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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품단가 연동제’ 9부 능선 넘자, 경제단체 파열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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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납품 가격에 반영하는 ‘납품단가 연동제’가 법제화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대·중소기업 경제단체 간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다.

28일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서울 여의도 중기회관에서 기자단 브리핑을 열고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에 대해) 지난 14년간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다른) 경제단체들이 나서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대한상공회의소나 한국무역협회는 회원 99%가 중소기업”이라며 “납품단가 연동제를 반대하는 것이 이들의 공식 입장인지 묻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소기업을 위해서라면 (경제단체 중에서) 외톨이가 돼도 해야 할 것 같다”라고도 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규제 완화, 화물연대 파업 등 주요 현안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오던 6개 경제단체 간 균열 기류가 생기고 있다. 앞서 상공회의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무역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5단체는 지난 23일 “(납품단가 연동제의) 문제점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법안이 시행되면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취지의 공동성명을 낸 바 있다.

반면 중기중앙회는 2008년부터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을 주장해왔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후보 당시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부작용을 우려해 민간 자율에 맡기는 것으로 정리됐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자재 가격이 오르자 상황이 또 달라졌다. 여야 모두 납품단가 연동제 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고, 지난 2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를 통과했다. 납품 대금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0% 이상인 주요 원재료에 연동제를 도입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다만 계약 주체가 합의하면 도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단서 조항이 포함됐다. 향후 법제사법위원회→본회의를 통과하면 공포 9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시행된다. 계도기간은 3개월이다.

이렇게 법안이 도입 9부 능선을 넘어서자 대기업 단체가 반대 입장을 내놓고 있다. 상의 등 5개 단체는 “대·중소기업이 자율 참여하는 시범사업이 종료된 후 법제화를 추진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계약법의 기본원리인 ‘사적 자치의 원칙’이 훼손될 것을 우려한다. 되레 중소기업에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조인숙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장기적으로 기업들이 부품업체를 해외로 전환하면, 그 피해를 중소기업이 떠안을 수 있다”며 “원유가 연동제가 가공유·유제품 가격을 연쇄적으로 인상시키는 밀크플레이션을 부른 것처럼 소비자에게 최종 가격이 전가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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