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칼럼] 규제 만능주의 빠진 공정위…‘시장경제 우선’ 정부 원칙 잊었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범수 카카오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이 지난 10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대한 종합감사에 출석해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카카오 먹통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뉴스1

김범수 카카오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이 지난 10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대한 종합감사에 출석해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카카오 먹통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뉴스1

공정거래위원회는 종종 ‘재계의 저승사자’라고 불린다. 그만큼 기업에 행사할 수 있는 힘이 세다는 뜻이다. 그러나 공정위의 성적표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작년에 1조원 이상의 과징금을 부과했는데 93.9%에 해당하는 금액에 대해 불복 소송을 당했다. 소송에서 져 기업에 되돌려준 돈이 3000억원에 육박하는 해도 있었다.

공정위의 처분이 정말 ‘공정’한 것이었다면 이런 정도로까지 많은 불복 소송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공정성을 의심하거나 더 나아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필자와 같이 해외에 있는 사람에게는 ‘공정위가 왜 이런 일까지 개입하지’라는 의문을 자아내는 경우가 너무 많다.

연내 시행을 목표로 공정위가 준비하고 있는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심사지침’을 보자. “이번 카카오 (불통) 사태는… 독점 플랫폼이 혁신 노력과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한 것에 기인한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공정한 경쟁 기반 확보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맞춤형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고 밝힌다. 작년에는 삼성웰스토리에 직원 급식을 맡긴 삼성그룹 계열사들에 사상 최대인 234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단체급식 대외 개방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공정위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갈라파고스적 규제기관이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대부분 ‘사후 규제’ 중심인데, 한국은 불공정 거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미리 차단하는 ‘사전 규제’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대기업 집단 지정, 순환출자 규제, 계열사 내부거래 제한 등이 다른 나라에는 없는 사전 규제 항목들이다.

세계적으로 사후 규제가 보편적인 이유는 공정 거래 정책의 궁극적 목표가 소비자 후생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피 터지게 경쟁해서 값싸고 질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해야 소비자 후생이 높아지는데, 독과점이 생기면 가격을 올리거나 품질을 떨어뜨려 소비자 후생을 손상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이나 마이크로소프트가 계열사를 300~400개까지 거느리며 ‘문어발식 확장’을 해도 사전 규제는 없다. 하지만 ‘경쟁제한 행위’를 했고, 그래서 소비자에게 피해가 갔다는 혐의가 있을 때나 규제기관이 칼을 빼 든다.

정부 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실 전경. 연합뉴스

정부 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실 전경. 연합뉴스

반면 한국은 공정위가 출범할 때부터 대기업 규제라는 목표가 앞섰고, 따라서 반(反)대기업 정서의 진원지가 됐다. 대기업을 사전 규제했을 때 소비자 후생이 어떻게 좋아질 수 있는지에 대한 해명은 오리무중이었다. 그러다 보니 원인과 대책 간에 앞뒤가 맞지 않는 규제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

카카오톡이 잠시 불통이 돼서 소비자들이 많이 불편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불통 사태가 카카오의 독점 때문에 벌어진 일인가? 먹통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데이터센터 화재다. 공정위 개입이 정당성을 찾으려면 화재가 일어난 것이나, 화재 대응 시스템을 제대로 만들지 않았던 것의 원죄(原罪)를 독점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하는데, 과연 가능한 일인가?

공정위가 ‘심사지침’이라는 것을 만들면 카카오 소비자들이 지금보다 더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가? 별 답이 없을 것이다. 삼성 웰스토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웰스토리의 소비자 대부분은 삼성 계열사 직원들이다. 그들은 웰스토리 급식을 통해 높은 후생복지를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단체급식을 다른 업체들에 개방해 경쟁을 시킨다고 해서 이 소비자들의 후생이 더 높아질 이유가 있을까? 이 또한 별 답이 없을 것이다.

한국의 공정거래 정책에서는 궁극적 대상인 소비자가 사라진 지 오래됐다. 힘센 기업들을 규제하면 세상이 좋아진다는 막연하고 잘못된 기대만 있다. 그래서 기업 관련 문제가 발생하면 공정위를 만능 칼로 휘두르려는 관성만 작용한다. 자유 시장은 ‘소비자가 왕’인 사회이다. 기업이나 정부는 모두 ‘소비자의 종’이다. 새 정부가 ‘자유시장경제’를 강조한다면 공정거래정책과 기구를 소비자 중심으로 대전환해야 한다.

신 장 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