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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톨이 불사” vs “중기가 피해”…납품단가 연동제에 재계 ‘다른 목소리’

중앙일보

입력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를 윤관석 위원장이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를 윤관석 위원장이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납품 가격에 반영하는 ‘납품단가 연동제’가 법제화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대‧중소기업 경제단체 간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부작용 최소화를 위해 법안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8일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서울 여의도 중기회관에서 기자단 브리핑을 열고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에 대해) 지난 14년간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다른) 경제단체들이 나서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대한상공회의소나 한국무역협회는 회원 99%가 중소기업”이라며 “납품단가 연동제를 반대하는 것이 이들의 공식 입장인지 묻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소기업을 위해서라면 (경제단체 중에서) 외톨이가 돼도 해야 할 것 같다”고도 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에 따라 그동안 규제 완화, 화물연대 파업 등 주요 현안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오던 6개 경제단체 간 균열 기류가 생기고 있다. 앞서 상공회의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무역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5단체는 지난 23일 “(납품단가 연동제의) 문제점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법안이 시행되면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낸 바 있다.

중기중앙회는 2008년부터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을 주장해왔다. 당시 고철‧펄프값이 급등하자 이명박 정부가 도입을 추진했으나 ‘시장 질서를 왜곡할 수 있다’는 반론에 부딪히면서 좌초됐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후보 당시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부작용을 우려해 민간 자율에 맡기는 것으로 교통 정리됐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자재 가격이 다락 같이 오르자 상황이 또 달라졌다. 여야 모두 납품단가 연동제 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고, 지난 2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를 통과했다. 납품 대금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0% 이상인 주요 원재료에 연동제를 도입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다만 계약 주체가 합의하면 도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단서 조항이 포함됐다. 향후 법제사법위원회→본회의를 통과하면 공포 9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시행된다. 계도기간은 3개월이다.

이렇게 법안이 도입 9부 능선을 넘어서자 대기업 단체가 반대 입장을 내놓고 있다. 상의 등 5개 단체는 “대·중소기업이 자율 참여하는 시범사업이 종료된 후 법제화를 추진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계약법의 기본원리인 ‘사적 자치의 원칙’이 훼손될 것을 우려한다.

도입 취지와 다르게 되레 중소기업에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중소기업이 제품을 공급받는 위탁 기업인 경우 원자재 가격 상승 시 대금을 추가 지급해야 한다. 수탁 기업인 경우 가격 하락 땐 수입이 줄어들어 예측 불가능한 자금난에 빠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익명을 원한 재계 관계자는 “법제화로 납품단가 구조가 경직되면 서로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며 “현장에서도 원자재 가격 하락 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우려하는 사례도 많다”라고 말했다.

조인숙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장기적으로 기업들이 부품업체를 해외로 전환하고, 그 피해를 중소기업이 떠안을 수 있다”며 “원유가 연동제가 가공유‧유제품 가격을 연쇄적으로 인상시키는 밀크플레이션을 부른 것처럼 소비자에게 최종 가격이 전가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연동제는 해외에서도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만큼 현 제도를 활용하거나 시범사업을 분석한 뒤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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