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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IT강국 무색한 ‘디지털 재난대응 시스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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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은주 지능정보사회진흥원 클라우드기술지원단장

김은주 지능정보사회진흥원 클라우드기술지원단장

이태원 참사는 많은 이들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다. 핼러윈 축제에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릴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충분한 사전 대비가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의 도로 통제나 지하철 무정차 통과 등 대규모 군중에 대비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참사 당일 현장에서 시민들이 다급하게 112로 절박한 상황을 신고했지만, 사람을 타고 전파되는 보고 라인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참사가 벌어진 현장에서도 경찰과 소방, 응급의료팀은 역할 조율과 소통이 원만하지 못해 손발이 잘 맞지 않았다. 그 와중에 시민들은 상황의 심각성을 모른 채 이태원으로 계속 밀려들었다.

이태원 상황 보고 잘 작동 안 돼
안전관리체계 디지털 대전환을
기업·시민역량 최대한 활용해야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사람을 통한 재난의 판단·전파·보고·조치의 재난 대응 시나리오는 세월호 참사 때뿐만 아니라 이번 이태원 참사 상황에서도 여지없이 한계를 드러냈다. 사람은 자리를 비울 수도, 잠을 잘 수도, 당황해 적시에 판단을 못 할 수도 있는데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디지털에 힌트가 있다.

지금은 성숙한 디지털 기술이 사회·경제의 작동 구조와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디지털 혁신 시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는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 위성, 우버 앱 같은 GIS 아르타 프로그램, MS 애저 클라우드 등 디지털 기술이 총동원돼 전쟁의 양상을 바꾸고 있다.

중국 항저우에서는 알리바바 클라우드의 시티 브레인이 시내 곳곳에 설치된  폐쇄회로TV(CCTV) 5만여 대의 데이터를 분석해 인공지능으로 도시 전체의 차량 흐름, 대중교통 및 공공 안전을 관리 중이다. 이를 통해 차량 통행 시간을 평균 15% 줄였고 구급차 도착 시각도 14분에서 7분으로 단축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보기술(IT) 강국이다. 국민의 95% 이상이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있으며, 세계 최고의 통신 속도를 자랑한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정부는 1조5000억을 들여 경찰·소방·의료 등 재난 관련 기관이 긴급 재난 상황에서 혼선을 막고 원활히 소통하도록 재난안전통신망을 갖췄다.

전국 방방곡곡에는 CCTV가 설치돼 있으며, 용산구에도 CCTV 1800여 대가 설치돼 있다. 이동통신 3사는 기지국 수집 데이터를 통해 실시간 지역별 인구 혼잡도 분석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하지만 디지털 혁신의 제반 환경이 훌륭히 갖춰져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이태원 참사 와중에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가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모토로 내걸고 연결과 활용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미 갖춰진 디지털 구슬을 잘 꿰어야 한다. 하지만 국가의 작동과 운용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디지털 혁신은 매우 더디다. 여전히 새로운 것을 구축하는 일에 연연하고 있다. 스마트폰, 재난안전통신망, CCTV, 통신사 밀집도 분석 등 ‘디지털 블록’들은 사람 중심의 인식과 전파 체계에 갇혀 있다. 그러니 존재했으나 작동하지 못했다. 소중한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디지털 이전 시대에 만든 사람 중심의 재난 대응 틀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디지털 체계로 확실히 전환해야 한다.

정부는 지난 7일 대통령 주재로 민관 합동 국가안전시스템 점검 회의를 열어 국가 안전관리 체계의 대전환을 논의했다. 디지털 혁신 시대에 걸맞은 국가 안전관리의 대전환을 위해 잊지 말아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백신 예약 시스템 개선이나 공적 마스크 앱 사례처럼 국가적 위기 대응의 주체를 정부에서 기업·시민·정부 모두로 확대해야 한다. 공공뿐 아니라 통신사의 인구 밀집도 데이터 같은 민간 역량도 반드시 함께 활용해야 한다.

서울 중랑구는 1인당 1959대의 CCTV를, 영등포 등 11개 자치구는 1인당 1000대 이상의 CCTV를 육안 관제 중이다. 전국 관제 센터에 민간의 인공지능 기반 CCTV 관제 서비스를 즉시 도입해 부실한 관제를 극복해야 한다. 혹여 이를 막는 구시대적 규제는 과감히 타파해야 한다.

인공지능(AI)이 도시 전체의 데이터를 종합분석한 결과를 심각 정도에 따라 적재적소에 자동 전파해 사람의 부재로 인한 장애를 해결해야 한다. IT 강국이지만 활용하지 않는다면 백약이 무효다. 꿰지 않은 서 말의 구슬은 보배가 아니다. 국민의 생명이 달린 일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은주 지능정보사회진흥원 클라우드기술지원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