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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꼬막 만으론 성장 한계, 해양생태·관광 허브로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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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면

2022 지자체장에게 듣는다 

김철우 전남 보성군수가 오봉산에 구들장 석탑을 쌓게된 배경과 보성군 최초로 예산 1조원 시대를 열 계획 등을 밝히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김철우 전남 보성군수가 오봉산에 구들장 석탑을 쌓게된 배경과 보성군 최초로 예산 1조원 시대를 열 계획 등을 밝히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1999년 7월 전남 보성군 득량면 오봉산. 김철우(57) 보성군수가 산등성이에 흩어진 돌을 주워 탑을 쌓아갔다. 현재 오봉산 곳곳에 76개가 세워진 구들장 석탑의 시작이다. 구들장은 한옥 난방설비인 온돌(溫突)의 방 바닥에 까는 얇고 평평한 돌이다.

당시 보성군의원이던 김 군수는 전통 한옥 자재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탑을 쌓았다. 오봉산은 한때 국내 구들장의 70%를 캐내던 최대 산지다. 70년대 말까지 전국으로 팔려갔지만, 보일러와 아파트문화에 밀려 채석이 중단됐다. 오봉산은 중생대 백악기 때 수차례 화산 폭발로 생긴 화산재가 켜켜이 쌓인 응회암 지대다.

김 군수에게 보성 구들장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오봉산에서 구들장 채취사업을 하던 부친을 보며 성장했다. 그는 채석 전 발파 때마다 고사를 지내던 선친을 떠올리다 석탑을 생각해냈다. 산업화에 묻힌 전통 건축자재의 가치를 널리 알려야겠다는 결심도 한몫했다. 그는 “산속에 방치된 귀중한 문화유산을 알리려면 탑을 쌓고 공부터 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올해 ‘오봉산 채석지’ 국가문화재로 지정

전남 보성군의 남해안 해양관광 분야를 주도할 율포해양복합센터 조감도. [사진 보성군]

전남 보성군의 남해안 해양관광 분야를 주도할 율포해양복합센터 조감도. [사진 보성군]

그가 공들여 쌓은 탑은 23년이 지나 빛을 봤다. 문화재청은 지난 4월 27일 오봉산 채석지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광산 중 국가문화재로 등록된 것은 오봉산이 처음이다.

김 군수가 오봉산 탑을 쌓은 것은 지방정치에 입문한 직후부터다. 1998년 지방선거 때 33세로 전국 최연소 군의원이 된 후 3선 군의원과 군의장 등을 거쳤다. 2018년 6·13 선거 때 군수가 된 후 올해 6·1 선거 때는 무투표로 당선됐다.

그는 보성군수가 된 후 중앙부처와 국회를 찾아다니며 예산확보에 공을 들였다. 13년간 군의원을 지내는 동안 “녹차와 꼬막만으론 보성을 발전시킬 수 없다”고 판단해서다. 보성은 이후 4년간 1년 예산이 5500억 원대에서 7700억 원대로 불어났다.

김 군수는 재선 직후 보성군 최초의 예산 1조 원 돌파를 목표로 내걸었다. 초선 때 시작한 사회간접자본(SOC) 뉴딜 프로젝트를 통해 군 재정을 키운다는 복안이다. 농어민 공익수당 120만원 지급, 청소년 100원 버스, 보성읍·벌교읍 키즈카페 유치 등도 공약했다.

김 군수가 예산 1조원 시대를 열 카드는 바다와 생태다. 국내 최대 규모인 보성녹차밭(758㏊) 앞에 펼쳐진 바다를 활용하는 게 골자다. 그는 구들장 돌을 추슬러 탑을 쌓은 것처럼 “바다도 가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 군수는 “천혜의 청정자연을 친환경적으로 활용해 남해안을 대표하는 해양레저 및 해양생태 관광의 허브로 가꿀 것”이라고 했다.

올해 말 착공할 율포해양레저 사업은 남해안 해양관광의 킬러 콘텐트다. 500억 원을 들여 45m 깊이의 스킨스쿠버풀과 실내서핑장, 수중스튜디오, 생존체험장 등을 짓는다. 현재 사업지 주변에는 해수와 녹차를 이용한 스파시설(율포해수녹차센터)과 오토캠핑장, 비봉마리나 등 해양레저 기반시설이 있다.

김 군수가 바다에 관심을 쏟는 데는 보성 갯벌의 가치를 극대화하려는 전략도 숨어있다. 보성 벌교갯벌은 2006년 국내갯벌 최초로 람사르습지에 등록된 후 2021년 7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 됐다. 생태적 가치와 생물 다양성을 근거로 과거 꼬막 주산지를 넘어 해양생태의 보고로 공인받았다.

벌교갯벌은 항구적인 생태보존 모델로도 주목받고 있다. 인근 순천만과 함께 현 정부의 120대 국정과제인 ‘국가해양정원’의 중심지 역할이다. 보성군은 2018년 ‘여자만 국립갯벌습지정원 조성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사업을 추진 중이다. 여수~순천~고흥~보성 앞바다의 생태를 잇는 2185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다.

벌교 꼬막, 인공종자 보급해 생산량 늘릴 것

보성 특산품인 벌교꼬막과 녹차 산업은 고도화 전략을 추진한다. 내년부터 추진될 인공종자 보급을 통한 참꼬막 자원회복 사업이 대표적이다. 벌교 참꼬막은 90년대 중반까지 1만t 이상이 생산됐으나 2012년 4000t대로 떨어진 후 지난해 64t까지 줄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득량만과 여자만 청정어장 재생사업 등도 어족자원 보존책 중 하나다.

녹차산업은 해외 프리미엄 차(茶) 시장 공략을 비롯해 다각화 전략을 펴고 있다. 김 군수는 지난달 21일 프랑스 낭트에서 보성녹차 시음회를 열었다. 보성산 녹차와 쌀을 수출하기 위해 현지 업체 2곳과 업무협약도 했다. 앞서 프랑스에서는 지난 3월과 8월 총 1900㎏의 보성녹차를 수입한 바 있다.

보성녹차는 프랑스 외에도 가루녹차와 유기농 녹차 등이 독일·미국 등에 수출되고 있다. 보성군은 수출 및 내수시장 확대를 위해 차 생산시설 현대화나 신제품 출시 등을 지원하고 있다. 보성에서는 지난해 582농가가 전국 녹차(건엽)의 17%(804t)를 생산했다.

김 군수는 “출근을 할 때마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 전 선조에게 장계를 올린 열선루(列仙樓)를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곤 한다”며 “군민 모두가 ‘나 보성에 산다’고 자랑하는 보석 같은 고장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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