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업무개시 명령 발동...정부, 200여개 시멘트 운송업체 현장조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집단 운송거부 중인 시멘트 수송차량(BCT)에 대한 업무개시 명령이 발동됐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도입된 화물차에 대한 업무개시 명령이 시행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토교통부는 29일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제14조에 따라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화물연대 조합원 중 시멘트업계의 집단운송 거부자에 대해 업무개시 명령을 발동한다고 밝혔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오전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을 열고 “오늘 국무회의에서 국가 경제에 초래될 심각한 위기를 막고 불법 집단행동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시멘트 분야의 운송 거부자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심의ㆍ의결했다”고 밝혔다.

화물연대 총파업 결의대회가 열린 29일 한일시멘트 단양공장 앞에서 어명소 국토부 2차관(오른쪽)이 현장을 방문해 파업 참여 조합원에게 정부 업무개시명령을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화물연대 총파업 결의대회가 열린 29일 한일시멘트 단양공장 앞에서 어명소 국토부 2차관(오른쪽)이 현장을 방문해 파업 참여 조합원에게 정부 업무개시명령을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희룡 국토부 장관도 국무회의 뒤 브리핑에서 “집단 운송거부로 인해 국가 경제가 매우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며 “업무개시 명령은 피해 규모ㆍ파급효과 등을 종합 감해 물류 정상화가 가장 시급하다고 판단되는 시멘트 분야 2500명을 대상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정부가 화물연대 집단 운송거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칼을 빼든 것으로 해석된다. 산업의 혈관인 물류가 꽁꽁 묶여 나라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것을 최대한 막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화물연대가 집단의 힘으로 물류를 인질 삼아 정부와 국민을 협박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정부가 첫 조치 대상으로 시멘트 운송 분야를 정한 건 전국 건설현장의 작업이 멈추는 등 피해가 크다고 봐서다. 국토부에 따르면 6일째 접어든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인해 시멘트 출고량이 평시 대비 약 90~95% 감소했다. 이에 따라 전국 건설현장의 약 50%에서 레미콘 공사가 중단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기 지연, 지체상금 부담 등으로 건설업의 피해 누적되면 건설원가, 금융비용 증가로 산업 전반의 피해가 우려된다”며 “이는 건설산업발국가경제 전반의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개연성이 높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로 운송 거부 중인 시멘트 수송차량의 운송사업자 및 운수종사자에게 업무개시 명령이 송달될 예정이며, 이들은 명령서를 받은 다음 날 24시까지 업무에 복귀해야 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이에 불응하면 운행정지(30일), 자격 취소 등의 행정처분이 내려지며 고발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형사처벌까지 가능한 수단인 만큼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제도가 도입된 이후 화물업계 관련 업무개시명령이 이뤄진 건 한 차례도 없었다. 화물차에 대한 업무개시 명령은 노무현 대통령 때인 2003년 화물연대의 연이은 파업으로 인해 철강과 시멘트업계는 물론 수출입 등 산업계 전반에 큰 피해가 발생하면서 이듬해 비상대응책으로 마련됐다.

 자료 국토교통부

자료 국토교통부

화물연대는 즉각 반발했다. 화물연대는 이날 성명에서 업무개시명령을 계엄령에 견주면서 “정부에 반(反)헌법적 명령에 응하지 않을 것이며 탄압 수위가 높아질수록 강력한 투쟁으로 대응하겠다”라고 밝혔다. 화물연대는 이날 전국 16개 지역 거점에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 반발하는 집회를 열고, 잇따라 지도부 삭발 투쟁에도 나섰다. 화물연대는 업무개시명령에 대한 명령 무효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도 고려하고 있다.

정부와 화물연대는 오는 30일 다시 한번 대화에 나설 예정이다. 그러나 ‘강 대 강’ 충돌로 치닫는 데다, 양측의 입장차가 워낙 크다 보니 당장 합의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화물연대는 지난 24일부터 ▶안전운임 일몰제 폐지 및 영구 시행 ▶철강ㆍ자동차ㆍ사료 등 안전운임 적용 품목 확대 등을 요구하며 집단운송거부에 들어갔다.  반면 정부는 안전운임 일몰 3년 연장 외에 다른 요구 사항은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안전운임제는 과로ㆍ과속 등을 막기 위해 화물 차주에게 최소한의 운송료를 보장하고 그보다 적은 돈을 지불하는 화주에겐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제도로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됐다. 3년 한시로 2020년부터 적용됐으며 올해 말 종료 예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동계 인사는 “화물연대가 집단 운송거부를 접으려면 명분이 있어야하는데, 업무개시 명령까지 발동한 마당에 정부가 (화물연대에) 줄 수 있는 명분이 없다”며 “한동안 지금과 같은 교착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짙다”고 예상했다.

개별 차주에게 업무개시명령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도 쟁점이 될 전망이다.  원칙적으로 업무개시명령은 당사자 본인에게 직접 전달돼야 하는데, 운송 기사 대부분이 고정된 출근 장소가 없는 만큼 명령서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면 분쟁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이에 대해 원 장관은 “고용자 또는 동거 가족에게 3자 송달을 하면 바로 효력이 발생하게 돼 있고, 그것도 안 되면 공시하는 방법도 있다”며 “카카오톡 메시지나 문자로 알릴 경우 최소한의 시간이 지나면 명령이 송달된 것으로 보는 유사 행정절차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정부가 시멘트 분야 운송 거부자에 발동한 업무개시명령을 환영하며 조속히 물류 정상화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중기중앙회는 “정당한 명분 없이 국가 경제를 볼모로 삼고 집단운송거부를 하는 화물연대는 당장 업무에 복귀하기를 촉구한다”며 “정부도 산업현장에서 피해가 확산하지 않도록 운송방해 등 불법행위를 엄정히 단속하고 필요하면 다른 업종의 업무개시명령도 적극적으로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대한상공회의소ㆍ한국경영자총협회ㆍ한국무역협회 등 경영계도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대한상의는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해 나가고자 했음에도 산업현장 셧다운 등 피해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시멘트 분야 업무개시명령은 불가피한 조치”라고 했고, 경총은 “시멘트 분야 이외에도 국민 생활과 직결된 철강ㆍ자동차ㆍ정유ㆍ화학 분야 등도 한계에 다다른 만큼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업무개시명령 확대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무역협회는 “더 이상 산업 현장에 피해가 확산되지 않도록 정부가 법과 원칙에 따라 불법 행동에 대해 단호히 대응해 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