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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민감한 '미군 자산'까지 꺼냈다…尹 "北 관련 책임 다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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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9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북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능력과 의무가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않으면 역내 군사적 자산이 유입될 것"이라며 중국이 극도로 민감하게 여기는 '미군 자산'까지 이례적으로 언급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최선 다해야 中도 좋을 것"

윤 대통령은 이날 공개된 인터뷰에서 "중국은 북한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충분한 능력과 국제사회에서의 책무가 있다"며 "(북핵 문제와 관련해) 국제사회 전체가 일관되고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대통령실이 전했다. 윤 대통령은 또 "북한 비핵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국에도 이로울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그러면서 "북한의 (도발) 행위로 인해 더 많은 미군 군용기와 군함 등이 역내에 전개되고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의 방위비가 증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엔 한국도 민감하게 여기는 일본의 방위비 증액 가능성까지 포함돼 있다. 그만큼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눈에 띄게 높였다는 의미다.

실제 대통령실은 로이터통신의 보도 이후 "일본 열도 머리 위로 미사일이 날아가는데 (일본이)국방비를 증액 안 하고 그냥 방치할 수는 없는 것 아니었을까"라는 윤 대통령의 구체적 발언을 추가로 공개하기도 했다.

이날 윤 대통령의 강경 발언은 지난 5월 일본의 방위비 증액 방침에 대해 "일본의 방위ㆍ안보정책이 평화헌법 정신을 견지하면서 지역 평화ㆍ안정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밝힌 외교부의 공식 입장과도 다소 온도차가 있다. 다만 외교부 당국자는 "윤 대통령의 발언이 정부 입장의 변화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美 군사자산 언급 '이례적'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한ㆍ중 정상회담 때만해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중국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인접국으로서 더 적극적, 건설적 역할을 해달라"는 정도로 수위를 조절해왔다.

보름만에 미군의 군사자산을 언급할 정도로 윤 대통령의 대중(對中) 메시지가 강해진 배경에 대해 외교가에선 "동맹국인 미국과 공조를 맞추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은 그간 중국을 향해 "한반도 주변에 미국 군사력이 더 증강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으면 북한을 알아서 제어하라"는 주문을 반복해왔다.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11일 미ㆍ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조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을 대신 전하면서도 "북한이 계속 핵ㆍ미사일 전력을 증강하면 역내에서 미국의 군사ㆍ안보적 존재는 강화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이날 윤 대통령의 중국을 향한 발언은 미국과 사실상 같은 논리 구조를 띠고 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14일 시 주석을 만난 뒤 "중국이 북한을 통제하지 못할 수도 있다"며 중국 역할론의 한계를 지적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과 달리, 이날 윤 대통령은 "중국이 북한을 제어할 능력이 있다고 확신한다"며 중국에 더 분명한 책임을 요구했다.

전직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윤 대통령의 발언은) 조만간 북한이 도발 수위를 한층 더 끌어올리면 미국의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추가로 전개될텐데 그 전에 이 모든 게 '북한' 때문이라는 사전 경고를 보내는 성격"이라며 "중국이 나중에 필요 이상의 반발을 하지 않도록 일종의 '예방 주사'를 놓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만 관련 언급도 강도 높여

윤 대통령은 이날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와 관련해서도 "일방적인 현상 변경은 모든 질서와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것이기 때문에 강력하게 반대한다"며 "(한국 군으로서는)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가장 위험한 상황부터 대응하고 통제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대통령실이 밝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모든 분쟁은 국제 규범과 규칙에 따라 해결돼야 한다"는 말도 했다.

이러한 발언 역시 지난 5월 한ㆍ미 정상회담과 지난 13일(현지시간) 한ㆍ미ㆍ일 프놈펜 공동성명에 명시된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보다도 한 발 더 나갔다는 평가다. 외교가에선 북핵 문제에 대해 중국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대만 문제에 대한 한국의 입장도 미국쪽으로 급속하게 쏠릴 수 있다는 신호를 중국에 발신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13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한 호텔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왼쪽부터),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13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한 호텔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왼쪽부터),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윤 대통령의 강한 대중 메시지는 중국이 최근 안보리에서 상임이사국의 비토(Vetoㆍ거부)권을 활용해 대북 제재 결의를 비롯한 공동 조치를 무산시키고 있는 현실과도 무관치 않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북한의 ICBM 발사에 대응한 안보리 공개회의 등 올해 들어 열린 10번의 안보리 회의는 중국의 반대로 모두 빈손으로 끝났다. 5년 전만 해도 북한의 ICBM 발사에 "엄중한 우려"를 표하던 중국은 최근 들어 북한 도발에 대한 지적 없이 한ㆍ미 연합훈련 중단 등 미국의 책임있는 조치만 일방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김진호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국은 코로나19 이후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확대됐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북한의 도발을 자국의 대외 전략 일환으로 활용하며 묵인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메시지는 한ㆍ중 양국 간 안보 협력의 범위가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의 평화ㆍ안정을 함께 수호하는 수준까지 돼야 한다고 재차 강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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