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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중견국 네트워크 주도할 역량 갖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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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라몬 파체코 파르도 킹스칼리지런던 국제관계학과 교수·브뤼셀자유대 KF-VUB 한국학 석좌교수

라몬 파체코 파르도 킹스칼리지런던 국제관계학과 교수·브뤼셀자유대 KF-VUB 한국학 석좌교수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이 글로벌 중추국가(Global Pivotal Power)로 변모하길 원한다. 이를 위한 좋은 출발점이 글로벌 중추 중견국(Pivotal Middle Power)이 되는 것이다. 중견국은 국제질서에서 강대국과 약소국의 중간 위치 국가다. 하드파워보다는 소프트파워를 통해 국제 문제를 다자적으로 해결하려 노력하고, 인권·환경 등 특정 이슈에서 국제 규범을 수립·이행하는 국가다.

지난주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잇따라 한국을 방문했다.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 등 다른 지도자들도 한국을 방문했거나 조만간 한국 방문을 계획하고 있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모하마두 부하리 나이지리아 대통령 등도 서울에서 윤 대통령을 만났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월 캐나다를 방문해 한·캐나다 수교 60주년을 1년 앞두고 쥐스탱 트뤼도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다.

경제적·기술적 역량 갖춘 한국
다른 중견국들이 파트너로 원해
미·중 경쟁 관리 위해서도 필요

한국은 다른 중견국들이 파트너가 되길 원하는 인기 있는 중견국이다. 다른 중견국들이 한국을 원하는 까닭은 세 가지다. 먼저, 한국은 현대 지정학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중요한 지역에 있으면서도 매우 독립적인 외교정책을 펼치고 있다. 동아시아는 미·중 경쟁이 분명하게 전개되는 곳이다. 한국은 이 지역에서 존중받는 목소리가 되기 위해 그 위치를 잘 활용해 왔다.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물론 한국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강한 동맹을 맺고 있다. 그러나 역대 한국 정부는 일본보다 독립적인 외교정책을 유지하려고 노력해 왔다. 이 부분이 글로벌 문제에서 중요하다.

둘째, 한국은 세계를 주도하는 경제적·기술적·문화적 역량을 갖고 있다. 지난주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무엇보다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강조했다. 뤼터 네덜란드 총리는 반도체 공급망 협력에 우선순위를 뒀다. 빈 살만 왕세자는 그가 추진하는 5000억 달러(약 678조원) 규모의 스마트 도시 네옴시티 건설에 한국의 투자를 희망했다. 최근 폴란드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 중 가장 큰 규모로 한국산 무기를 샀다.

한국의 역량을 또 다른 중견국인 인도네시아와 비교하면 더욱 명확해진다. 인도네시아는 한국과 같은 경제적·군사적·기술적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상대적인 독립성과 강력한 역량은 한국을 매력적인 파트너로 만들고 있다.

셋째, 한국이 논란이 있는 파트너가 아니란 점도 다른 중견국들이 한국과의 협력을 원하는 중요한 이유다. 한국은 강한 민주주의 전통을 가진 국가다. 다른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들은 윤 대통령을 만날 때 고국에서 비난받을 걱정을 하지 않는다. 한국은 군사 강국이지만,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공격하겠다고 위협한 적이 없다. 한국은 다양한 세계적 기업들이 있지만, 경제적 헤게모니를 행사하거나 다른 나라들의 경제적 고립을 추구하지 않는다.

한국이 외교정책에서 글로벌 중추국가를 지향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에서 분명히 이익을 얻고 있는 만큼 한·미 동맹을 외교정책의 핵심으로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은 미·중 경쟁을 관리하고 중국의 커지는 공격성을 제어하는 중견국 네트워크를 개발할 수 있다.

이런 네트워크는 각기 상이한 파트너들이 상이한 방식으로 한국을 보완할 것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느슨할 수밖에 없다. 호주는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고 한국산 무기들을 구매할 의사가 있다. 인도는 다른 무엇보다 한국의 기술과 투자를 원한다. 영국은 강한 무역·투자 연계와 함께 안보 파트너를 추구한다.

한국이 강점들을 잘 살리고 잠재적 파트너들의 이해를 수용할 때 유연하게 대처한다면 한국이 얻는 이익은 매우 크다. 한국의 광범위한 역량은 한국이 다양한 방식으로 각각의 파트너들과 협상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글로벌 중추국가로 되는 데는 수많은 방식이 있다. 한국이 이를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는 다른 중견국들이 파트너로 삼고 싶어하는 중견국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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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몬 파체코 파르도 킹스칼리지런던 국제관계학과 교수·브뤼셀자유대 KF-VUB 한국학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