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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전 최종승자는 '치킨집'…밤 8시에 주문번호 100번 찍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카타르에 있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들만 그라운드에서 전쟁을 치른 건 아니었다. 가나와의 조별예선 2차전 경기를 4시간여 앞둔 28일 오후 6시. 서울 마포구 용강동의 BBQ 치킨 전문점은 말 그대로 전쟁터였다.

 대한민국과 가나의 월드컵 축구경기가 열린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치킨집에서 직원이 분주하게 닭을 튀기고 있다. 장진영 기자

대한민국과 가나의 월드컵 축구경기가 열린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치킨집에서 직원이 분주하게 닭을 튀기고 있다. 장진영 기자

비가 와 거리는 한산했지만, 치킨집 앞에는 치킨을 받으러 온 사람들, 주문하러 온 사람들, 배달하려는 라이더들이 몰려 북적거렸다. 포장된 치킨이 놓이는 픽업대에는 치킨이 쌓이기 무섭게 번호를 확인해 가져가는 손길이 이어졌다.

약 40㎡(12평)의 배달 전문 매장 안에서는 6명의 직원이 12개의 손을 바쁘게 놀리고 있었다. 치킨을 기름에 튀기는 요란한 소리 사이로 “여기 반반 주세요” “황올(황금올리브 치킨) 나왔나요” 등 전표를 보고 치킨을 포장하는 직원들의 목소리가 쉬지 않고 울렸다.

바쁘게 손을 놀려보지만 완성되는 치킨보다 주문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빨랐다. 두 명이 닭을 튀기고 한 명이 양념을 버무리면, 다른 두 명이 포장한다. 한 명은 정신없이 울리는 주문 전화와 배달 플랫폼 주문 전표를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다.

 서울 마포구의 한 치킨집에서 주문 전화와 플랫폼 주문 알람이 쉴새없이 이어지고 있다. 장진영 기자

서울 마포구의 한 치킨집에서 주문 전화와 플랫폼 주문 알람이 쉴새없이 이어지고 있다. 장진영 기자

오후 8시가 넘어가자 주문 전표가 100번을 넘어섰다. 두 시간 남짓 사이에 100여 마리가 팔린 셈이다. 이곳 점주는 “1차전 때는 예상을 못 해서 세 명이 전표 130개를 처리하느라 나중에는 도저히 감당이 힘들어 주문을 차단했다”며 “오늘은 가족들까지 총출동해 치킨을 튀기고 있다”고 말했다.

치킨 픽업대에 놓인 치킨이 쌓이기 무섭게 팔려나가고 있다. 장진영 기자

치킨 픽업대에 놓인 치킨이 쌓이기 무섭게 팔려나가고 있다. 장진영 기자

비 오는 경기 날, 포장 손님 40% 이상

이날은 비가 와서 배달이 늦어질 것을 예상해 직접 찾아오는 손님들이 특히 많았다. 보통 10명 중 배달이 9명, 포장이 1명이지만, 이날만큼은 포장 손님이 10명 중 4명 이상이었다. 이날 6시 30분경 매장을 찾은 인근 지역 주민(40대)은 “배달 플랫폼에서도 예상 시간이 2시간이 넘고 전화도 안 돼서 직접 주문을 넣으러 왔다”며 “아직 (경기까지) 시간이 많아서 완성되면 다시 찾으러 올 생각”이라고 했다.

퇴근하면서 주문하는 손님도 많았다. 오후 7시경 한 30대 남성은 “지난 우루과이전 때 경기 임박해서 주문하려다 실패해 이번에는 아예 퇴근길에 직접 왔다”며 “지금 주문해도 1시간 30분 이상 걸리니까 저녁 겸 먹고 응원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배달 라이더들도 대목을 맞았다. 오후 8시경 한 배달 플랫폼 업체 기사는 “오늘만 치킨 22마리를 배달했다”며 “경기 끝날 때까지 50마리 (배달을) 예상한다”고 말했다.

매장 안에 치킨 배달을 하는 라이더들과 직접 찾으러 온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다. 장진영 기자

매장 안에 치킨 배달을 하는 라이더들과 직접 찾으러 온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다. 장진영 기자

오후 6시부터 본격 시작된 치킨 전쟁은 축구 경기가 시작되고 약 20분 후 마무리됐다. 전표 기준 주문 번호 170번을 끝으로 재료가 떨어져서다. 약 네 시간 동안 이 매장에서 튀겨진 닭은 200마리 남짓. 평소 안 될 때가 50마리, 잘 될 때가 80마리니, 어떻게 봐도 4년 만의 대목이 맞다.

이곳 점주는 “오늘 평소보다 세 배는 더 팔린 것 같다”며 “요즘 장사가 잘 안돼 문을 닫는 주변 가게가 많았다. 월드컵 덕분에 오랜만에 정신없이 바쁘면서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치킨 3사 일제히 매출 2~3배 폭증

비 오는 경기 날 ‘집관족(집에서 관람)’이 ‘치맥(치킨과 맥주)’을 즐기면서 치킨 업계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한국 대표팀과 가나의 경기가 열린 28일, 치킨 프랜차이즈 빅3 업체의 매출이 일제히 급증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교촌에프앤비에 따르면 28일, 지난주 같은 요일인 21일 대비 매출이 150% 늘었다. 전월 같은 요일인 10월 31일과 비교해서는 160% 증가했다. 교촌은 전날 주문 급증을 우려해 자사 앱에서 배달 주문을 일시 중단시키고 포장 주문만 가능하도록 했다.

제너시스BBQ 그룹도 28일 매출이 지난주 월요일 대비 190% 상승했다고 밝혔다. 같은 요일인 지난달 31일과 비교하면 220% 상승한 수치다. 지난 우루과이와의 1차전에 비해서도 4% 상승했다.

BHC도 전주 대비 312%, 전월 대비 297%, 전년 같은 날 대비해서는 213% 매출이 올랐다. BHC는 우루과이전에 앞서 자사 앱에서 동시 접속자 수를 수용할 수 있는 서버를 최대 3배까지 늘리는 등 사전 대비를 했다.

대비를 못 한 일부 치킨 주문 앱은 오후 7시부터 서버가 느려지기도 했다. 오후 8시가 넘어가면서부터는 배달 플랫폼으로 배달 주문을 시키면 주문 취소가 속출했다. 서울 강남 일부 지역의 경우 한때 배달비가 9000원에서 1만 원대로 치솟는 등 치킨 대란이 저녁 내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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