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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위믹스 상폐시킨 ‘닥사’…자율규제인가, 규제공백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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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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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 닥사(DAXA)를 둘러싼 논쟁에 불이 붙었다. 닥사가 지난 24일 암호화폐 ‘위믹스(WEMIX)’에 대해 다음달 8일 상장폐지하기로 결정하자, 위메이드는 이를 거래소들의 담합’이라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위믹스 발행사인 게임업체 위메이드의 코스닥 주가도 지난 25일 하루새 30%가량 폭락하면서 코인 상장·폐지에 대한 관리·감독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게 왜 중요해

① 자율기구의 권한과 투명성: 문제 제기의 핵심은 닥사가 행사한 권한과 책임의 범위다. 이건호 전 KB국민은행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닥사의 결정이 매우 불합리할 뿐 아니라 불법의 소지가 있다”며 “닥사 회원사들이 집단적으로 위믹스의 거래지원을 중단하기로 한 것은 명백한 담합”이라고 비판했다.

닥사는 5개 가상자산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가 지난 6월 결성한 자율규제 기구다. 지난 5월 테라-루나 사태 때 국내 코인거래소마다 대응이 제각각이어서 투자자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여당·정부의 간담회 이후 거래소들이 자진해 만들었다. 코인 발행사가 투자자를 모으는 상장(ICO)부터 유의종목 지정, 상장폐지 등 주요 결정에 업계 자율적으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투자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위믹스는 닥사 회원사 중 고팍스를 제외한 네 곳에 상장됐다. 닥사가 유의종목 지정과 상장폐지를 논의한 건 위믹스가 세번째. 이전엔 글로벌 코인 2종(라이트코인, FTT)에 대해 공동 논의후 상장폐지를 결정한 바 있다. 24일 상장폐지 소식이 알려진 이후 위믹스 가격은 폭락했다. 27일 오후 4시 업비트 기준, 위믹스는 675원으로 상장폐지 발표 전인 24일 오후 12시(2495원)보다 72.9% 떨어졌다. 위메이드 장현국 대표는 지난 25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상장폐지의 발단이 된 유통량은 가이드라인도, 기준도 없는데 거래를 종료시키는 결정은 비합리적”이라고 반박했다.

닥사가 상장폐지 논의 과정을 비공개에 부친 것도 논란이다. 닥사는 지난달 암호화폐 ‘거래지원심사 공통 가이드라인’을 도입했으나 상장폐지 심사에 관한 가이드라인은 아직 없다. 닥사 측은 “시장 참여자의 판단과 자산가격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논의 과정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청한 암호화폐 업계 관계자는 “향후 다른 암호화폐 기업에도 기준이 될 수 있는 결정인데, 심사 과정이 공개되지 않아 언론 보도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② 가상자산 입법 공백: 논란의 근본 원인은 암호화폐를 관리·감독할 제도의 공백에 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5대 거래소로부터 제출받은 2017년부터 올해 8월까지 상장 폐지율은 평균 28.2%에 달한다. 최고 47%(업비트)부터 최저 8.5%(코빗)까지 거래소 간 차이도 크다. 코인 상장이나 폐지 기준이 거래소마다 다르기 때문.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 등 금융 당국이 거래소나 발행사를 관리·감독하거나 투자자 보호 장치를 마련할 법적 권한은 현재로선 없다. 관련 법이 없기 때문. 현재 국회엔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안 총 15건이 발의된 상태다.

관련 법이 없어서 관리 감독도, 처벌도 못한다는 문제는 오래 지적돼 왔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윤 의원은 두나무 창업자인 송치형 의장이 업비트 개장 초기 자전거래(동일한 투자자가 거래량을 부풀리기 위해 혼자 매도·매수 주문을 내는 것)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가상자산 거래소를 규제할 법적 근거는 없다. 이에 대해 이석우 두나무 대표는 국감에서 “(자전거래는) 검찰측 주장일 뿐”이라며 “(거래소) 개장 초기에 아무런 룰이 없었고 지금까지도 그런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객관적 기준이 없으니 빨리 (룰이) 정해지는 게 맞는데 5년간 국회·정부를 찾아 다녔지만 수용이 안됐다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번 위믹스 사태와 관련, 이날 금감원 관계자는 “아직 디지털자산법 도입이 안돼 있어, 당국이 관리 감독할 법적 권한이 없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입법 전이라도 할 수 있는 부분 찾아보겠다”고 설명했다.

”담합” vs “억울”

위메이드는 각 거래소를 대상으로 법적·행정적 대응에 나섰다. 위메이드 관계자는 “위믹스 거래지원 종료에 대한 가처분 신청을 준비하는 한편, 공정위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이익을 얻는 거래소가 모여서 집단적으로 거래를 중단한 만큼, 담합 혐의로 제소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러나 닥사 측은 “상장폐지를 결정한 건 닥사가 아니라 각 거래소”라고 강조했다. 특히 유통량과 관련된 소명 기회가 부족했다는 위메이드 측의 주장을 적극 반박했다. 닥사 관계자는 “지난달 27일 각 거래소가 유의 종목으로 지정한 이후 29일간 16차례 위메이드 측에 소명을 요청했고, 그때마다 유통량 관련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며 “오히려 소명 과정에서 자료에 오류가 발견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17일, 닥사 측은 “소명 절차 기간에 제출된 자료에 일부 오류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심사를 일주일 연장한 바 있다.

일괄 상장폐지는 담합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닥사는 “시장 혼란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반박했다. 위믹스가 상장된 거래소마다 상장폐지 결정에 시차가 발생하면, 투자자들이 상장폐지 결정이 늦은 거래소로 코인을 옮기며 가격 변동성이 커져 혼란을 키울 수 있단 이유다. 닥사 관계자는 “투자자 혼란이 없도록 같은 시기에 공동으로 대응하자는 것이 이번 결정의 핵심”이라며 “공동 대응을 담합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시장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상장폐지 결정의 귀책사유는 거래소가 아니라 위메이드에 있었다”며 “상장기업이 암호화폐 사업을 하는 것이 옳은지 여부도 고민해봐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상장폐지를 둘러싼 논란은 위메이드와 거래소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가상자산 관련 보호 정책 논의를 방치해서 생긴 것”이라며 “암호화폐 관련 법 제도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