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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경호 논설위원이 간다

소득세·부가세 실효세율 높이자는 제안 반갑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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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증세 필요성 제기한 KDI 보고서

서경호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기초연금 정책을 최근의 우리 정치권처럼 가볍게 다루는 것은 정말 적절하지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나랏돈으로 선심이라도 쓰는 듯한 정치인들의 태도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이창수 한국연금학회 회장(숭실대 정보통계보험수리학과 교수)이 지난 11일 열린 연금학회 정책세미나 ‘한국의 공적연금 지속 가능한가, 갈림길에 선 기초연금’ 자료집에 올린 개회사 성격의 ‘모시는 글’이다.

절절한 호소 담은 세미나 인사말

이 교수는 “국가의 세금으로 재원을 충당하니 당장 혜택을 보는 노인세대의 지지는 쉽게 얻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미래세대의 어려움에 대해 심사숙고하였는지 묻고 싶습니다”라며 정치권의 기초연금 인상 움직임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통상 감사 인사 같은 무난한 얘기나 점잖게 나누는 세미나 인사말에 이렇게 절절한 호소를 담는 건 이례적이다.

기초연금 인상은 여야의 포퓰리즘
미래세대 어려움 심사숙고 했어야

2060년 국가채무비율 기준선 145%
최악의 경우 231%, 국채도 못 발행

증세의 정치적 부담 정권간 나눠야
“정부의 강력한 정책 리더십 필요”

실제로 기초연금 인상이라는 포퓰리즘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현재 기초연금은 소득 하위 70%에게 월 30만원을 지급한다. 윤석열 정부는 기초연금 지급액을 40만원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겠다고 국정과제를 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40만원 인상과 함께 기초연금을 노인 100%에 지급하고, 부부 감액(20%)을 폐지하는 안을 제안했다. 이러니 정치권이 아무리 청년을 위한 정책을 펴겠다고 목청을 높여도 신뢰가 안 가는 거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주 ‘코로나19 이후 재정 여력 확충을 위한 정책과제’ 보고서를 냈다. 지난해 냈던 논문을 요약하고 재가공했다. 보고서 골자는 이렇다. “인구 고령화로 인해 2060년에 우리나라의 기준선 국가채무비율은 144.8%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며, 기준선 전망에 사용된 인구 추계와 재량지출 전제가 실현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장기 재정여건은 더 악화할 것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기준선 재정 전망은 현행 법·제도·관행 등이 유지된다고 가정하고 재정 수입과 지출의 미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다. 인구와 거시경제, 재량지출은 이렇게 전제했다.

첫째, 인구는 2019년에 통계청에서 발표한 중위 기준 장래인구 추계를 원용했다. 이에 따르면 2060년의 총인구는 4280만 명으로 2021년의 82.7% 수준이다.

둘째, 장기 경제성장률은 2020년 장기재정전망협의회 자료를 이용했다. 2021~2060년간 경상성장률은 추세적으로 낮아져 연평균 2.8% 수준에 그칠 것으로 잡았다.

셋째, 재량지출은 좀 복잡하다. 미래 정부의 정책 의지나 당면한 경제 현안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가령 코로나19 같은 예상하지 못한 보건 위기가 다시 터지면 재량지출은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일단 그런 비상상황은 없다고 가정하고 잡았다. 2021~2025년의 재량지출은 ‘2021~2025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의 수치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14.7%를 그대로 사용했다. 2026~2030년 매년 0.57%포인트씩 낮춰 코로나19 위기 발생 직전의 GDP 대비 재량지출 비율 평균인 11.8%로 낮추고 2031년부터 이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가정했다.

큰 위기 없어도 2060 국가채무비율 세 배

이게 기준선이다. 현재의 국가채무비율(2020년 43.8%, 올해 전망치 49.7%)의 세 배 수준인 2060년 국가채무 비율 144.8%조차 앞으로 코로나19 같은 대형 위기가 없다는 낙관적인 기대를 품고 있다. 인구 고령화로 연금 수급자가 늘어나면서 국민연금은 2036년부터 적자로 전환돼 적립금이 줄기 시작해 2054년에 완전히 고갈된다. 국민연금 등 4대 사회보장기금 수지는 2038년 적자로 돌아서 2060년에는 -5.7%의 적자비율을 기록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면 당연히 수치는 더 나빠진다. 첫 번째 전제가 어긋나 인구가 중위기준이 아니라 저위기준으로 더 떨어지면 2060년 총인구는 2021년의 73.7% 수준인 3800만 명 수준으로 낮아진다. 성장률은 하락하고 세수는 줄어 나라 살림은 더 팍팍해진다. 이 경우 KDI는 2060년 국가채무비율이 기준선 대비 25.4%포인트 늘어난 170.2%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보고서 작성자인 김학수 KDI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합계출산율이 저위기준 가정에 근접하고 있다는 점은 향후 우리나라의 재정여건이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만약 세 번째 전제가 틀어져 정부가 재량지출 통제를 못 하고 코로나19로 늘어난 재량지출이 2060년까지 14.7%로 그대로 유지되면 2060년의 국가채무비율은 기준선 대비 86.1%포인트 늘어난 230.9%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과연 이러한 수준의 국가채무 조달을 위한 국채 발행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지방교육교부금 학령인구 변화 반영을

재정 파탄을 피하기 위해 KDI는 세 가지 해법을 제시한다.

