월 국민연금이 처음 나오는데, 광부 수입 때문에 깎인다고 한다. 연합뉴스

박씨는 지난 10월 26일 경북 봉화군의 광산이 매몰될 때까지 광부로 일해 근로소득을 올렸다. 또 강원도 정선군의 펜션에서 월 몇만 원가량의 임대수입이 나온다고 한다. 연금 삭감률은 5단계로 돼 있는데, 박씨처럼 A값 초과 소득(평균소득-A값)이 100만원 미만이면 초과액의 5%에 해당하는 연금을 삭감한다. 그래서 박씨의 연금이 1만8000원가량 깎이는 것이다. 근형씨는 “아버지가 월 127만원 정도 받아야 하는데, 연금이 삭감돼 125만원 정도 받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나마 많이 깎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진작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었다. 국민연금에서는 광부·어부를 특수직종 근로자로 분류해 5년 이른 57세에 정상 연금을 지급한다. 위험한 근로 환경을 반영한 것이다. 다만 연금 가입 기간의 5분의 3 이상 갱내에서 일해야 한다. 박씨는 안타깝게도 여기에 들지 못해 62세에 받게 됐다.

연금수급자 늘면서 감액 은퇴자 급증

근형씨는 “아버지가 지난해 국민연금을 받으려고 연금공단에 알아봤으나 시기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는 설명을 들었다. 국민연금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본 터라 삭감과 관련해 별다른 말씀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근형씨는 “아버지가 카지노 손님을 위한 단기숙소 등으로 펜션을 운영하다 코로나19가 겹치면서 운영난을 겪었다. 대출금을 제대로 갚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기력이 있을 때 일을 더 해서 대출금이나 갚으려고 광산 일을 했다”고 덧붙였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박씨의 일당은 15만7000원인데, 대개 16시간 연근(연속근무) 해서 30만원 넘게 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근형씨는 “건설 현장 노동 일보다 일당이 적다”고 말했다. 이렇게 힘들게 벌었는데, 기준을 약간 초과했다고 연금이 싹둑 깎이는 것이다. 박씨는 지난 11일 퇴원 인터뷰에서 “앞으로 광산 일을 더 하기는 힘들 것 같다. 하고 싶어도 가족이 못하게 할 것이다. 가족들이 ‘이런 환경이었나’라고 놀란다”고 말했다. 연금공단 측은 “박씨가 근로소득이 없으면 내년 1월부터 삭감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금 수령 개시 후 5년간 적용하되 기준 초과 시점에만 삭감한다. 국회 박상현 보좌관(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실)은 “1만8000원 깎는다고 연금 재정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제도 신뢰만 무너뜨린다”며 “한 달 깎고 원상회복한다니 이런 코미디가 없다”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다른 소득이 있다고 국민연금이 깎이는 사람이 매년 늘어난다. 지난해 12만 명이었고, 올 1~6월 10만9171명(중복 포함)이다. 2018년 6만5506명에서 3년 반 새 67% 증가했다. 연금 수급자가 늘면서 삭감자가 늘어나게 돼 있다. 삭감액이 5만원 이하인 사람이 약 절반이다. 심지어 100원 미만 삭감자도 123명, 100~999원 삭감자도 1130명이다. 50만원 넘게 깎이는 사람이 2만여 명에 달한다. 7월 기준 월평균 국민연금액이 58만원에 불과해 이걸 보충하려고 일하는데, 연금을 깎아버린다.

폐지 법안 발의됐지만 논의 안 돼

이렇게 해서 절감한 연금 재정이 올 1~6월 1050억원이다. 적립금(916조원)의 0.01%에 불과하다. 연금수급자 이모씨는 “60대 초반에 접어들면서 연금을 받는데, 연금이 2년 전보다 30만원이나 줄었다. 국민이 노력해 번 돈(보험료)을 납부해 노후에 그걸로 연명하려는데, 20~30%를 덜어내는 현실을 보면서 누군가 책임져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연금 삭감 이유는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소득이 돌아가는 걸 막는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초고령화 시대에는 일하게 장려해야 하는데, 오히려 근로의욕을 꺾는다. 박 보좌관은 “다른 소득이 있다고 엉뚱하게도 국민연금을 깎는 것은 일하려는 은퇴자에게 족쇄를 채우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도 삭감제도를 폐지하는 추세다. 보험료로 연금제도를 운용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5개국 중 17개국에 연금 삭감제도가 없다. 연금공단 창구에 가장 많은 민원이 연금 삭감이다. 연금공단 측도 “제발 없애달라”고 호소한다. 국회에 민주당 최혜영 의원 안(완전 폐지), 김성주 의원 안(부분 폐지)이 발의돼 있다. 그러나 둘 다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