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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 꺼버리고, 행인 얼굴 하나하나 땄다…中 검문 강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8일 봉쇄 반대 시위가 예정됐던 항저우 쇼핑가에서 경찰이 삼엄한 경비를 펼치고 있다. 트위터 캡쳐

28일 봉쇄 반대 시위가 예정됐던 항저우 쇼핑가에서 경찰이 삼엄한 경비를 펼치고 있다. 트위터 캡쳐

지난 주말 상하이·베이징 등 중국 주요 대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코로나 봉쇄 반대 시위가 28일 공안의 검문 강화 속에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중국 당국은 시위 보도를 통제하고 방역은 다소 완화하는 한편 친정부 블로거를 중심으로 이번 A4 백지 시위에 외국 세력이 개입했다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베이징 ‘콜라 시위’ 검문 강화에 무산

28일 베이징에서는 전날의 백지 시위에 이어 콜라(중국명 커러·可樂) 시위가 추진됐지만 경찰의 사전 차단으로 무산됐다.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이날 시위대는 오후 6시쯤 지하철역인 황좡(黃莊)역에서 콜라병을 신호로 집결해 지난달 13일 반정부 플래카드가 걸렸던 쓰퉁차오(四通橋) 방향으로 행진할 예정이었다. 지난 2019년 홍콩 시위를 경험한 중국 경찰은 사전 첩보를 입수, 인근 중관촌에 밀집한 IT 기업에 조기 퇴근을 권하는 한편 지하철 플랫폼과 거리 곳곳에 경찰 병력을 촘촘하게 배치했다. 결국 시위는 불발됐다.

전날 1989년 천안문 민주화 운동 이후 33년 만에 처음으로 가두시위가 벌어졌던 량마허 일대도 28일 삼엄한 경계가 펼쳐졌다. 시위 현장 주위의 가로등을 모두 꺼 칠흑처럼 만든 공안은 폐쇄회로 카메라와 별개로 지나는 행인의 안면을 녹취하는 등 물 샐 틈 없는 경비를 펼쳤다.

지난 26일과 27일 우루무치 화재 희생자 추모 시위가 벌어졌던 상하이 우루무치 거리에서는 공안이 표지판을 철거하고 양측 인도에는 펜스를 설치했다. 집회를 원천 차단한 공안은 행인을 검문하고 휴대폰을 검사했다고 홍콩 동방일보가 보도했다. 시위가 예고된 도심 인민광장 지하철역은 출구를 차단하고 검문검색을 강화했다.

시위 침묵한 인민일보에 ‘제로코로나’ 하루 만에 재등장

시위 단속은 중국 관영 매체 검열 통제로 이어졌다. 인민일보·신화사 등 중앙 매체는 물론 북경일보와 상하이 해방일보 등 현지 기관지어디에도 백지 시위 보도가 없었다. 신화사는 베이징 시위 다음 날인 28일 새벽 이례적으로 세 편의 시론을 연이어 발표했다. ‘세 가지 확고함이 승리의 보물’, ‘최대한의 노력을 다해 서민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라’, ‘격리시설에 사소한 일은 없다’ 등 세 편 어디에도 추모·항의 시위는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제로 코로나’ 관철, 방역 상황의 엄중함과 복잡함만 언급했다.

전날 1면에 ‘제로 코로나’를 언급하지 않은 필명 중음(仲音)의 사설을 실었던 인민일보는 29일 2면에 중음 사설을 게재했으나 다시 “제로 코로나 총방침 관철”을 강조했다.

28일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을 방문한 오흐나 후렐수흐(오른쪽) 몽골 대통령과 인민대회당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지난달 3연임에 성공한 시진핑 주석은 지난 주말 전국적으로 발생한 봉쇄 반대 시위로 정치적 위기에 처했다. 신화=연합뉴스

28일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을 방문한 오흐나 후렐수흐(오른쪽) 몽골 대통령과 인민대회당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지난달 3연임에 성공한 시진핑 주석은 지난 주말 전국적으로 발생한 봉쇄 반대 시위로 정치적 위기에 처했다. 신화=연합뉴스

베이징시, 철제 펜스 금지 조치  

대신 일부 방역을 완화했다. 베이징 방역 지휘부는 철제 펜스나 쇠사슬로 소방도로, 단지, 건물 입구를 봉쇄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임시 봉쇄 조치는 원칙상 24시간을 넘기지 못하도록 변경했다고 북경일보가 28일 보도했다. 광저우시는 봉쇄 지역 시민의 이동을 단계적으로 해제했다. 120여일 넘도록 도시를 봉쇄했던 우루무치시도 대중교통의 운행을 재개했다.