첫째, 빠르게 줄고 있는 학령인구 감소에 맞춰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개편하는 것이다. 1972년에 도입돼 50년간 유지돼온 현행 제도는 초중고 교육재정에 내국세수의 20.79%를 기계적으로 투입한다. 예산의 효율성과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올해에는 국세 수입의 호조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81조원이나 이전됐다. 교육청마다 예산을 다 사용하지 못해 난리라는 보도가 나왔다. 교육교부금 제도를 학령인구 변화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고치면 2060년 국가채무비율을 기준선보다 28.2%포인트 축소할 수 있다.

둘째, 정부가 재정 허리띠를 더 졸라매는 것이다. 2031~2060년간 매년 0.023%포인트씩 경상GDP 대비 재량지출 비율을 줄여 2060년에 11.1%에 도달하면 어떻게 될까. 국가채무비율 개선 효과는 2060년 기준선 대비 10.1%포인트에 달하게 된다.

셋째, 증세와 비과세 감면 축소다. KDI는 소득세와 부가세 실효세율(명목세율이 아닌 각종 공제, 감면 조치를 반영해 실제 국민이 부담하는 세율)을 1%포인트씩 인상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지난해 기준 약 2조8600억원의 비과세 감면을 정비할 수 있다고도 분석했다. 이 같은 세입 기반 확충으로 국가채무 비율을 18.9%포인트 줄일 수 있다고 했다.

결국 KDI가 제안한 세 가지 해법을 이행하면 2060년의 국가채무 비율은 기준선인 144.8%보다 57.2%포인트 낮아진 87.6%가 된다.

국책연구기관이 증세의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제기한 건 참 반가운 일이다. 어느 정부든 증세를 거론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한다. 국민의 수용성을 감안해야 한다느니 따위의 변명을 앞세우며 눈앞에 훤히 보이는 증세의 불가피함을 정부 스스로 외면하곤 했다.

‘재정비전 2050’에 증세 방안 담아야

지난 25일 한국경제·재정·행정학회와 조세재정연구원이 공동으로 주관한 ‘재정비전 콘퍼런스’가 열렸다. 최상대 기획재정부 제2차관은 기조연설에서 “재정위험과 재정병폐를 치유하기 위한 재정개혁은 지금 시작해도 20~30년 후에나 가시적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향후 5~10년이 마지막 재정개혁의 기회란 각오로 ‘재정비전 2050’ 수립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재정개혁을 주제로 열린 이 날 콘퍼런스에서 나온 7건의 발제 제목 중 세금 얘기는 없다. 내년 상반기 발표되는 ‘재정비전 2050’에 증세를 비롯한 세입 확충 방안이 빠진다면 실망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KDI 보고서는 해법으로 제시한 3대 정책과제 모두 매우 어려운 과제라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재정개혁 수준의 이러한 정책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강력한 리더십이 요구된다”고 썼다.

중장기적 증세의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많다. 정치적인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제안도 이미 나왔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 시절인 올해 초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앞으로 10년간 매년 GDP 대비 0.5%씩 세수(국민연금·건강보험 등 사회보장기여금 포함)를 증가시키고 이를 복지지출 재원으로 연계시키는 ‘증세 부담의 정권 분산론’을 제안했다. 증세가 특정 정부의 부담이 되지 않게 세수 증가를 여러 정부에 걸쳐 분산하자는 것이다.

재정학자인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도 올해 출간한 『재정전쟁』에서 연금·조세개혁의 정치적 부담을 정권 간에 나누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번 정부에서는 전문가 집단이 오직 최선의 시안을 만들고 실행은 다음 정부에서 하도록 합의하자는 것이다.

결국 여야가 소통하고 정치가 좀 돌아가야 미래의 증세 얘기도 합리적으로 풀 수 있는데 지금처럼 사생결단식 드잡이가 일상이면 기대난망이다. 헌법이 정한 예산 처리기한(12월 2일)이 코앞인데도 내년 예산과 예산 부수 법안인 세법 개정안이 당장 어찌 될지조차 예상하기 힘들다. 이런 분위기에서 중장기 증세와 재정의 미래를 고민하라는 주문을 해도 되나 잠깐 고민했다. 그래도 하기로 했다. 중요하니까. 귀 기울일 때까지 반복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