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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혁의 싱가포르서 보는 중국] 시진핑 천하의 파벌 정치 어떻게 변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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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연설하는 시진핑 [사진 CCTV 캡처]

제20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연설하는 시진핑 [사진 CCTV 캡처]

지난 10월 폐막한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 결과는 매우 이례적이었다. 공청단 출신인 리커창 총리와 왕양 정협 주석이 실각했을 뿐만 아니라 차기 리더로 큰 관심을 받던 후춘화는 정치국위원 자리마저 유지하지 못했다. 시진핑은 수뇌부를 모두 자신의 사람들로 채웠다. 집단지도체제가 붕괴한 것이다. 시진핑 천하가 도래한 이제 중국의 파벌 정치는 어떤 식으로 변모할 것인가? 역사적으로 강력한 지도자의 등장으로 인해 파벌 간 투쟁이 사라졌을 때 중국 정치는 어떠한 행태를 보였는가?

덩샤오핑은 파벌 정치를 잘 활용한 지도자였다. 덩은 모든 능력 있는 자들을 모아 하나의 확실한 목표를 심어주었다. 하나의 목표인 경제 발전을 위해 어떠한 정책이 유리할 것인지에 대해 모두가 경쟁하게 했다. 그 결과 개혁파와 온건파가 생겨났으며, 그 후엔 테크노크라트와와 제너럴리스트 간의 파벌 싸움을 부추기기도 했다. 각 파벌은 경제발전이란 한 가지 뚜렷한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정책 선택과 관련한 건전한 투쟁을 벌였다. 덩은 산업정책과 금융정책, 재정정책, 나중엔 사회정책까지 그들이 자신들이 가진 전문 지식과 정치 철학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했다. 덩은 그저 뒤에서 모든 것을 관장하는 심판자 역할을 맡았다. 이는 덩이 무소불위의 정당성을 가진 리더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파벌 정치 활용한 덩샤오핑 

시진핑 천하가 된 지금, 시진핑 치하에서의 파벌정치는 그럼 어떻게 될 것인가? 가장 큰 문제점은 시진핑은 정당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시진핑의 정당성은 그동안 중공이 역사적으로 증명했던 성과에 기댄 정당성일 뿐 그 개인의 정당성을 강화시켜줄 그 어떤 뚜렷한 업적이 없다. 물론 지난해 제3차 역사결의에서 시진핑은 자신의 업적과 공헌을 하나하나 열거했다. 빈곤 제거와 부패 척결, 그리고 빈부 격차 해소, 이어 현대적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위해서 중국몽을 실현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누가 이를 믿고 시진핑에게 정당성을 부여할까? 시진핑은 쉬지 않고 자신을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정당성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마오가 나라를 세웠고 덩이 국가를 부유하게 만들었으며 시진핑은 중국을 강하게 만들 것이란 구호는 중국인과 중공 엘리트들이 보기엔 너무나도 부족한 나레이션인 것이다.

이처럼 부족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시진핑이 내세운 게 ‘이데올로기’ 투쟁이다. 시진핑 사상과 중국몽,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 등은 그 기조부터가 어딘가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한데 그런 것들을 중국 공산당뿐만이 아니라 전 중국사회에 퍼뜨리려 한다. 공무원 시험에서 시진핑 사상을 테스트 한다던가 하는 이데올로기 교육 강화가 바로 그런 것이다. 경제 발전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설정하기엔 그것을 실현할 역량이 부족해 보인다. 뚜렷한 목표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때 더 많은 반발을 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이데올로기 투쟁 하에선 그 밑의 파벌 싸움이 건전한 정책 경쟁이 되는 게 아니라 과도한 충성경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시진핑의 부친인 시중쉰의 묘역을 성역화 한다던가 또는 중국 전통의 가치를 추구하려 공자 사당을 세우는 등 다소 애매한 방식으로 시진핑의 개인적 취향을 맞추려는 노력이 벌어질 것이다. 특히 시진핑이 풍수 사상에 많은 관심을 가진 만큼 많은 지방 관료들이 풍수가 좋다는 곳에 앞다퉈 이데올로기 학습관이나 시진핑의 이름을 딴 지역 명소를 만드는 등 덩샤오핑이 금지했던 ‘리더의 우상화’가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짙다.

시진핑 충성 경쟁 벌어질 전망 

지방 관리들은 또한 시진핑의 눈밖에 나는 걸 극도로 꺼릴 것이다. 최근의 제로 코로나 정책은 이를 뒷받침한다. 인민의 행복과 방역 정책 사이에서 적당한 균형을 맞추는 게 지방 관료로서 최선의 정책이지만, 현재의 방역 정책을 볼 때 중국의 지방 정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더 강하고 더 확실한 검역 정책을 실행할 것으로 보인다. 상하이와 베이징, 저장, 광둥 등 많은 지역에서 정부의 강력한 방역 정책으로 인권이 침해당하고 있다. 만일 어느 한 지방에서 방역에 실패한다면 이는 바로 시진핑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갈 것이고 이는 곧 그 지방 관리의 정치적 생명이 끝난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관리들은 더욱더 보신과 안전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며 그런 상황에서 경제 발전이나 사회 발전이 이뤄질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지금까지 중국 경제 발전의 큰 역할을 했던 성과주의와 지방 분권주의가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지방 관리들이 지방 경제나 인민의 안위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채 시진핑 측근들이 벌이는 충성 경쟁의 희생양으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목표를 안전하게 추구하는 사람을 선호한다. 정책 실패가 시진핑의 책임으로 전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전형적인 권위주의 국가의 특징이다. 20차 당 대회 보고에서 시진핑이 “안전”이라는 단어를 그 무엇보다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많은 학자와 전문가가 동의하는 것처럼 중국 공산당 정부가 민주주의 제도 없이도 어느 정도 민중을 위하고 장기적 목표에 대한 책임감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이 파벌들의 균형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각 파벌 간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정치인들은 의미 있는 정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공산당의 첨병 역할 그리고 공산당의 트레이닝 센터 역할을 해온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은 하나의 제도화된 조직이었다. 그 단원은 어떠한 공산주의자가 되는 게 훌륭한가라는 이념을 바탕으로 공산당의 관료가 되기 위해 길러진 인재들이었다.

견제 없으면 독재국가로 회귀 

그런 토양 속에서 배양된 후진타오의 겸손한 성격과 관료주의적 성향은 덩샤오핑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아무런 정치적 배경이 없는 공청단원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실력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그들이 수뇌부가 됐을 때 하고자 하는 정치 개혁은 바로 당내 민주였다. 자신들이 철저한 경쟁제도와 성과제도를 통해 생존한 간부였다면 다른 파벌들 즉 엘리트주의 파벌은 혈연이나 상사와의 관시(關係)를 통해 승진을 반복한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 좀 더 민주적이고 공정한 선발체제를 만들기 위해 당내 민주를 제도화시키길 원했지만 결국엔 실패했다. 현실적인 제약이 많았던 것이다.

이미 대부분의 고위 관료가 관시를 통해 이득을 충분히 얻었던 사람들이었다. 제도적인 견제와 균형 없이 파벌 간의 균형만으로 독재국가로부터 책임감을 불러오는 것은 너무나 역부족인 상황이었다. 이는 현시대에 또 다른 교훈을 제공한다. 지도자를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면 그 정권은 전형적인 독재국가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이종혁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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