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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하경 칼럼

사면초가의 이재명 대표가 부활하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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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하경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
이하경 대기자

이하경 대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가장 드라마틱한 서사(敍事)를 가진 정치인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열두 살 때 험한 세상에 던져졌던 소년공(少年工) 출신이다. 가난과 고통·눈물의 시간을 견뎌내고 변호사가 됐고, 성남시장을 거쳐 경기지사로 선출됐다. 공약 이행률 1위의 일 잘하는 도지사였다. 정권교체론의 벽을 넘지 못했지만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를 24만 표 차로 추격했다.

후보 때는 기본소득·기본주택 등 기본 시리즈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대표가 되자 ‘기본사회’를 화두로 던졌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최소 조건을 보장하자는 ‘보편적 복지’ 담론이다. 기득권층에 유리하게 설계된 한국 사회의 균형을 잡아 주는 평형수 역할을 할 것이다. 변방에서 출발한 흙수저지만 실력자에게 굽실거리면서 권력의 곁불을 쬔 적이 없다. 반사체(反射體)가 아닌 발광체(發光體)임을 쉴 새 없이 입증해 단숨에 중앙정치의 핵심에 진입했다.

특권에 기댄 방탄은 민심과 충돌
당 진로와 국정 운영에 리스크 초래
개인 자격으로 결백을 입증해야
사퇴 결단도 극적 반전의 승부수

그런 이 대표가 대장동 사건으로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위기를 맞았다. 정권이 바뀌자 ‘눈치 9단’ 개발업자들이 등을 돌린 것이다. “대장동 지분은 이재명의 선거·노후 자금”이라는 폭탄발언까지 나왔다. 당사가 압수수색을 당했고, 측근 정진상·김용은 구속됐다.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해 몸이 수척해졌다. 그가 집권했다면 이런 배신은 없었을 것이다. 승자가 독식하는 세상의 염량세태(炎涼世態)다.

아직 최종적 진실을 알 수 없지만 이 대표는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바(ABBA)의 노래 가사처럼 사랑이든, 정치든 “패자는 물러나야 한다(Loser must be away)”는 지혜를 망각한 건 불찰이었다. 그는 불체포 특권을 누리기 위해 연고가 없는 인천 계양구을로 출마해 국회에 입성했다.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이 있는 총괄선대위원장이었는데도 당 대표에 출마해 당선됐다. 명분 없는 생존형 선택이었다.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참패의 최대 원인은 ‘이재명과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 등의 공천 정당성 미흡’(23.2%)이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 대표 일가족은 지금 대장동 사건으로 계좌추적을 당하고 있다. 검찰발 체포동의안이 국회로 날아오면 169석을 가진 민주당은 혼돈에 빠질 것이다. 성남FC 후원금, 쌍방울 뇌물 사건도 대기 중이다. 대표 개인의 비리를 수사하기 위한 체포동의안을 세 번씩이나 부결시키면 여론은 민주당을 집어삼킬 것이다.

이 대표는 “최소한의 유감 표명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내부 의견을 무시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5월 안희정이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으로 수사받을 때 “안희정씨는 나의 최측근이 맞다. 오래전부터 나의 동업자이자 동지였다. 나를 위해 일했고 나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있다”고 했다. 현직 대통령이 부하의 범죄를 “내 책임이오”라고 인정한 것이다. 안희정은 재판의 최후진술에서 “저를 무겁게 벌해 승리자라고 해도 법과 정의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보여 달라”고 했다. 대장동 주역 유동규는 “개발이익이 이재명 측에 갔다”고 하고, 이 대표는 “나도 (유동규를) 믿었다가 배신당했다”고 했다. 노무현· 안희정의 순수함은 보이지 않는다.

이 대표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당을 희생시키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더 큰 문제는 ‘피의자’ 야당 대표이다 보니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 협치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재명 리스크가 고스란히 국가 리스크가 된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선 패배 후 처신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세 번째 도전한 대선의 패배가 확정된 1992년 12월 19일 새벽 3시에 깨끗하게 거취를 정리했다. 부인 이희호 여사는 그가 구술한 정계 은퇴 성명을 눈물로 받아 적었다. “저는 또다시 국민 여러분의 신임을 얻는 데 실패했습니다. (중략) 저에 대한 모든 평가를 역사에 맡기고 조용한 시민생활로 돌아가겠습니다.”

반대자들까지 눈물을 흘렸다. 언론은 “정치 거목” “지조의 정치인” “민주화 외길 40년”이라며 아쉬워했다. 김대중의 이미지가 한순간에 ‘트러블 메이커’에서 ‘영웅’으로 바뀌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김대중을 초대해 “국민들은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기여한 업적을 길이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김대중은 의원직을 사퇴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로 떠났다. 지체 없는 결단은 훗날 정계 복귀와 대권 재도전에 큰 도움이 됐다.

국민을 위하는 정치인이라면 공당의 정치적 자원을 사용(私用)하고, 국정 운영에 피해를 주면 안 된다. 정치적 직권남용이고 횡령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개인 자격으로 수사받고 결백을 입증해야 한다. 대표직 사퇴도 극적인 반전의 승부수가 될 수 있다. 살아서 돌아온다면 날개를 달고 차기 대통령에 다가서게 된다.

특권에 기대서 자신을 지키려는 것은 소인배의 허망한 시도다.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고 전력질주해 온 ‘발광체’임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살고 죽는 것은 스스로에게 달렸다. 승부사 이재명의 지혜로운 결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