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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성범죄·사기 판치는 ‘다크버스’, 메타버스 윤리원칙이 막을까

중앙일보

입력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가 아동 성착취 방지 글로벌 연합 기구인 테크 코얼리션에 가입했다. 사진 제페토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가 아동 성착취 방지 글로벌 연합 기구인 테크 코얼리션에 가입했다. 사진 제페토

법과 규범이 없는 메타버스에서 현실 세계의 문제가 그대로 답습되고 있다. 아바타를 이용한 스토킹, 성희롱 뿐 아니라 사기 피해까지 발생하고 있는 것. 보안기업인 트렌드마이크로는 메타버스에서 범죄를 공모하고 실행하는 ‘다크버스’를 새로운 사이버 보안 위협으로 꼽았다. 이 확산의 고리를 끊을 방안으로 정부가 내놓은 것은 메타버스 윤리규범이다. 정부 수준에서 메타버스에 적용할 윤리규칙이 발표된 건 세계 최초. 규범이 법제도의 공백을 메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무슨일이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는 28일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메타버스 윤리원칙’을 발표했다. 메타버스가 확대되면서 발생할 윤리적 문제를 사전에 검토해 자발적으로 정화 노력을 하게 만들겠다는 취지다. 박윤규 과기정통부 2차관은 “메타버스는 창의와 혁신의 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아바타 괴롭힘과 디지털 창작물 권리침해 등의 윤리적 이슈가 대두되기 시작했다”며 “정부는 시민사회의 자율성과 역량에 기반한 연성규범인 메타버스 윤리원칙을 수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왜 중요해

◦ 신대륙에도 룰은 필요해: 정부는 올해 초 메타버스를 ‘디지털 신대륙’으로 보고 ‘K-메타버스 플랫폼’을 육성하기 위한 전략을 발표했다. 민관협력을 통해 지속가능한 메타버스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것. 그렇게 되려면 일단 사용자들이 오고싶은 환경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 앞서 인터넷에서 각종 범죄와 비윤리적 문제가 발생하자 지난 2000년 ‘네티즌윤리강령’(정보통신윤리위원회)이 나왔듯, 메타버스가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전에 윤리 규범을 확보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그동안 정보통신기술 발전 과정에서 윤리규범은 역기능을 완화할 수 있는 공동체의 대응방안이 돼 왔다”며 “메타버스 관련 법제도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정책적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 플랫폼 ‘안전성’ 구축: 메타버스 플랫폼 사용자들은 이미 비윤리적·불법적 행위로 누적된 불쾌감을 호소하고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실시한 ‘메타버스 수용도 조사’에 따르면 메타버스 플랫폼 이용자 중 38.3%는 ‘불쾌감을 유발하는 발언이나 행동’을, 26.2%는 ‘개인정보나 계정정보를 요청하는 행위’를 경험했다. 특히 응답자의 47.6%는 비윤리적, 불법적 이슈 신고 시 ‘적절한 조치가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이 때문에 메타버스 선두주자들은 이미 플랫폼의 ‘안전성’을 중요한 키워드로 보고 있다. 계속해서 범죄 등이 발생하면 사용자들이 피로를 느끼게 되고, 결국 플랫폼 확장에도 걸림돌 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를 운영하는 네이버제트는 이날 안전한 메타버스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안전자문위원회를 발족했다고 밝혔다. 안전자문위원회는 외부 전문가 기구로 인터넷과 청소년 안전, 언론학, 범죄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기로 했다.

무슨 내용이야

윤리원칙을 적용할 대상은 개발·운영·이용자 등 메타버스 플랫폼의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들이다. 3대 지향가치(온전한 자아·안전한 경험·지속가능한 번영)와 이를 위한 실천원칙(진정성·자율성·호혜성·사생활 존중·공정성·개인정보 보호·포용성·책임성)을 담았다.

◦ 가상자아의 사생활도 보호: 윤리원칙에선 메타버스 내에 있는 ‘가상 자아’의 사생활도 보장돼야 한다고 규정했다. 플랫폼을 운영하는 주체는 사적 영역을 침해받은 사용자들이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 이용자들도 “타인의 사생활이 침해받지 않도록 노력”해야한다.

◦ 경제 활동은 투명하게: 메타버스가 일반 가상세계와 구분되는 지점은 경제활동이 일어난다는 점. 정부는 이와 관련해 “(플랫폼은) 창작 혹은 생산 활동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내용과 분배 과정을 사용자에게 투명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공정하게 형성된 창작물을 존중하고 창작자의 권리와 이익을 정당하게 보장해야 한다는 것.

한계는 없나

◦ 법적 구속력 없는데: 정부는 윤리규범이 향후 메타버스에서 발생할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선제적 대응’이라고 설명하지만, 이미 플랫폼 내에서는 현실세계와 연결된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국회에서도 관련 논의가 있지만 아직 발의 단계라 보완이 필요한 상황. 민형배 무소속 의원은 지난 5월 아바타에 대한 강간·강제추행도 처벌이 가능하도록 한 성폭력범죄처벌 특례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다만 해당 법안은 처벌 기준이 모호하고, 고의 등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아 보완 입법이 필요한 상황.

◦ 사회 전반에 안착하려면: 법적 구속력이 없는 규범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으려면 사회 구성원의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 김봉제 서울교육대학교 교수는 “사회 전반에 안착되기 위해서는 지원책이 필요하다”며 “교육, 홍보 등을 위한 지원정책이 수반돼야만 개발 목적에 부합하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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