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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법원 내부에서조차 반대 나온 법원장 후보 추천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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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10월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뉴스1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10월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사법 포퓰리즘화, 재판 지연 부작용 불가피

무리한 확대로 대법원장 ‘치적 알박기’ 비판도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에서 법원장 후보 추천제에 의한 법원장이 곧 탄생한다. 이 제도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2019년 도입해 확대해 왔다. 해당 법원 소속 판사들이 투표를 통해 복수의 후보를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이 중 한 명을 임명한다. 현재까지 전국 13개 지방법원에서 이런 식으로 법원장이 임명됐다. 내년에는 법원장 임기가 남아 있는 인천지법을 제외한 전국 지방법원 20곳에서 시행된다. 서울중앙지법원장 후보로는 송경근 민사1수석부장판사, 김정중 민사2수석부장판사, 반정우 부장판사가 추천됐다.

법원장 추천제는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인사 권한을 분산시키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시행 초기부터 ‘법관 인기투표’ ‘사법의 포퓰리즘화’라는 우려와 지적이 있었다. 후보군에 속한 판사들이 표를 얻기 위해 동료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투표 독려 글을 돌리는 일이 발생했다. 추천 투표에서 최다득표자가 아니었던 판사를 법원장에 임명하기도 해 대법원장의 인사 재량이 오히려 늘어났다는 비판도 나왔다.

최근 김 대법원장의 사법개혁에 보조를 맞춰 왔던 전국법관대표회의조차 반발하고 나섰다. 법원 내부에서 공식적인 문제제기가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표회의 측은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인기투표 식이고 사법 포퓰리즘을 확대하는 원인이라는 지적, 임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대법원장의 무리한 ‘치적 알박기’라는 비판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법원행정처와 대법원이 현 제도의 성과와 장단점, 구성원들의 의견 수렴 등을 했는지 밝히라고 요구했다.

법원장 추천제의 가장 큰 부작용은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되는 재판 지연이다. 인사 평정권자인 법원장들이나 수석부장판사들이 판사들의 눈치를 보느라 재판 독려 등 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지난 8월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 변호사 666명 중 89%가 ‘최근 5년간 재판 지연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오늘 취임하는 오석준 신임 대법관 역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법원장 추천제에 대해 “계속 유지되면 장차 재판 지연 요인으로 확실하게 작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판사들의 의견도 종합적으로 광범위하게 수렴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법원행정처가 공개한 ‘2022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민사합의부 사건에서 1심 선고가 나는 기간은 2017, 2018년에는 평균 약 265일이었는데, 지난해에는 평균 321.9일로 늘었다. 접수된 사건의 수는 비슷했다.

그런데도 김 대법원장은 법원장 추천제를 확대 실시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법원 안팎의 객관적 평가를 받아 본 다음 확대나 조정 여부를 결정하는 게 순서다. 무리한 ‘치적 알박기’라는 비판은 받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