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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죽음 올지 모른다"…10·29 이후 장기기증 늘어난 이유

중앙일보

입력

지난 10일 김건희 여사는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장기이식센터를 방문해 이태원 참사로 뇌사 판정을 받은 뒤 장기기증을 결정한 국군 장병의 가족을 위로했다. [대통령실 제공]

지난 10일 김건희 여사는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장기이식센터를 방문해 이태원 참사로 뇌사 판정을 받은 뒤 장기기증을 결정한 국군 장병의 가족을 위로했다. [대통령실 제공]

“이태원 참사 현장에 제가 없었던 건 단지 운이 좋아서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고, 그땐 다른 누군가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대학생인 방다연(22)씨는 지난 11일 장기기증 희망 서약을 했다. 이태원 참사를 곱씹는 과정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방 씨는 “중학생 때 세월호 참사도 그렇고 이번 이태원 참사 피해자도 저희 또래가 많았다. 저랑 제 친구들도 여차하면 갈 수 있었던 장소라서 ’운이 좋아 살아있구나’ 하는 생각을 더 하게 되는 거 같다”며 “내게도 언제든지 나쁜 일이 생길 수 있으니 기왕이면 다른 사람들을 살리고 떠나고 싶다는 마음에 기증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방다연(22)씨는 이번 이태원 참사 이후 "제게도 언제든지 사고가 생길 수 있다는 걸 느꼈다"며 "내 기증으로 누군가 살 수 있으니 장기기증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서약했다"고 말했다. 방씨의 주민등록증에 '장기기증 희망 서약자'임을 표시하는 스티커가 붙어있다. [방다연씨 제공]

방다연(22)씨는 이번 이태원 참사 이후 "제게도 언제든지 사고가 생길 수 있다는 걸 느꼈다"며 "내 기증으로 누군가 살 수 있으니 장기기증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서약했다"고 말했다. 방씨의 주민등록증에 '장기기증 희망 서약자'임을 표시하는 스티커가 붙어있다. [방다연씨 제공]

 지난 10일에는 이태원 참사로 뇌사 판정을 받은 현직 장병이 장기를 기증하고 삶을 마감한 사실이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이대목동병원을 찾아 장기기증에 동의한 이 장병의 가족들을 위로하는 모습을 청와대가 공개하면서다. 이 장병은 참사로 인한 157번째 사망자가 됐다. 유가족들은 한사코 언론 접촉을 고사했지만 관련 보도에는 추모의 댓글들이 줄이었다.
 이태원 참사 이후 장기기증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인천 송도에서 체육관을 운영하는 박진영(51)씨도 이태원 참사 소식을 듣고 장기기증을 서약했다. 박 씨는 “저도 희생자들 나이 또래인 딸 2명을 키우는 입장이라 남 일 같지 않았다”면서 “몇 주 동안 기분이 많이 우울했고, ‘내가 저기서 CPR이라도 해줄 수 있었으면…’하는 후회부터 많은 생각이 오갔다”고 말했다. 장기 기증 서약이 그나마 위안이 됐다고 했다. 박 씨는 “세월호 참사 때도 그렇고, 참사 사건마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무력감이 들었는데 장기기증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새 생명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25일 인천 송도에서 체육관을 운영 중인 박진영(51)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체육관에서 장기기증 희망자 등록증을 들고 있다. [박진영씨 제공]

지난25일 인천 송도에서 체육관을 운영 중인 박진영(51)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체육관에서 장기기증 희망자 등록증을 들고 있다. [박진영씨 제공]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 재단 홈페이지에는 이태원 참사가 계기가 돼 장기 기증 서약을 하게됐다는 이들의 후기가 잇달아 올라왔다. 지난 3일 홍모씨는 “사고 소식을 듣고 계속 생각을 해보다 결정했다”며 “그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미리 준비해 죽음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서약 후기를 올렸다. 지난 9일 이모씨도 “더 많은 분이 슬픔에서 그만 일어났으면, 그게 많은 분이시던 한분 뿐이시던 그 힘듦의 무게를 가늠할 수 없기에 부디 제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홈페이지에 올라온 장기기증 희망 서약자들의 소감글.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홈페이지 캡처]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홈페이지에 올라온 장기기증 희망 서약자들의 소감글.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홈페이지 캡처]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따르면 장기기증희망 신규 신청자 수는 2022년 9월 6400건, 10월 8164건, 11월(1~22일까지) 5999건으로 집계됐다. 실제 뇌사자 장기기증 건수는 2012년 409건 이후로 2017년 515건까지 서서히 증가하다가 지난해에는 442건으로 줄었다. 수혜자 선정 과정에 대한 불신과 홍보 부족이 장기기증을 어렵게 하는 주요 원인으로 꼽혀왔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김소정 홍보국장은 이태원 참사가 장기기증 서약의 계기로 작용하는 현상에 대해 “모든 분들께 힘들고 어려운 사건이다보니, 그 현장에 안 계셨던 분들도 생명을 살리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려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신 것 같다”며 “이런 마음을 장기기증 희망 서약이라는 행동으로 직접 표현해주는 분들이 계시다는 게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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