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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전 참사 몰랐다"던 이임재, 10시36분 무전 지시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이 지난달 이태원 참사 당일 오후 10시 36분에 처음으로 인력 동원 지시를 내린 정황이 드러났다. 참사 직후 "가용 경력을 전부 보내라"(오후 10시 36분)고 무전 지시를 하면서다. '밤 11시쯤 위급한 상황을 파악했다'는 이 전 서장의 기존 입장 및 국회 증언과 배치되는 내용이라 위증 논란이 예상된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손제한 경무관·특수본)는 무전 내용을 토대로 이 전 서장이 당시 해밀톤 호텔 인근 상황의 심각성을 사고 직후에 인지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업무상과실치사상·직무유기 혐의로 구속영장 신청을 검토 중이다.

사고 20분 만에 무전망에 등장한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이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마포청사에 위치한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로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이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마포청사에 위치한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로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29일 경찰청이 국회에 열람·공개한 용산경찰서 112상황실망 무선통신 녹취록에 따르면 이 전 서장은 이태원 참사 당일인 지난달 29일 오후 10시 35분 “용산서장”이라고 처음 무선망에 등장했다. 최초 사고 발생 시각으로 추정되는 오후 10시 15분에 20분 지난 시점이었다. 경찰서장은 통상 경비·교통·자서 3개의 무전망을 이용하며, 이 전 서장의 무선 지시는 경찰서 내 현장 경찰부터 서장까지 이용하는 자서망에서 이뤄졌다.

 이날 오후 10시 36분 이 전 서장은 “조금 전 이태원 직원 동원사항 가용경력, 형사1팀부터 해서 여타 교통경찰관까지 전부 보내세요”라고 지시했다. 당시 이 전 서장은 용산경찰서 인근 식당에서 오후 9시 47분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관용차를 타고 이태원 현장에 이동하는 중이었다.

 무전 기록에 따르면 이 전 서장이 무전망에 등장하기 10분 전부터 사고가 발생한 해밀톤 호텔과 와이키키펍 사이 골목길의 긴박한 상황을 보고하는 무전 내용이 빗발쳤다. “와이키키 앞쪽에 이마트24까지 거리고요. 사람이 많아서 계속 신고 들어오는 상황입니다”(오후 10시 24분), “이태원 파출소, ‘필히 깔렸다’ 이런 신고는 연락해서 내용 확인해야. 지원이 필요하면 바로 보고해달라”(오후 10시 26분), “이태원 파출소, 와이키키펍 앞으로 지원 부탁드려요. 압사당하게 생겼어요”(오후 10시 35분) 등의 보고와 지시가 무전을 통해 오갔다.

심각성 몰랐다는 이 전 서장, 고의성 입증하려는 특수본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특수본은 지난 2일 용산경찰서 압수수색으로 해당 무전 기록을 확보했다. 이후 이 전 서장을 3차례 소환 조사하며 무전 지시의 맥락과 판단 근거를 집중 캐물었다. 이 전 서장은 지난 1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대략적인 위급 상황을 파악한 것이 오후 11시쯤”이라고 답하며 오후 11시 이전에는 현장의 심각성을 몰랐다는 취지로 말했다. 특수본은 이 전 서장의 국회 증언과 무전 지시가 상충하는 점을 집중적으로 추궁했으나 이 전 서장은 무전 지시 당시 현장의 심각성을 몰랐다는 취지의 입장을 고수했다.

 이 전 서장의 경력 동원 무전 지시는 이 전 서장의 신병 처리에도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 전 서장이 이태원으로 이동하는 중 관용차에서 자서망으로 용산서 내부의 무전 보고를 듣고 있었다면, 무전 기록에 담긴 다급한 상황을 몰랐다는 진술이 성립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수본은 이 전 서장이 현장 도착 전 가용한 경력을 동원하라고 지시한 것은 무전을 통해 사고의 심각성을 인지했다고 보고 있다. 국회증언감정법상 위증 혐의가 추가될 수도 있다. 특수본 관계자는 “심각성을 인지했던 당시 판단을 ‘문제가 없다’고 일관된 입장을 유지할 경우 (이 전 서장의) 고의성을 입증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다”라며 “이 전 서장의 말처럼 심각성을 인지하지 않은 일반적인 지시였다면 오히려 참작 사유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수본은 상대적으로 수사 속도가 빠르고 혐의를 일관되게 부인하는 이 전 서장과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에 대한 우선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다른 특수본 관계자는 “첫 신병처리인데 불구속 송치하면 희생자 유가족이나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라며 “사안의 중대성, 혐의에 대한 일관된 부인과 증거인멸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신병 처리 여부를 고심 중”이라고 밝혔다. 특수본은 이날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이모 용산소방서 현장지휘팀장을 다시 소환해 주요 피의자 수사를 이어갔다.

유가족 협의회 준비모임, “억울함 죽음에 대한 진상 규명해야” 

이태원 참사 유족들이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이태원 참사 유족들이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한편 이태원 참사 희생자 65명의 유가족으로 구성된 ‘10·29 이태원참사 희생자 유가족 협의회(가칭) 준비모임’은 전날 보도자료를 통해 유가족 협의체 구성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모든 희생자 유가족들이 언제든지 합류할 수 있는 협의회를 만들어 정부에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희생자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며, 책임자들에게 합당한 책임을 묻고자 한다”라며 희생자 유가족의 추가 합류와 진상 규명을 위한 시민들의 연대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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