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도 인정한 장인 정신…한국 공예의 위상이 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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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북촌 예올에서 열리고 있는 '예올X샤넬 프로젝트: 올해의 장인·올해의 젊은 공예인' 전시. 연합뉴스

서울 북촌 예올에서 열리고 있는 '예올X샤넬 프로젝트: 올해의 장인·올해의 젊은 공예인' 전시. 연합뉴스

금박 장인 박수영씨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샤넬X예올 프로젝트 전시. 사진 예올, 샤넬코리아

금박 장인 박수영씨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샤넬X예올 프로젝트 전시. 사진 예올, 샤넬코리아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우리나라 국격이 많이 올라갔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죠. 공예는 일상생활에 쓰이는 물건을 만드는 일인데, 공예가 주목받는다는 건 우리 생활이 더 품격있어지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금박 장인 박수영)

샤넬코리아, 5년간 장인과 공예인 후원 #'로에베 재단 공예상' 전시 이은 열기 #리움미술관 '공예 지금' 전 화제 #'공예-어르신 문화'는 옛날 얘기

"옻칠 장인인 박강용 선생님께서 제게 '곧 괜찮은 시대가 올 거다. 믿고 이 길을 가봐라' 하셨죠. 올해 이렇게 큰 기회를 얻으니 더 확신이 생겼습니다. "(옻칠 공예가 유남권)

50대 금박 장인 박수영씨와 30대 옻칠 공예가 유남권씨가 서울 북촌에 자리한 예올가에서 지난 15일부터 나란히 전시를 열고 있다. '반짝거림의 깊이에 대하여'란 제목 아래 중요무형문화재 제119호 이수자인 박 장인은 금박 복주머니와 금박을 입힌 한지를 활용한 모빌 작품 등을, 유남권은 '지태칠기'(紙胎漆器)를 활용한 작품을 선보였다. 전시는 세계적인 명품브랜드 샤넬코리아가 후원했다.

샤넬은 올해부터 5년간  재단법인 예올(이사장 김영명)의 후원사로 참여해 장인과 공예가의 공예품 기획과 개발, 생산과 배포를 지원하기로 했다. 15일 전시장에서 만난 블랑샤르 대표는 "샤넬은 장인 정신을 기린다는 부분에 있어서 예올과 공통된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며 "한국 문화에 경의를 표하는 공예 미래를 새롭게 조명하기 위해 한국 공예를 지원키로 했다"고 밝혔다.

한국 공예의 위상이 달라졌다. 금박, 옻칠, 목기, 도예 작업을 해온 공예인들이 세계 명품 브랜드의 러브콜을 받으며 분주해졌다. 서울 곳곳에선 장인과 전도유망한 공예인을 집중 조명하는 전시가 부쩍 늘었다.

지난 7월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열린 '로에베 재단 공예상' 전시도 그 대표적인 예다. 이 전시가 열리는 동안 평소보다 두 배에 달하는 관람객이 박물관을 찾았다. 그만큼 관심이 뜨거웠다. 이 상은 스페인 패션 브랜드 로에베 재단이 공예 작가를 후원하기 위해 2016년 제정한 것으로, 올해는 말총공예 작품을 출품한 정다혜 작가가 우승자로 선정됐다. 정 작가는 재단으로부터 상금 5만 유로(한화 약 6800만 원)와 상패를 받았고, 박물관에선 결선에 올랐던 작품 30점이 전시됐다.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공예'의 매력과 힘을 보여준 자리였다.

지난 24~29일 서울 가회동 휘겸재에선 ‘발베니 메이커스 전시’가 열렸다. 정통 수제 싱글몰트 위스키 발베니 후원으로 전통 공예 장인 6명과 현대 공예가 6명이 작품을 선보인 것. 해외 위스키 브랜드의 후원아래 국가무형문화재 소병진 소목장, 김춘식 나주반장, '로에베 재단 공예상' 우승자 정다혜 작가 등 스타 공예인들이 작품을 선보였다. 주말엔 하루 2000명 이상이 전시를 찾았고, 40대 초반의 부부가 소병진 장인 작품을 비롯해 전시작을 많이 구매해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했다.

7월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선보인 '로에베 재단 공예상' 우승자 정다혜 작가의 말총 작품. 서울공예박물관

7월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선보인 '로에베 재단 공예상' 우승자 정다혜 작가의 말총 작품. 서울공예박물관

리움, '공예, 지금'전시 

조성호 작가의 금속 주물 작품. 현재 리움미술관 고미술 전시실에서 선보이고 있다. 사진 리움미술관

조성호 작가의 금속 주물 작품. 현재 리움미술관 고미술 전시실에서 선보이고 있다. 사진 리움미술관

현재 리움에서 열리고 있는 '공예 지금'(내년 1월 29일까지) 전도 한국 공예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준다. 고미술 상설전이 열리는 곳에서 현대공예 작품을 소개하고 있어서다. 리움에서 현대공예품을 선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미술계에선 파격적인 시도로 받아들여졌다.

고려 청자가 있는 전시실에 나무 서랍장(김백선 디자이너·소목장 조석진),수묵화와 채색화 전시실에 옻칠 작품(정해조 작가), 백자와 분청사기가 있는 곳에 금속 작품(조성호 작가), 고대 금속 유물 전시실에 아크릴과 금속으로 만든 가구 '백골동 2022'(디자이너 정구호·금속 장석 장인들)를 배치했다. 이광배 리움미술관 수석연구원은 "전통을 기반으로 한 현대공예의 예술성과 가능성에 집중했다"며 "고미술이 현대로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조명하고자 했다"고 전시 의도를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참여 공예인들은 스스로 장소 맞춤형으로 제작을 다시 할 정도로 열의가 남달랐다. 다른 공예 전시 계획은 아직 없지만, 각계 의견을 들어보는 중"이라고 전했다.

왜 지금 공예인가 

지난해 개관한 서울공예박물관은 올해 관람객 수가 38만8000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임시개관 후 6개월간 찾은 11만명을 합치면 1년 6개월간 약 50만명이 공예박물관을 찾았다는 얘기다. 공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재단법인 아름지기의 신지혜 디렉터는 "경제성장으로 인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요인으로 꼽았다. 신 디렉터는 "경제가 성장하면서 더 많은 사람이 원본과 전통의 수공예적 가치를 새로운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일상에서 접하는 사물의 가치에 대한 기준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요즘 '공예 현상'을 이끄는 게 젊은 세대라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신 디렉터는 "젊은 세대는 전통의 가치를 지닌 사물들에 오히려 새로움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2022 올해의 공예상’ 수상자인 도예가 김혜정씨 역시 젊은 세대의 관심을 꼽았다. 김씨는 "예전에 '공예=어르신 문화'라는 인식이 없지 않았다"며 "그러나 요즘엔 SNS로 작품에 대해 물어오는 젊은이들이 많다. 전시 관람객도, 구매층이 젊어진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요즘 대중의 눈높이가 높아졌다. 그들은 아이디어만 참신한 물건에 만족하지 않는다.현대적이더라도 깊은 의미가 깃든 작품을 찾는다"고 말했다.

또 공예가 지닌 매력의 핵심은 기능성이다. 신 디렉터는 "명품브랜드가 공예를 중시하는 것은 '장인정신으로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물건을 만든다'는 철학이 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공예문화가 앞으로 더 확산되려면 가격이 좀 더 현실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박 장인 박수영씨는 "금박 작업이 남다른 것은 그 안에 축원을 담은 역사와 전통이 있기 때문"이라며 "전통의 기법을 잇되 보다 더 다채로운 작업으로 대중에게 다가가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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