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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리 먹어치운 초대형 고둥 포착…'신비의 섬' 백도의 비밀 [영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백도 바닷속에서 멸종위기 1급인 나팔고둥이 불가사리를 사냥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국립공원공단

백도 바닷속에서 멸종위기 1급인 나팔고둥이 불가사리를 사냥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국립공원공단

남해 다도해국립공원 거문도에서 바닷길을 따라 동쪽으로 1시간 반을 이동하자 기암괴석과 절벽으로 이뤄진 수십 개의 바위섬이 나타났다. 국립공원 특별보호구역이자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 7호로 지정된 백도다.

백도는 새하얀 바위섬이라고 흰 백자(白)를 쓰는데, 백 개에서 하나 모자란 99개의 바위섬으로 이뤄져 일 백 백(百)자에서 획 하나를 뺀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하늘에서 본 백도의 모습.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하늘에서 본 백도의 모습.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파도 에너지가 굉장히 강한 외해(外海,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 영역에 있다 보니까 침식에 의해 섬이 분리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바다 아치나 수직 절벽 같은 지형이 우리나라 해상에 있는 어느 섬보다도 탁월하게 나타나고 있죠.”

함께 배에 탄 서종철 한국환경지리연구소 대표가 섬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수십 년 동안 섬을 연구한 그는 “동해에 독도가 있다면 남해에 백도가 있을 정도로 경관은 물론 생태학적 가치로도 손꼽히는 섬”이라고 말했다. 백도는 국제적으로도 보호지역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2016년 국내 최초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으로부터 카테고리 Ia(학술적 엄정보호구역)로 인증됐다.

43년 동안 간섭 없어…멸종위기종 천국

다양한 해양생물들이 서식하는 백도의 바닷속 풍경.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다양한 해양생물들이 서식하는 백도의 바닷속 풍경.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백도가 화려한 경관 만큼이나 주목받는 건 멸종위기종의 천국으로 불릴 정도로 섬 아래에 다양한 해양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도 주변 바다는 따뜻한 대마난류의 길목에 있는 데다가 1979년에 명승 7호로 지정된 이후 43년 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다양한 멸종위기종들이 사는 해양생물의 보금자리로 알려졌다.

실제로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국시모) 다이버들이 지난 3년간 백도 바닷속을 모니터링한 결과, 유착나무돌산호·긴가지해송 등 다수의 보호종이 발견됐다. 정인철 국시모 사무국장은 “오랫동안 인위적 간섭이 없다 보니까 멸종위기 산호들이 군집 형태를 이루면서 대규모로 서식하고 있다”며 “푸른바다거북이나 나팔고둥 같은 희귀 해양생물들도 자주 목격이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불가사리 사냥하는 나팔고둥…고래상어도 포착

백도 바닷속에서 나팔고둥이 불가사리를 사냥하는 모습.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국립공원공단

백도 바닷속에서 나팔고둥이 불가사리를 사냥하는 모습.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국립공원공단

특히, 지난 8월에는 해양생물 중 유일한 멸종위기 1급인 나팔고둥이 불가사리를 사냥하는 희귀한 장면이 포착됐다. 나팔고둥은 고기류를 먹는 육식성으로 한국에 존재하는 불가사리의 유일한 천적이기도 하다. 정 사무국장은 “폐통발에 갇혀 있던 나팔고둥을 풀어줬는데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불가사리를 보자마자 달려들어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고 말했다.

백도 인근 해상에서 거문도 주민들에 의해 발견된 고래상어.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백도 인근 해상에서 거문도 주민들에 의해 발견된 고래상어.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그런가 하면 한국 바다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 고래상어가 지난해 7월 백도 인근 해상에서 거문도 주민들에 의해 포착되기도 했다. 새끼로 추정되는 고래상어는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낚싯배 주변을 유유히 헤엄치더니 곧 사라졌다. 고래상어는 최대 18m까지 자랄 정도로 현존하는 어류 중에서 덩치가 가장 크지만, 성격은 온순하다.

출입 금지인데 어업 쓰레기가…“단속 어려워”

백도 바닷속에서 발견된 폐어구 등 해양 쓰레기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백도 바닷속에서 발견된 폐어구 등 해양 쓰레기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하지만, 출입이 엄격히 제한된 백도 바다에서도 최근 들어 사람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백도는 주변 200m 이내 해역에서 수산 동식물을 포획하거나 채취할 수 없지만, 먼바다에 떨어져 있어 현실적으로 단속이 쉽지 않다.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는 “다도해국립공원 전체에 관리선이 한 척 밖에 없다 보니 신고가 들어와도 출동이 어려워 해경에 순찰·단속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폐어구와 낚싯줄 등 해양 쓰레기가 깨끗한 백도의 바다 생태계를 직접 위협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국시모 다이버들의 수중 조사에서도 폐통발·그물 같은 어업 쓰레기로 인해 유착나무돌산호가 훼손된 흔적이 발견됐다.

백도 바닷속에 페트병이 떠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백도 바닷속에 페트병이 떠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난해 5월에는 문화재청이 국립공원공단의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백도 일부와 바다를 명승 구역에서 제외했다. 여전히 백도는 국립공원 특별보호구역으로 묶여 있어서 입도하거나 섬 주변에서 어업 활동을 하려면 허가가 필요하지만, 느슨해진 보호 규제가 백도의 해양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 사무국장은 “백도 바다에는 멸종위기종뿐만 아니라 문화재청이 관리하는 천연기념물도 다수가 서식하고 있다”며 “이런 생물종들에 대한 보호 대책도 전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보호 구역을 해제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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