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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순위 흔드는 이 남자…“장르교배·신파가 먹힌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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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K콘텐트 세계로 간다 ⑧

클라이맥스 스튜디오 변승민 대표가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옥에서 자신이 제작한 드라마 ‘D.P.’와 ‘몸값’ 포스터를 들어보였다. 그의 사무실엔 드라마 ‘지옥’의 새진리회 의장 두상, 차기작 ‘정이’ 의상 등 그간 작품에 등장한 소품이 기념품처럼 간직돼 있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클라이맥스 스튜디오 변승민 대표가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옥에서 자신이 제작한 드라마 ‘D.P.’와 ‘몸값’ 포스터를 들어보였다. 그의 사무실엔 드라마 ‘지옥’의 새진리회 의장 두상, 차기작 ‘정이’ 의상 등 그간 작품에 등장한 소품이 기념품처럼 간직돼 있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콘텐트뿐 아니라 플랫폼도 계속 진화해요. 새로운 플랫폼·투자자들이 많이 나오는 환경에서 생기는 기회에 발맞춰, 계속 준비하는 게 유일한 비결입니다.”

설립 4년 만에 잘 나가는 흥행사로 떠오른 클라이맥스 스튜디오 변승민(40) 대표의 말이다. 지난해 공개 하루 만에 넷플릭스 세계순위 1위에 오른 ‘지옥’(감독 연상호)과 군대 내 부조리를 고발하며 신드롬을 일으킨 ‘D.P.’(감독 한준희)가 모두 클라이맥스 제작 드라마다.

클라이맥스는 투자·배급사 NEW·워너브러더스코리아 등을 거친 변 대표를 포함해 기획 프로듀서·경영팀 등 젊은 피 8인이 뭉친 회사다. 2018년 레진엔터테인먼트 산하 스튜디오로 출범해 지난해 독립, 사명을 현재대로 바꾼 후 SLL(옛 JTBC 스튜디오)에 450억원(지분율 95%)에 인수됐다. 첫 제작 작품인 영화 ‘초미의 관심사’(2020)부터 카카오TV 오리지널 ‘아만자’(2020), 연상호 감독이 각본을 쓴 tvN 드라마 ‘방법’(2020) 및 극장판 ‘방법: 재차의’(2021)까지 영화·드라마·숏폼 콘텐트를 오가며 시의성 있는 장르물을 순발력 있게 만들어냈다.

지난달 국내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티빙에 출시한 6부작 ‘몸값’(감독 전우성)도 동명 단편 영화를 오프닝 장면으로 가져와 장편 재난 스릴러로 확장한 독특한 사례다. 저마다 몸값 흥정을 벌이던 직장인(진선규), 여고생(전종서), 효자(장률)가 한 건물에서 대지진에 휘말리는 독특한 소동극을 원테이크(카메라를 끊지 않고 찍는 기법) 촬영 효과로 몰입도 있게 펼쳐내, 첫 주 시청 UV(순방문자수) 기준 역대 티빙 오리지널 1위를 차지했다. ‘몸값’은 글로벌 OTT 파라마운트+ 오리지널로 내년 해외 시장 공개를 앞뒀다.

지난 22일 서울 강남 논현동 클라이맥스 사옥에서 만난 변 대표는 지난 4년간 가장 달라진 점을 묻자 “한국뿐 아니라 해외 유명 제작자, 스튜디오에서 작품 리메이크, 협업 때문에 먼저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답했다. “최근엔 ‘나르코스’(넷플릭스 인기 미국 범죄 드라마) 제작자가 다녀갔다”면서 “수치상 성장보다 더 큰 변화”라고 말했다.

변승민 대표가 사무실 테이블에 모아둔 제작 작품 대본과 관련 서적.

변승민 대표가 사무실 테이블에 모아둔 제작 작품 대본과 관련 서적.

현재 진행 중인 작품 수는.
“2024년 말 개봉 목표의 애니메이션까지 20편 정도. 개발을 검토 중인 아이템까지 포함하면 50편 정도 된다.”
작품 내놓는 속도가 빠르다.
“투자·배급사에서 오래 일하며 봐온 제작사들의 장점을 취합해보니 계획 주기가 짧아야겠더라. 초석은 ‘하루 계획’이다. 활시위를 당길 때 1㎝ 오차가 먼 과녁에선 100m 차이가 되지않나. 오늘 세운 계획을 내일 다시 점검해서 조금씩 수정해나가는 게 중요하다. 계획을 짜는 것도 훈련이다. 잘 훈련되면 기획이든 제작이든 방향을 전환하는 큰 결정도 능숙해진다.”
작품을 예로 들면.
“‘지옥’은 영화 상·하편으로 갈지 시리즈물로 갈지 계속 고민했다. ‘몸값’도 매회 30분 조금 넘는데 기획 당시 길이가 너무 짧으면 관객이 배신감을 느껴서 이탈률이 높아질 거란 우려와 요즘 세대는 짧은 걸 선호한다는 의견이 마지막까지 부딪혔다. OTT의 역사가 짧기 때문에 관객 선호도에 대한 판단이 거의 매일 바뀌기도 한다. 우리 작품이 아니어도 관객 반응을 많이 찾아본다.”
해외에선 K콘텐트의 어떤 점에 각광한다고 보나.
“다이내믹한 한국 사회의 독특한 이야기와 낯선 배우, 장르의 이종교배 등이다. ‘신파코드’도 부정적 평가를 많이 받지만, 해외 관객 반응은 오히려 좋을 때가 있다. ‘오징어 게임’도 그렇고, ‘지옥’ ‘몸값’도 범주는 조금 달라도 그런 직관적 감정이 많다. 가장 한국적인 일일 드라마, 미니 시리즈가 세계 관객에 각광받는 것만 봐도, 한껏 울고 바로 울 수 있는 K콘텐트의 직관성이 해외 관객한테 사랑받는다는 생각이 든다.”

넷플릭스 드라마 ‘정이’, ‘지옥’ 시즌2를 향후 선보이는 연상호 감독과 ‘D.P.’ 시즌2 촬영을 최근 마친 한준희 감독, 같은 작품 원작·각본을 맡은 김보통은 클라이맥스와 꾸준히 작업해온 창작자들이다. ‘몸값’으로 데뷔한 전우성 감독도 포함된다. 변 대표는 “자기 목소리가 있는 감독·작가들에게 매력을 느낀다”면서 “영상 창작자의 영역 구분이 많이 없어지는 것 같다”고 내다봤다.

클라이맥스의 차기작 중 김숭늉 작가의 동명 웹툰에 뿌리를 둔 ‘유쾌한 왕따’ 시리즈는 마동석 주연 액션영화 ‘황야’(가제, 감독 허명행), 박서준·박보영·이병헌이 호흡 맞춘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 드라마 ‘유쾌한 왕따’(감독 민용근) 등으로 저마다 개성이 다른 창작자들이 다양한 형태 작품으로 이어갈 예정이다. ‘지옥’ ‘D.P.’ ‘몸값’을 잇는 클라이맥스의 새로운 세계관 실험이다. 변 대표는 “각 작품의 개성이 뛰어나서 서로 유사한 색채·장르를 기대하고 보면 오히려 한정적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계획적으로 꽉 짜인 거대한 세계관이 맞을지, 느슨한 연대가 맞을지 전체 투자를 맡은 롯데엔터테인먼트와 함께 치열하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4년 후는 미디어 환경·관객이 어떻게 변할지 솔직히 전혀 모르겠어요. 하루하루 조금씩 놓치지 않고 부지런히 따라가는 거죠. 좀 더 작가주의 우선의 영화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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