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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뭐가 다르냐니" 호통친 '갑갑이 고장'…안동이 변했다

중앙일보

입력

박찬일 셰프가 22일 선보인 '안동 낫토 티라미수.' 이탈리아 디저트인 티라미수에 안동 특산품 콩으로 만든 낫토를 넣었다. 낫토 특유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고, 건강식으로 좋겠다는 반응이 많았다.

박찬일 셰프가 22일 선보인 '안동 낫토 티라미수.' 이탈리아 디저트인 티라미수에 안동 특산품 콩으로 만든 낫토를 넣었다. 낫토 특유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고, 건강식으로 좋겠다는 반응이 많았다.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를 자청하는 경북 안동은, 알고 보면 한국 음식문화의 수도다. 안동만큼 지역의 음식 문화를 자부하는 고장도 드물어서다. 안동한우와 안동문어의 예를 보자. 안동 사람 앞에서 “다른 지역의 한우, 문어와 차이를 모르겠다”고 하면 바로 “근본 없는 소리”라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이유는 모르겠고, 그냥 다르단다. 안동에는 별미도 있다. 이를테면 안동식혜. 먹어 보셨는지. 세상에, 매운 식혜다. 안동 음식 하면 빠지지 않는 간고등어는 아예 탄탄한 스토리텔링까지 갖췄다. 내륙 지역의 선비가 비린내 좀 맡아보겠다고 염장한 고등어를 찾던 게 안동 간고등어인데, ‘간잽이 명인’의 신화가 더해지더니 요즘엔 뻔뻔한 농담도 서슴지 않는다. “안동 간고등어는 안동댐에 삽니다.” 권기창 안동시장에게 직접 들은 농담이다.

고유의 음식 문화를 지키는 건 반길 일이지만,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선 답답한 태도일 수도 있다. 전통만을 고수하던 ‘갑갑이의 고장’ 안동에도 변화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안동의 대표 특산물과 고유 음식으로 새 메뉴를 개발해 유럽의 음식 축제에 선보이려는 프로젝트다. 내년 6월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음식 축제와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음식 축제 참가가 목표다. 올 초 안동의 한국정신문화재단이 사업을 기획했고, 지난여름 메뉴 개발에 착수했다.

지난 22일 경북 안동에서 열린 'K푸드 해외 음식 축제 참여를 위한 음식 메뉴 개발 시식회'에서 '대구살 감자요리와 안동 간고등어 앙상블'을 설명하는 박찬일 셰프.

지난 22일 경북 안동에서 열린 'K푸드 해외 음식 축제 참여를 위한 음식 메뉴 개발 시식회'에서 '대구살 감자요리와 안동 간고등어 앙상블'을 설명하는 박찬일 셰프.

이 난감한 과제를 떠안은 셰프가 글 잘 쓰는 셰프 박찬일(57)씨다. 이탈리아로 요리 유학을 갔다 왔고, 서울에서 이탈리아식 주점과 돼지국밥집을 개업한 경험을 안동이 높이 샀다. 박찬일 셰프가 개발한 별난 안동 음식 시식회가 지난 22일 안동 ‘구름에 리조트’ 안동라운지에서 진행됐다. 이름하여 ‘K푸드 해외 음식 축제 참여를 위한 음식 메뉴 개발 시식회.’ 안동 시민 30여 명이 참석해 박찬일 셰프가 개발한 7가지 음식을 맛봤다.

'안동식혜 젤리를 곁들이 안동소주 칵테일'과 '대구살 감자요리와 안동 간고등어 앙상블'.

'안동식혜 젤리를 곁들이 안동소주 칵테일'과 '대구살 감자요리와 안동 간고등어 앙상블'.

제일 먼저 나온 음식은 식전주로 나온 안동소주 칵테일이다. 안동식혜를 젤리로 만들어 장식했고, 독한 안동소주는 김칫국물을 넣어 순화했다. 안동식혜를 젤리로 만든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칵테일에 곁들이는 음식으로는 ‘대구살 감자요리와 안동 간고등어 앙상블’이 콘에 담겨 나왔다. 삶은 감자 샐러드 같은 음식에서 고등어 비린내가 살짝 느껴졌으나, 칵테일과 함께 먹으니 비린내가 잡혔다.

박찬일 셰프가 안동한우로 개발한 '토마토와 고추장의 소 양 양념소스찜'.

박찬일 셰프가 안동한우로 개발한 '토마토와 고추장의 소 양 양념소스찜'.

박찬일 셰프가 안동문어로 개발한 '육포 약고추장을 발라 구운 안동문어 꼬치와 가래떡 꼬치.'

박찬일 셰프가 안동문어로 개발한 '육포 약고추장을 발라 구운 안동문어 꼬치와 가래떡 꼬치.'

이어 나온 음식은 안동한우의 양(소의 첫 번째 위장)이었다. 쫄깃한 식감이 일품인 소 양을 토마토와 고추장 양념을 넣고 쪘다. 유럽에서 먹은 소 내장 요리보다 살짝 매웠다. 다음으로 안동문어 꼬치가 나왔다. 문어를 고추장을 발라 구운 뒤 가래떡과 같이 꼬치를 만들었는데, 반응이 좋았다. 안동시 관광협의회 권혁대 회장은 “당장 메뉴로 개발해 팔고 싶다”고 말했다.

디저트는 ‘안동 낫토 티라미수’와 ‘안동 마가루를 넣은 아몬드 쿠키’ 두 종류가 나왔다. 특히 안동 낫토 티라미수가 시식 후 평가에서 현지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은 메뉴로 꼽혔다. 안동은 콩이 많이 나서 일본 전통음식 낫토도 많이 만든다. 이 낫토를 이탈리아식 디저트 티라미수에 넣었다. 한 음식에 세 나라의 음식 문화가 들어간 셈이었다. 낫토 특유의 향을 초콜릿이 눌러줬고, 초콜릿의 강한 맛은 낫토가 중화시켰다.

지난 22일 안동에서 열린 시식회에서 강연 중인 박찬일 셰프.

지난 22일 안동에서 열린 시식회에서 강연 중인 박찬일 셰프.

박찬일 셰프는 “유럽 음식 축제에 나가는 음식이어서 메뉴 개발에 제약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안동의 식재료와 음식을 바탕으로 하되, 런던과 파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써야 하고, 축제 현장에서 쉽게 조리할 수 있는 음식이어야 하고,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이 손에 들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어야 했다. 콘 형태의 안동 간고등어 요리와 구운 문어 꼬치가 나온 까닭이었다.

박찬일 셰프는 “한식은 유럽에서 이미 하나의 문화 현상이자 유행이 됐다”며 “이제는 안동 같은 고유색 강한 지역의 음식도 유럽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시식회를 마친 음식들은 조만간 레시피를 공개해 안동의 식당에서 다양하게 적용한 뒤 내년 해외 음식 축제에 내보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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