28일 지난 주말 11·24 우루무치 화재 참사 희생자 추모 시위가 벌어졌던 상하이 우루무치 거리에 펜스가 세워졌다. 트위터 캡쳐

28일 지난 주말 11·24 우루무치 화재 참사 희생자 추모 시위가 벌어졌던 상하이 우루무치 거리에 펜스가 세워졌다. 트위터 캡쳐

방역 불만 여론을 잠재우려는 당국의 노력은 ‘외세 배후론’을 제기하는 목소리와 맞물렸다.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아이디 ‘토주석(兎主席)’을 쓰는 정치평론가 런이(任意)는 런중이(任仲夷, 1914~2005) 전 광둥성 서기의 손자다. 혁명 원로 3세인 그는 28일 “(시위가 벌어진) 베이징 량마차오(亮馬橋)는 대사관 단지와 가까워 외국인이 많거나 외국인에 의지하는 지역”이라면서 “외국 언론이 모두 톱 기사로 보도했고, 주요 외국 언론이 모두 현장에 있었다”고 외부 결탁설을 주장했다. 11·24 우루무치 화재 희생자를 추모한 것을 놓고는 “우루무치와 관련시킨 건 해외 정치 세력의 신장에 대한 상상력과 부합한다”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외세가 참여했고 안팎이 결탁했다”며 “관계 부처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외국의 반중세력은 중국이 ‘제로 코로나’를 무기한으로 유지해 중국 산업체인과 공급체인의 디커플링을 일으켜 중국 경제의 성장 속도를 늦추고 중국 내부 모순을 격화시켜 내란을 일으키려 한다”고도 했다.

중국 당국자도 동조했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8일 정례 기자브리핑에서“SNS에 일부 다른 생각을 품은 세력이 있어, 이번 화재를 현지의 방역 정책과 연결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자오 대변인의 ‘다른 생각을 품은 세력’은 외국세력을 지칭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수주의 블로거 후시진(胡錫進) 전 환구시보 총편집 역시 외세 개입설을 암시했다. 그는 28일 웨이보에 백지시위는 직접 언급하지 않은 채 “민중은 의견을 표시할 권리가 있다”고 전제한 뒤 “여러분이 어떠한 일에 참여한다면 그 방향이 다른 외부의 힘으로 쉽게 이용되거나 심지어 납치당해 결국 우리 모두의 삶을 파괴하는 홍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외세가 백지시위를 악용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28일 봉쇄에 반대하는 백지 시위가 예정된 베이징 중관촌 일대를 경찰 차량이 경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8일 봉쇄에 반대하는 백지 시위가 예정된 베이징 중관촌 일대를 경찰 차량이 경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주중대사관 “14일 치 먹거리 대비를”

한편 한국과 미국, 일본 등 중국 주재 외국 대사관은 교민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주중 미국 대사관은 28일 웨이보에 “중국 정부가 방역 조치를 확대하면서 재택격리, 대규모 핵산검사, 폐쇄, 교통차단, 봉쇄, 가족 간 헤어지는 일까지 발생할 수 있다”며 “중국에 주재하는 모든 미국 시민은 자신과 가족을 위해 14일 분량의 식료품과 약품, 음료수 저장을 권장한다”고 발표했다.

한국 대사관은 지난 26일부터 교민에게 배포하는 영사 뉴스에 “베이징 왕징에서 이루어진 봉쇄에 대한 항의 관련, 불필요한 상황에 연루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베이징 일본대사관도 28일 항의 현장을 만나도 접근하지 말도록 주의를 환기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9일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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