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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맨’에서 ‘숲 해설가’ 변신 박종만씨…‘인문학적 숲 해설’ 인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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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수나무는 잎이 노랗게 되면 달콤한 향기가 납니다. 이렇게 달콤한 향이 나고 이렇게 완벽한 하트 모양의 잎은 없습니다. 하트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달콤합니까. ‘예’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사랑을 못 해본 사람입니다. 계수나무 잎을 씹어보면 맛이 써요. 그래서 계수나무 잎은 사랑을 닮았습니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광릉숲에 가면 들을 수 있는 박종만(73)씨의 시적인 해설이다. 화학제품 제조 회사를 설립해 15년간 운영했던 ‘화학맨’이었던 박씨는 2012년 숲의 중요성을 알리는 ‘자연의 친구’로 변신했다. 박씨는 “은퇴 후인 지난 2011년 9월 광릉숲에서 숲 해설가로부터 설명을 흥미롭게 들은 게 변신의 계기가 됐다”며 “뒤늦게 깨우친 숲의 중요성을 여러 사람과 나누는 일에 갈수록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화학제품 제조 회사를 운영할 때도 환경 보전을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등의 친환경적인 운영에 최선을 기울였다고 했다.

광릉숲 국립수목원 ‘숲 해설가’ 박종만씨가 지난 22일 국립수목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전익진 기자

광릉숲 국립수목원 ‘숲 해설가’ 박종만씨가 지난 22일 국립수목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전익진 기자

기회는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지난 2012년 1월 국립수목원이 ‘숲 해설가’ 모집공고를 냈던 것. 영어와 일어에 능통했던 그는 외국어 우수자 가점 덕분에 곧바로 채용됐다. 한국어를 포함한 3개국어로 광릉 숲의 신비를 알린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1년간 매년 계약을 연장받아오며 현재는 15명 숲 해설가 가운데 팀장을 맡고 있다.

“향은 달고 맛은 쓴 계수나무 잎은 사랑”  

 남다른 방식의 숲 해설로 꽤 이름도 알렸다. ‘인문학적 숲 해설’이 그것이다.
“반 기생 식물인 겨우살이는 항암효과가 있다고 소문나 비싼 식물이 됐어요. 미국 사람들은 겨우살이 밑에서 키스하면 사랑이 영원하다고 믿었고 우리 선조들은 씨의 끈적끈적한 것으로 편지 봉투를 붙이면 사랑이 영원하다고 믿었죠. 이탈리아 사람들은 리엘토다리 밑에서 키스하면, 멕시코 사람들이 키스엘리에서 키스하면 사랑이 영원하다고 믿었던 것처럼요.”

그는 “나무와 숲의 생태적 특징 위주의 단순 지식을 전달하는 해설은 재미도 없고, 탐방객의 호응도 받을 수 없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이어 “나무와 숲의 정보를 전달하되 자신의 경험과 감성 등 인문학적 요소를 가미한 재미난 이야기 형식의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전달하는 숲 해설을 시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광릉숲 국립수목원 ‘숲 해설가’가 박종만씨가 펴낸 ‘인문학적 숲 해설’ 등 저서 4권. 전익진 기자

광릉숲 국립수목원 ‘숲 해설가’가 박종만씨가 펴낸 ‘인문학적 숲 해설’ 등 저서 4권. 전익진 기자

 박씨는 국내외의 숲 해설 방식을 두루 살펴보며 새로운 방식을 고안했다. 마침내 1년 후 ‘인문학적 숲 해설’이란 제목의 책을 펴내고 이 방식을 본격적으로 시행 중이다. 이런 숲 해설 방식을 현장과 접목하며 매년 조금씩 개선했고 10년간 두권의 책을 더 냈다. 그사이 제작한 유튜브 영상도 139편이나 된다. 전국에서 책과 유튜브로 숲 인문학을 접한 이들의 탐방 신청이 이어지고 있다.

광릉숲 국립수목원 ‘숲 해설가’ 박종만씨(앞줄)가 지난 2016년 5월 25일 국립수목원에서 열린 행정자치부 주관 ‘2016년 한국 공공행정 우수사례 설명회’(행정자치부 주관)에서 케냐ㆍ에티오피아 등 주한 외교사절들에게 한국의 우수 산림정책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국립수목원

광릉숲 국립수목원 ‘숲 해설가’ 박종만씨(앞줄)가 지난 2016년 5월 25일 국립수목원에서 열린 행정자치부 주관 ‘2016년 한국 공공행정 우수사례 설명회’(행정자치부 주관)에서 케냐ㆍ에티오피아 등 주한 외교사절들에게 한국의 우수 산림정책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국립수목원

“국내외에 광릉숲과 문화 역사 알려 보람”    

 지난해에는 그동안 시행해온 경험과 자료를 모아 ‘외국어 해설 자료집’을 냈다. 그는 “팩트(사실)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게 즐거움이라는 걸 현장에서 체험했다”며 “숲의 식생도 중요하지만, 문화와 역사를 가미해 숲을 해설해 외국인들로부터 호응을 받고 있다”고 했다. 외국인 상대 숲 해설에선 “느릴지라도 또박또박 내용을 전하고, 첫 대면부터 한 사람씩 악수를 청하며 웃음을 유도하는 것 등이 좋은 방법”이라고 귀띔했다.

박씨는 올해 국립수목원 방침에 따라 광릉숲 생태, 수목원의 풀과 나무, 전시원 탐방, 산새 탐험, 수목원의 역사, 수목원의 노거수, 탄소 중립 등 7개 테마에 대한 해설에 집중하고 있다. 박씨는 “550여년간 보존된 ‘절대 보존림’ 광릉숲의 가치를 알리는 것 자체가 보람 있는 일”이라며 “행복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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